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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08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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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입학식이 끝나도 다들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부모님 두 분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했습니다. 아마도 저에게는 없는 뜻깊은 무언가를 하러 떠났을 거로 생각됩니다. 저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제 아버지니까요.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차가운 현실만이 다가왔습니다. 인덕션에 냄비를 올리고 물을 끓여 라면을 먹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아무 맛도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젓가락만을 먹고 나머지는 버렸습니다. 배도 고프지 않았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을 떨치기 위해서 말이죠. 사실 지금이라도 다시 학교에 간다면 떨림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에게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밤을 새워버렸습니다. 학교에 간다는 기대 때문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가 나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몸을 일으켜 씻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직 학기 초라서 그런지 등교하는 애들은 같이 다니는 무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부 뿔뿔이 흩어져 한 명씩 교문을 향해 들어갔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학년은 총 3반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1학년 2반에 배치되었습니다. 심호흡하고 긴장한 채로 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발 미친듯한 떨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반에 들어가고 아무 자리에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전처럼 똑같이 책상에 엎드렸습니다. 다행히도 떨림은 없었습니다. 속으로 환호를 질렀습니다. 저도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보낼 수도 있다는 기쁨에 찼습니다. 사회 속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지내는 것은 남들에게는 쉬울지 몰라도 적어도,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달성한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가 저에게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면 됩니다. 다가오는 사람을 내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친구라는 것을 사귀고 같이 등교와 하교 그리고 더 나아가 밥도 먹고 놀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군가 저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린 것은 말이죠. 곧장 엎드렸던 자세를 포기하고 일어나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반갑게 인사만 하면 됐습니다. 제가 인사하려는 순간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 앞으로 가서 앉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뒷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상한 점 하나는 그 애는 교복을 제대로 입지도 않았고 머리도 노란색으로 염색하고 있었습니다. 껌을 씹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도 함께 했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알게 됐습니다. 엮이면 좋지 않은 아니, 나쁜 상황만이 전개될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어나 두 칸 정도 앞자리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그 애는 저에게 바로 관심을 껐습니다. 무서운 상황이었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제 옆에는 그 누구도 앉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에 있는 의자의 개수보다 학생들이 적었기에 혼자 앉아 있는 애들도 조금 더 있었습니다. 그 애들은 대부분 저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다가가 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습니다.

조례가 다가오고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대충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잘 지내보자는 형식적인 인사와 발표였습니다.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기에 그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보나 마나 겉으로만 저렇게 위하는 척하지 실제로는 자신에게 문제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 가득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이 밖으로 나가자 저는 수업이 시작하기 10분 전에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만만한 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저와 비슷한 애를 찾는 것이 아무래도 같이 다니기에는 좋으니까 말이죠. 급이라는 것은 사회뿐만이 아닌 학교에서도 어떤 형체로든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먼저 아까 그 애들은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학기가 시작한 지 하루도 안 되어서 핸드폰만 붙잡고 그 세계 안에서 나오지 않는 애들도 뺐습니다. 아무래도 게임과 핸드폰을 잘 하지 않는 저와는 어울릴 수 없는 사람으로 판단했습니다. 그 두 부류를 배제하니 한 부류만이 남았습니다. 바로 공부하는 애들이었습니다. 저는 곧장 문제집을 펼치고 있는 애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애는 어느 학원에 다니는지 알 수 없지만,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옆에 다가갔습니다. 그 애는 조금 흠칫했지만, 다시 문제를 풀었습니다. 우리 나이에 비하면 꽤 난도가 높은 문제였기에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공책을 곧장 펴서 그 문제를 적고 바로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거 이렇게 풀면 돼.”

그 애는 공책을 잠시 제 손에서 가져가더니 문제집과 번갈아서 계속 봤습니다. 문제집 적힌 자신의 풀이와 대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1분 정도가 지나자 그 애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너 이거 어떻게 알았어?”

그 말투는 진심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약간의 시기와 질투가 섞여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호기심과 긍정에 대한 것이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악수하며 말했습니다.

난 이재하야 네 이름은 뭐야?”

이성민이야. 문제 풀이 알려줘서 고마워.”

별 것 아닌데 뭘.”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 아까 저의 자리를 차지한 애 중 한 명이 종이를 구겨 성민이에게 던지며 말했습니다.

존나 시끄럽네! 씨발.”

그러자 그 애와 친구들은 키득키득하며 웃었습니다. 성민이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더니 그 애에게 뚜벅뚜벅 걸어가서 말했습니다. 말려야 했지만, 저에게는 그럴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저 뒷모습만을 바라봤습니다. 성민이는 그 애보다 키도 작고 몸도 훨씬 말랐습니다. 성민이가 그 애 앞에 도착하자 말했습니다.

. 여기 너만 쓰는 곳 아니야. 시끄러우면 와서 조용히 말하면 되잖아.”

무서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친구를 사귄 것 같았는데 다시 멀어져야 할 수도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제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 애는 곧바로 성민이에게 싸대기를 날렸습니다. 바닥에 고꾸라졌고 저는 곧바로 달려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넌 뭐야! 너도 처맞기 싫으면 자리로 돌아가.”

성민이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리지도 대답도 듣지도 못한 상태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자리로 돌아가자 그 애는 성민이를 구타했습니다. 몸을 돌돌 말고 그저 맞기만 했습니다. 저는 자리로 돌아가서 뒤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성민이처럼 될 수도 있다는 무서움이 더 다가왔으니까요. 몇 분이 지나자 제 옆에 성민이가 앉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너 괜찮아?”

그는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 괜찮아. 아까 하던 거나 마저 하자.”

안 괜찮았겠지요. 그런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그게 습관이 베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것을 안 이유는 직감이었습니다. 동질감 같은 냄새가 풀풀 퍼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일이 있어도 그는 저와 같이 다녔습니다. 처음으로 생긴 친구여서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괴롭힘까지는 제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도움 요청을 해보라는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일만 더 크게 만드니까요. 그저 그 애를 아무도 보지 않는 뒤쪽 공간에서 위로해줄 뿐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제 위로를 받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더 씩씩해 보였습니다. 성민이의 꿈은 검사였습니다. 나중에 가면 자기가 다 이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학업에 집중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학원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이 가난해 학원에서 버린 문제집을 주워 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문제집과 책들을 사주며 말했습니다.

나중에 잘되면 그때 잘해줘.”

그래. 고마워.”

첫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성적이 발표되었습니다. 성민이는 전교 1등을 맞았습니다. 그 뒤는 일진 무리가 바로 이었습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성민이는 전교 1등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 뒷산 쪽 공터에서 그들에게 맞았습니다. 재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구타는 거의 10분을 넘어갔습니다. 저는 몰래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구타가 끝나고 오히려 지친 쪽은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한 마지막 말은 잔인했습니다.

“1등 한 번만 더해 봐라.”

힘이 약한 사람은 과연 1등 할 자격도 없는 것일까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우르르 몰려 산에서 내려오자 성민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복에 묻은 흙을 털어냈습니다. 저도 곧장 달려가서 흙을 털어주었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성민이는 그 말이 질린 것인지 도움 되지 않은 것인지 이말 밖에 할 수 없는 제가 원망스러운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날 성민이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냥 내려가자.”

그래.”

산에서 내려가고 각자 집으로 향하는 동안 매일 밝았던 성민이는 이날 만큼은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서로 헤어질 때도 제가 인사했지만, 성민이는 고개만을 푹 숙이고 집으로 향해 걸어갔습니다.

다음 날이 되고 저는 일어나자마자 악몽을 꾼 듯이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상태로 불길하게 일어났습니다. 무언가 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별 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넘겼습니다. 그저 등교했습니다. 매일 저보다 일찍 오던 성민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1교시가 시작해도 점심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았습니다. 종례시간이 다가오자 선생님은 A4 용지를 가득 들고 교실로 들어왔습니다. 건넨 한마디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성민이가 죽었다는 제보가 접수됐어. 선생님은 아니라고 믿지만,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다들 여기에 제대로 된 내용을 적어.”

성민이의 자살은 저의 울분을 토해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마지막 본 날 그날 조금 더 같이 있어 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며 제 탓을 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나눠준 용지에 빼곡히 그들의 만행을 적었습니다. 1시간 정도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선생님이 용지를 걷어갔습니다.

며칠 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제가 쓴 글을 토대로 그들은 처벌을 받았지만,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퇴학과 봉사시간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큰 회의감에 사로잡혔습니다. 한 사람이 생명의 불씨가 꺼졌는데도 그들은 웃으며 떠났다는 점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학교에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말할 상대라고는 단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한 명도 저의 편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였습니다.

주말이 오기만을 빌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납작 엎드린 채로 조용히 지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는 엎드려 있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는 날을 반복했습니다. 날짜는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사건이 터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미친듯한 후회감과 회의를 느껴야 했습니다.

토요일이 되고 아침에 일어나기 무서웠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잠에서 깨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TV를 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를 지나치고 화장실로 들어가 용변을 본 후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뻔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저를 흘깃 보더니 말했습니다.

거기서 뭐해?”

아버지. 제가 사실 할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또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정확히 말하자면 귀찮아하시며 말했습니다.

뭔데? ?”

저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말했습니다. 성민이와 친하게 지내게 된 것부터 그리고 그의 괴롭힘을 방관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고 괴롭힌 애들은 약한 처벌만 받고 풀려난 것을 말이죠. 이제 아버지의 반응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배를 한번 긁더니 저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습니다.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

그러니까, 그게 너랑 뭔 상관이냐고.”

아니. 아버지 이건 그게 아니라.”

원래 약한 애들은 잡아먹히는 거야. 잘못은 그 누구도 저지른 게 아니야. 그게 사람의 순리야. 학교에서도 사회야 그곳도 결국은 그런 곳이야.”

저는 그때 처음으로 반항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꼬투리를 잡은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되어도 그런 소리를 하실 수 있어요?”

?”

제가 그렇게 돼도 그럴 수 있냐고요!”

어디서 소리를 질러! 다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싶어?”

병원! 병원! 병원! 아버지는 왜 면회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저를 아들이라고 생각하긴 해요? ?”

아들도 아들다워야 아들이지. 네 꼬락서니를 봐라.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자식인가.”

자식이 자랑거리 중 하나에 불과한 거예요? 그래서 정신병원에 있을 때 창피해서 단 한 번도 안 오신 거예요?”

나가! 나가!”

저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으며 말했습니다.

나갈 거면 아버지가 나가세요.”

몇 분이 흘렀는지 진짜로 아버지는 나가셨습니다. 저는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습니다. 저의 존재는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들도 아니며 학생도 아닙니다. 사람이긴 한 건가 싶었습니다. 책도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자 갑자기 눈물이 흘렀습니다. 미치도록 울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성민아. 성민아. 미안해.”

울음을 그쳤을 때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우는 것도 체력소모가 심했는지 피곤함이 미친 듯이 몰려왔습니다. 방에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났을 때는 오후 6시였습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들어오셨나 싶어 거실로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밖에 산책하러 가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운동화를 신고 아파트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순간 어디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조명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가 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말했습니다.

. 이 새끼 맞아.”

그 후 그는 저의 목에 팔을 휘감고 그 상태로 끌고 갔습니다. 팔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그의 완력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 공사장이었습니다. 인부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그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민이를 죽게 만든 그들 말이죠. 한 명이 나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적었지?”

무서웠지만, 복수심이 더 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생을 포기해도 이들은 꼭 죽이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적었는데! ?”

그는 저의 싸대기를 후려갈기며 말했습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맞았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통각이 마비된 걸 수도 있습니다. 한 대 맞고 가만히 있자. 그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곧이어 애들을 부르더니 저를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맞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맞는 동안에도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제가 한 손으로 집을 수 있을 것 같은 벽돌이 보였습니다. 맞으면서 기어갔습니다. 곧이어 벽돌을 잡았고 저에게 발길질하는 애 중 한 명의 발등을 찍었습니다. 그 애는 뒤로 넘어지며 소리 질렀습니다.
아악! 씨발!”

그러자 애들의 발길질은 멈추었습니다. 저는 벽돌을 잡고 붕붕 휘둘렀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전진하면서 말이죠. 그들은 당황하고 겁을 먹었는지 뒷걸음질을 하다가 한마디를 하고 떠났습니다.

미친 새끼. 나중에 보자.”

그러나 그들은 그날 시간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찾아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에 떨었지만, 다행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사실, 이제 필요 없다고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그저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노후보장이라는 수단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아버지는 부모가 아닌 저의 돈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저녁 10시쯤 아버지는 술에 만취한 상태로 들어오셨습니다. 저 나이가 먹도록 술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아버지가 들어오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다시 방문을 그가 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하고 싹수없게 뭐 하는 거야!”

저는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냉철한 눈빛을 하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저 자식으로 안 여기잖아요. 저도 이제 아버지를 그렇게 대하려고요. 껍데기뿐만인 아버지 말이에요.”

그러자 아버지는 거실로 다시 나갔습니다. 별일 없을 거로 생각했던 그때 그의 손에는 효자손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내리쳤습니다. 몸을 둥글게 말고 그대로 맞았습니다. 아팠지만, 눈물이 나오거나 슬프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일이 끝나고 제가 많이 육체적으로 성장했을 때만을 기다리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때면 그도 저를 함부로 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죠. 몇 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그는 헉헉거리면서 방을 다시 나갔습니다. 거실에 나가보니 소파에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한심했습니다. 저런 사람이 저의 아버지라는 것이 말이죠.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옷을 벗으니 몸에 멍이 심하게 들어있었습니다. 이 멍을 토대로 아버지를 경찰서에 가정폭력으로 신고할 수 있었으나, 참기로 했습니다. 제가 독립하는 그 날까지 마음을 기다리면서 말이죠. 세찬 물줄기가 닿는 것만으로도 조금 욱신거렸습니다. 샤워하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몸 곳곳이 쑤시고 지끈거렸습니다. 목이 말라 거실로 나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도 안방 침대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아예 저와 의절할 생각으로 느꼈습니다. 할 것이 없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이 요즘 따라 점점 더 좋았습니다. 책은 저에게 감정도 말도 요구도 하지 않고 그저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말이죠. 해가 있을 때부터 해가 없을 때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집안을 신경 쓰지 않은 아버지는 요리도 하지 않았고 레토르트 식품도 최근에는 사놓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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