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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07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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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정신과에서 심리검사를 받는 날 말이죠. 저와 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정신과에 도착하자마자 제 이름을 간호사가 부르더니 저를 검사실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이상한 것 천치였습니다. 무슨 단어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는 둥 숫자를 나열해 보라는 둥 이상한 그림을 보고 뭐가 보이는지 말하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걸 무려 3시간 정도나 했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나오자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와 같이 들어갔기에 눈치를 봐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오고 간호사는 저번 주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다음 주에 나올 예정이에요. 예약 잡아드릴게요.”

아버지는 다음 주에 다시 예약을 잡았습니다. 이게 치료가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고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아버지는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말했습니다.

이번 주는 학교에 안 가고 집에 있어라. 선생님한테는 알아서 얘기해 놓을 테니.”

속으로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도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입니다. 하지만, 곧이어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그곳에 적응하지 못할 테니 차라리 가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내적으로 갈등이 부딪혔습니다. 저는 무언인가에 대한 스스로 물음 굴레에 갇혔습니다.

 

일주일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아버지와 다시 병원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결과가 나올지 조금 불안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의 불안을 몰랐는지 알고 싶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의 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적어도 몇 달은 입원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한숨을 한번 쉬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자식 농사가 실패로 돌아가 실패자를 하나 얻었다는 심정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뭐가 문제인가요?”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한번 쓱 흩더니 말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린아이 치고 정서가 매우 불안정합니다. 우울증은 기본이고 공황장애 증세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특정적인 상황에서의 공포감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입원하셔서 증세 경과를 보고 치료하고 나오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입원하기는 싫었습니다. 반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이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조용히 해라.”

엄격하고도 단호한 그 한마디에 저의 용기는 무너졌습니다. 입을 꾹 닫고 의사와 아버지의 대화만이 오고 갔습니다. 저는 그 대화에 무슨 내용이 오고 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시 병원을 찾을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굳게 잠긴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제 또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구하고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날마다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에 시달렸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복용하는 약의 개수와 검사만이 늘어갔습니다. 의사가 가끔 찾아와 묻는 물음에는 언제나 장황하게 설명하며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저는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나갈 수 없었습니다.

 

***

 

1년하고도 몇 달이 지났습니다. 저는 여전히 정신병동에 있었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았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다 보니 치료가 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느새 적응하여 일상생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것은 아버지는 면회를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통화로 안부 정도만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에 큰 괴리감과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오히려 만나는 것이 더 어색할 것 같았습니다. 언제쯤 나갈 수 있겠냐는 생각도 접었습니다. 여기에서만 그 누구하고도 소통하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이 편한 것 같았습니다. 사회로 나가기가 더욱 무서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하고의 면담 중에 믿기지 않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에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다시 병실로 들어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평생 이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을 바꾼 이유를 말입니다. 마침 시기를 계산해보니 제가 14살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저의 중학교 입학을 위해 생각을 바꾼 것입니다. 또한, 우울증, 공황장애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환경이 바뀐다면 또 어떻게 될지 몰랐습니다. 의사 말로는 많이 치료되었다고 했지만,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퇴원하는 날 아버지와 엄청 오랜만에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버지는 변한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물론, 만난 지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것을 다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사람이 느끼기에는 그랬습니다. 말투, 성격, 외모 전부 마지막에서 본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퇴원하고 병원 밖에서 나오기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을 때 짐을 풀기도 전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리로 와서 앉아봐라.”

저는 말 없이 짐을 방에 두기만 하고 다시 거실로 나와 아버지가 앉은 소파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실지 예측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한 번 더 말했습니다.

네게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지 알아? 이제는 중학교에 올라가니 그 보답을 좀 해야겠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자식 자랑할 때 난 혼자 끙끙 앓기만 했다. 나는 자식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능글맞게 떠넘겨야 했다. 치료도 다 됐다 하고 이제는 혼자서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알아라. 이제는 실망하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그것도 1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자식에게 한다는 말이 고작 그딴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가 대답하려는 순간 아버지가 다시 말했습니다.

. 그리고 이사할 거다. 조금 먼 곳으로.”

그 점은 좋았습니다. 저를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다른 곳이라면 혹시라도 새롭게 적응하며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닌 이사한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이사했습니다. 집안의 구조는 원래 있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번과 다른 점 하나는 23층이라는 고층 집에 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주변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산책하러 다녔습니다. 하루에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을 다니며 제가 입학할 중학교를 거쳐 가기도 하고 그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걸어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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