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끝으로 그는 옥상에서 선배들과 담배를 피웠고 저는 계단을 내려가 반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죄의 무게를 계량기에 측정이라도 하는 듯이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누가 진정한 죄인이고 누가 진정한 선량한 사람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김한운은 매일 아침 저의 집 앞에서 대기하며 제가 나오면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갔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
“왜 매일 그러는 거냐.”
“그냥 산책하는 길에 나온 거야 담배도 필 겸.”
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또래 친구 중에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보인 다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괜히 이상한 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지 않는 그런 것들 말이죠.
그날도 아침에 그 애가 있었습니다. 저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헤어졌습니다. 하교하고 저녁이 되고 집에 들어갔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아버지와 이청하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끄러웠습니다. 아버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으니까요. 그리고 슬슬 아버지와 그녀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단순한 술집 여자 같지는 않았습니다. 방 밖으로 나가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재하야! 네 아버지 좀 모시고 들어가라”
“예.”
저는 그 말에 군말 없이 아버지를 방 안으로 모셨습니다. 아니, 모셨다기보다는 침대 위에 내팽개쳐놓았다는 말이 맞겠습니다. 그 후 그녀는 가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제가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하고 무슨 관계예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잠시 밖으로 나와 볼래?”
저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더니 피우며 말했습니다.
“너도 한 대 피울래?”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 네가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지.”
그녀는 담배를 한 모금 더 뱉은 후 하늘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내 쪽으로 내려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설마 내가 네 엄마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아니지?”
저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망설였습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저를 불렀습니다.
“재하야.”
“네?”
“꿈 깨. 난 네 엄마가 될 수 없어. 네 아버지의 아내라면 몰라도 말이야. 물론 네 아버지의 아내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어. 우리는 그저 손님과 직원의 관계일 뿐이야. 사고팔 수 있는 게 좀 특이할 뿐이지.”
그 특이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앞에 서면 지독할 만한 향수 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몸에서도 그 냄새가 났습니다. 모른 척하려야 모른 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따지지도 뭐라 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엄마라는 단어를 너무나도 오랜만에 들었으며 혹시라도 모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에 약간의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대답했습니다.
“네.”
“그래 그럼 이만 나는 가볼게. 나중에 또 만나자 재하야?”
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기대했던 탓인지 아니면 일말의 희망의 끈을 잡고 있었던 탓인지 허망함은 커지었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쳐다봤습니다. 그는 쳐다보는 시선도 느끼지 못한 채 코를 골며 침대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도 사랑이 고픈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와 다른 사랑의 종류겠지만, 말이죠. 아버지는 연인으로서의 사랑을 저는 보호 받는다는 느낌의 사랑을 원했습니다. 그와 단둘이 이 집 안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가 산책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문을 열고 조금 걷던 도중 모퉁이를 돌 때 누군가와 부딪혔습니다. 얼굴도 확인하지 않고 제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 없는데.”
그 말을 듣고 얼굴을 들어보니 김한운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스토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독 제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다만 이번에 다른 점은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냐?”
“그냥 산책.”
“같이 할래?”
저는 여태까지 쌓였던 울분을 토해내듯 그에게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말했습니다.
“네가 아무리 정당성을 찾았어도 아무 죄 없는 애를 죽인 건 달라지지 않는 진실이야 적어도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지. 그러니까 앞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미안하다.”
사과를 들었지만, 기분은 나빴습니다. 사실 지금 그가 내게 어떤 좋은 짓을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거로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모퉁이를 돌아 뒷골목으로 갔습니다. 곧이어 뒷골목에서는 연기가 피어나왔습니다. 저는 이끌리듯 그곳으로 갔습니다. 당연하게도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아까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제가 먼저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그거 피우면 뭐가 달라지냐.”
“한번 펴보든가.”
그는 저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습니다. 저는 어떻게 피워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입에만 물자 그가 불을 붙였습니다. 그러더니 말했습니다.
“쭉 빨아.”
그 말 그대로 담배를 쭉 빨자 불이 잘 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연기를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나오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저는 한 번에 다 나오는 반면 그 애의 연기는 일정하게 쭉 나왔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왜 너하고 나오는 연기가 다르지?”
“나는 속 담배고 너는 겉 담배니까.”
“나도 그거 할래.”
“힘들 텐데.”
“괜찮아. 알려줘.”
“일단 먼저 연기를 빨아들여 그리고 숨을 한 번 들이켜 그다음 뱉는 거야. 어떻게 하냐면 이렇게.”
그는 시범을 보이듯 천천히 그 동작을 반복했습니다. 저도 그와 똑같이 하려는 순간 갑자기 엄청난 기침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어지러움도 덤으로 찾아왔습니다. 잠깐 어디 앉아야 해서 그 옆의 작은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는데 그곳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마디 더 했습니다.
“거봐 어렵다니까.”
“아니야. 할 수 있어.”
저는 계속된 기침과 어지러움을 동반했지만, 지금 피는 담배를 전부 태워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한 개비를 어렵게 태웠습니다. 마약을 하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습니다. 시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제 옆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정신이 온전히 돌아왔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나 이제 가본다.”
“그래. 잘 가라.”
그라면 무언가 한 마디를 더 던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보내주니 약간은 이상했습니다.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손을 씻었습니다. 씻었음에도 담배 냄새가 손에서 계속해서 났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에게 들킬 염려 따위는 없었습니다. 애초에 저에게 그렇게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는 제가 나간 그사이에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저도 제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이상하게도 담배 생각이 계속 났습니다. 정신의 몽환적 때문인지 아니면, 일탈의 행위 중 하나로 아버지에게 반감을 사기 위한 것인지는 헷갈렸지만, 적어도 저의 정신은 그것을 갈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