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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18

#018 월요일 아침이 되고 저는 아버지보다 빠르게 잠에서 깼습니다. 저번에 마신 숙취가 지금이라도 올라오는 것처럼 두통이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몇십 년 만에 보는 어머니 앞에서는 적어도 후줄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지금 잘살고 있다는 생각을 각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깔끔하게 입었습니다. 아버지는 출근하면서 거실에서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오늘 어디가냐?”“아뇨. 그냥 한번 입어보고 싶어서요.”“특이하네. 그래. 출근한다.”“조심해서 다녀오세요.”아버지가 나가고 저는 거울을 보며 몸 곳곳을 봤습니다. 혹시라도 조금의 티.. 2024. 11. 15.
#017 2개월이 지나고 종강까지 3주가 남았을 때 더위가 몰려왔습니다. 저와 우요한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다른 애들과 달리 철학적인 물음을 가지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귀결되는 것은 자살은 개인의 권리라는 종착점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겁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삶을 더 연장하고 싶은 것인지 저희는 쉽게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누군가 고통 없이 자신을 죽여주기를 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중간고사는 둘 다 겨우 F 학점을 맞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했습니다. 교양, 전공 상관없이 말이죠.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도 맞고 정해놓은 틀에 대해 답만을 요구하는 방식에 반항 감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춘기가 막 .. 2024. 11. 14.
#016 2주 동안 그는 많이 변했습니다. 밖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놀다 오기보다 방 안에서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와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게임이나, 공부, 대화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자신이 다니는 병원을 소개해줬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스스로 저의 정신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생각을 비추며 가지 않았습니다. 설령 더 심해진다고 해도 말이죠. 그러자 그도 약을 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으로 말이죠.토요일이 되고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얼굴이라도 보아야 했습니다. 우요한도 집에 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며 제가 말했습니다.“너는 집 안가냐?”“안가도 괜찮.. 2024. 11. 13.
#015 개강이 다가올수록 저는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학업에 대한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지만,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아버지는 기숙사 신청도 했으며, 입학금도 이미 냈다고 말했습니다. 거리가 좀 있기에 통학은 힘든 상태였습니다. 개강하기 하루 전 저는 아버지와 함께 기숙사로 향했습니다. 그때 2인실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룸메이트와 크게 가깝게 지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말이죠. 아버지는 짐만 두고 가셨습니다. 짐을 다 풀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인기척이 느껴져 잠에서 일어났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옆을 보니 또래 남자애가 보였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쳤고 그 애가 먼저 말했습니다.“안녕하세요. 우요한입니다.”그 애의 첫인상은 약간 마른 몸매.. 2024. 11. 12.
#014 3월이 찾아오고 우리는 거리상 매우 멀리 떨어졌습니다. 연락도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믿었으니까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메시지 하나만 남기는 것도 남자가 있는 술자리에 가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아마도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2주 간격으로 만났습니다. 누나는 학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격렬하게 포옹하고 손을 잡고 산책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영화도 보고 남부러울 것 없는 그런 연인 사이였습니다.하지만,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서로의 입에서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권태기가 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 서로의 사랑이 .. 2024. 11. 12.
#013 학원의 수업은 고등학교 때처럼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5번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수업했습니다. 학원이 끝나면 언제나 신한강 집 앞으로 가서 담배를 태우고 얘기를 조금 나누다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의 원장님이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수업을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안 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원장님이 말했습니다.“이재하 맞지?”“네.”“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수능 반을 열려고 하는데 들어올 생각 있니?”사실 지금 수능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를 봐도 괜찮았습니다. 검정고시는 수능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에 수능 공부만 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저의 뜻대로 이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 2024.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