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들어온 시간은 저녁 8시였습니다. 이번에 크게 다른 점은 한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여자의 나이는 아버지와 비교하면 많이 젊어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나이도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갑자기 데려온 여자 때문에 말이죠. 그 여자는 저에게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
“넌 누구니?”
오히려 제가 물어야 할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재하에요.”
여자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짧은 빨간색 치마에 속옷이 비치는 하얀 와이셔츠가 딱 봐도 화류계에서 일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여자는 아버지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오빠! 왜 아들 있는 거 얘기 안 했어?”
아버지는 저를 바라보지도 않았고 그저 정수기에 물을 따라 마시면서 말했습니다.
“쟤는 내 아들 아니야.”
저는 한마디도 지기 싫었습니다.
“저 아저씨도 제 아버지 아니에요.”
여자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아무래도 부자지간 사이에 이런 기 싸움이 오가는 것은 처음이었을 테니까 말이죠.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는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나는 이청하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단답식으로 대답했습니다.
“네.”
그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거실에서는 웃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4년을 살아온 저보다 그는 이청하라는 여자가 더 좋았나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에게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로서 말이죠. 그녀는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그녀는 나가면서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
“그래그래. 조심히 들어가.”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내 방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가 여자를 데려왔으면 적어도 예의라는 것을 차릴 수 있지 않았어?”
“먼저 시작한 건 아버지예요.”
그는 한숨을 쉬더니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문을 쾅 닫으며 말했습니다.
“저런 걸 아들이라고.”
답답했습니다. 지금 모든 이 상황 그 자체가 말이죠. 산책하러 나가서 바깥 공기를 쐬어야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조금 걷다 보니 유흥가 쪽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채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여자를 보았습니다. 저의 집에 잠깐 왔던 그 사람 말이죠. 애써 무시하려고 지나가려는 찰나 그녀는 저를 보았습니다. 아는 척을하며 말했습니다.
“재하야!”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는 제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네.”
“여기는 어쩐 일이야? 아버지 지금 없는데?”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녀의 단골이었나 봅니다.
“알아요. 그냥 산책 나왔어요.”
그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봐.”
그리고 3분 뒤에 나오더니 그 손에는 포도주 한 병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네 나이 정도면 아버지랑 같이 술 마셔도 되는 나이지?”
“뭐. 별 상관없겠죠.”
“이거 가지고 아버지한테 가서 사이 좀 풀면서 말해. 아까 엄청 싸늘하더라.”
어제 처음 본 여자가 저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것이 의심이 갔습니다. 무슨 다른 목적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으면서요. 얼떨결에 포도주 한 병을 받자마자 그녀는 다시 인사만 하고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럼 다시 가볼게.”
포도주는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할지 몰라도 일단 저에게 당장은 그냥 짐 덩어리일 뿐이었습니다. 이걸 계속 가지고 다니기에는 거슬렸고 버리기에는 그녀의 선의였기에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포도주를 가지고 집에 가서 아버지와 얘기하며 마실 의향은 없었습니다. 저는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거실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방 문을 열자 아버지는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온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
“왜.”
“아까 그 이청하라는 분이 포도주 선물로 주셨어요. 아버지 마시라고요.”
“냉장고에 넣어놔.”
“네.”
내심 기대라도 했는지 원래대로라면 그냥 냉장고에 넣어두었을 텐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포도주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무언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아버지가 나가길 원했습니다. 둘이 있을 때의 그 엄청난 어색과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으니까요.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자 오늘따라 굉장히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잠을 잘 잔 탓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신경이 쓰이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이런 기분을 아버지를 보면서 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거실에는 나가봐야 했기에 거실과 안방 그리고 화장실을 보았습니다. 어디에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집에 먹을 것이 없었기에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하나 사서 먹기로 했습니다.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편의점에 도착하고 어떤 도시락을 먹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났습니다. 도시락을 고르고 계산대에 앞에 있었는데 누군가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재하야!”
이청하였습니다. 그녀는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화장과 머리까지 꾸몄습니다. 저는 짤막하게 인사하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계산하려는 순간 그녀가 숙취해소제를 계산대에 올려놓더니 카드를 꺼내며 말했습니다.
“이것도 같이 계산해주세요.”
조건 없는 선의에 익숙하지 않은 저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습니다. 아무 말 없이 인사만 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부끄러웠는지 창피했는지 저는 급하게 나가다가 누군가와 부딪혔습니다. 바닥에 도시락에 팽개쳤습니다. 하지만, 포장이 잘 된 덕에 이상은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곧이어 그녀가 나오더니 말했습니다.
“오빠. 얘한테 좀 잘해. 한창 클 나이에 도시락이 뭐야.”
아버지와 저는 서로 쏘아 봤습니다. 기 싸움이 흐르는 도중 이상함을 감지한 그녀는 우리 둘을 서로 떼어놓고 아버지와 손을 잡고 저와 반대 방향으로 가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또 보자! 재하야!”
이번에도 간단한 인사만 한 후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먹었습니다. 맛은 그저 그랬습니다. 어느새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하고 편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울리는 것은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그것이 누구든 상관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는 게 거슬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월요일이 되고 학교에 갔습니다.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으려는 그때 조례가 끝나고 문이 열리더니 저희보다 2살 많은 중학교 3학년 선배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에게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
“네가 이재하냐?”
이때부터 눈치를 챘습니다. 저번에 있었던 일에 대한 보복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네.”
“따라와.”
이제 무차별적인 구타와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는구나 하고 내일이라도 당장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선배는 덩치가 크고 무척이나 무서워 보여 반항조차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 선배를 따라간 곳은 학교 옥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그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가 말했습니다.
“너 얘 알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구타당한다는 생각에 저는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짓말도 통하지 않을 걸 뻔히 알기도 했습니다. 속으로는 엄청난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었지만, 이곳에서 무서워 보인다면은 잡아먹힐 것이기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네. 알아요.”
그 선배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사과하고 둘이 친하게 지내라.”
표면적으로라도 사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한 척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제가 먼저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저번에는 미안했다.”
그러자 그 애도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나도 미안했다.”
선배는 저희 둘의 어깨를 두드리며 가까이 붙여놓고 말했습니다.
“그래. 보기 얼마나 좋냐. 앞으로는 싸우지 마라.”
저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때 그 나이에서는 선배의 말이 법이었으니까요. 저는 그 자리에서 그 애의 머리를 벽돌로 찍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친구를 죽은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죠. 제가 사과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려던 도중 그 애가 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습니다.
“야. 내 얘기 안 끝났어. 말할 거 더 있어.”
순간 다시 시비를 거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무섭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뭔데? 또 싸우자는 거면 싫어.”
“그게 아니야.”
“그러면?”
“내가 이성민을 괴롭힐 수밖에 없는 이유.”
과연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성민이 회사 근로자였어.”
“그래서 뭐 어쩌라고.”
“끝까지 들어봐. 근데 너 내 이름은 아냐?”
“알아야 해?”
“내 이름은 김한운이야. 기억해 놔. 일단 얘기마저 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그 회사에서 부당 해고당했어. 그 이후로 우리 집안은 내리막길을 걸었지. 아버지는 술에 빠져 살고 나를 구타했고 어머니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했어. 그러다가 과로로 돌아가셨어. 그때만 해도 나는 처음에 아버지 탓을 했어. 부당 해고도 당한 지 모른 채로. 그러다가 아버지가 얘기를 꺼내셨지. 아버지는 팀장이셨어. 그리고 부하 직원도 꽤 있었지. 어느 날 여자 부하 직원이 성추행을 당했어. 사장님에게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엄청난 부당 대우라며 사장에게 따졌어. 사장은 그 여자 직원을 불러 말하면 될 것 아니냐 했고 그 여자 직원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사장의 편을 들었어.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부당 대우를 받았어. 사무실에서 책상이 없어졌고 잡일만 해야 했고 회식 때도 불려가지 못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며 감봉처분도 받았어. 그러다가 결국, 해고 통보를 받은 거야. 나는 그 일을 용서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의 아들이 우리 반 성민이라는 애라는 것을 알았고 그 애를 괴롭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래서 그렇게 됐어. 후회는 없어.”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죄 없는 애를 왜 죽였느냐고도 너희 가정이 아주 힘들었겠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단답형을 말하고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그래.”
“많이 생각해 봐. 누가 더 잘못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