전체 글40 #010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옥상에서 선배들과 담배를 피웠고 저는 계단을 내려가 반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죄의 무게를 계량기에 측정이라도 하는 듯이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누가 진정한 죄인이고 누가 진정한 선량한 사람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김한운은 매일 아침 저의 집 앞에서 대기하며 제가 나오면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갔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왜 매일 그러는 거냐.”“그냥 산책하는 길에 나온 거야 담배도 필 겸.”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또래 친구 중에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보인 다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괜히 이상한 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지 않는 그런 것들 .. 2024. 11. 12. #009 아버지가 들어온 시간은 저녁 8시였습니다. 이번에 크게 다른 점은 한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여자의 나이는 아버지와 비교하면 많이 젊어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나이도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갑자기 데려온 여자 때문에 말이죠. 그 여자는 저에게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넌 누구니?”오히려 제가 물어야 할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이재하에요.”여자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짧은 빨간색 치마에 속옷이 비치는 하얀 와이셔츠가 딱 봐도 화류계에서 일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여자는 아버지를 보면서 말했습니다.“오빠! 왜 아들 있는 거 얘기 안 했어?”아버지는 저를 바라보지도 .. 2024. 11. 12. #008 중학교 입학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입학식이 끝나도 다들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습니다. 아마도 저에게는 없는 뜻깊은 무언가를 하러 떠났을 거로 생각됩니다. 저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제 아버지니까요.그대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차가운 현실만이 다가왔습니다. 인덕션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끓여 라면을 먹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무 맛도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젓가락만을 먹고 나머지는 버렸습니다. 배도 고프지 않았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을 떨치기 위해서 말이죠. 사실 지금이라도 다시 학교에 간다면 떨림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 선.. 2024. 11. 11. #007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정신과에서 심리검사를 받는 날 말이죠. 저와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정신과에 도착하자마자 제 이름을 간호사가 부르더니 저를 검사실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이상한 것 천치였습니다. 무슨 단어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는 둥 숫자를 나열해 보라는 둥 이상한 그림을 보고 뭐가 보이는지 말하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걸 무려 3시간 정도나 했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나오자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와 같이 들어갔기에 눈치를 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오고 간호사는 저번 주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검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예정이에요. 예약 잡아드릴게요.”아버지는 다음 주에 다시 예약을 잡았습니다. 이게 치료가 맞는 건지.. 2024. 11. 11. #006 다음날이 되고 그래도 2시간 정도는 잤는지 졸음이 몰려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니면, 긴장된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제 문을 두 번 두드리며 말했습니다.“일어나라. 준비해야지.”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해 샤워했습니다. 샤워하는 동안 일부로 몸을 박박 씻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길 빌면서 말입니다. 언젠가는 나가야 했기에 물기를 닦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습니다. 옷을 입자 그제야 현실감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가는 곳은 일반 사람들이 가는 병원이 아니라는 점을 말입니다.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습니다. 꽤 큰 건물의 병원이 저를 맞이해주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대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정신건강의학과라는 글씨가 써진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사.. 2024. 11. 11. #005 아버지는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나와 학교에 걸어갔습니다. 누구하고도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반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도 엎드렸고 점심시간이 되면 빨리 밥을 먹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집에서도 혼자였지만, 옥상에서의 혼자는 조금 달랐습니다. 마치 저만 아는 비밀공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출입문 뒤쪽 공간으로 숨었습니다. 올라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공간마저도 없어졌습니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밖으로 나가자 여러 풍경이 보였습니다. 축구 하는 아이들 게임 하는 아이들 말이죠. 그들에게 다가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보다가 학교를 지.. 2024. 11. 11.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