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18 #006 다음날이 되고 그래도 2시간 정도는 잤는지 졸음이 몰려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니면, 긴장된 탓인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제 문을 두 번 두드리며 말했습니다.“일어나라. 준비해야지.”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해 샤워했습니다. 샤워하는 동안 일부로 몸을 박박 씻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길 빌면서 말입니다. 언젠가는 나가야 했기에 물기를 닦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습니다. 옷을 입자 그제야 현실감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가는 곳은 일반 사람들이 가는 병원이 아니라는 점을 말입니다.차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습니다. 꽤 큰 건물의 병원이 저를 맞이해주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대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기다리다가 정신건강의학과라는 글씨가 써진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사.. 2024. 11. 11. #005 아버지는 월요일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나와 학교에 걸어갔습니다. 누구하고도 인사하지 않았습니다. 반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도 엎드렸고 점심시간이 되면 빨리 밥을 먹고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집에서도 혼자였지만, 옥상에서의 혼자는 조금 달랐습니다. 마치 저만 아는 비밀공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출입문 뒤쪽 공간으로 숨었습니다. 올라온 사람은 다름 아닌 선생님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공간마저도 없어졌습니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밖으로 나가자 여러 풍경이 보였습니다. 축구 하는 아이들 게임 하는 아이들 말이죠. 그들에게 다가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둘러보다가 학교를 지.. 2024. 11. 11. #004 아침에 일어나자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핸드폰을 켜자 한 통의 연락만이 와 있었습니다. 바로 골프를 치러갔으니 밥은 알아서 먹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2만 원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제 이 연락도 행동도 익숙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우울한 저를 티 낼 수 없었으니까요.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냉장고에서 여러 반찬이 보였지만, 일일이 꺼내먹기가 귀찮았고 설거지도 하기 싫었습니다. 저는 참치 통조림 하나와 마요네즈 통을 꺼내고 그릇에 밥을 퍼서 비벼 먹었습니다.밥을 다 먹자 할 것이 없었습니다. 2만 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근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기에 모자.. 2024. 11. 11. #003 시간은 야속하게도 어찌어찌 흘러갔습니다. 12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변한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 더 있었습니다. 왕따를 당한 이후로부터는 공부에만 매진했기에 성적이 좋았습니다. 전교에서 1등, 2등을 다투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교우 관계까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저의 성적만을 보고 모범생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뀐 것입니다. 바뀐 선생님은 애들을 관리하는 데에 아주 세심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상담한다고 했고 애들을 한 명씩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저는 제 차례가 다가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왕따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으면 했기 때문입니다.하루당 3명 정도가 불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의 마지막 차.. 2024. 11. 11. #002 다음날이 되고 저는 아버지의 출근길에 인사했습니다. 그리곤 어제 읽었던 책을 가방에 넣고 등교를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리만치도 등굣길에 사람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자연재해가 일어나 다들 집에 피신한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학교에 도착하고 조례가 끝난 후 애들 몇 명이 저에게 접근해 어제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오늘은 뭐 먹어?”저는 당연하게도 그런 질문에 대답보다 어제 느꼈던 신선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꺼내며 말했습니다.“이 책 알아?”“이게 뭔데?”“애들아. 너네는 죽고 난 이후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이 감정도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아?”애들의 반응은 점점 싸늘해졌습니다. 그러나 책에 푹 빠져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습니다.“죽음이라는 건 말이야. .. 2024. 11. 11. #001 평범한 삶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어쩌면 틀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남들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그것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비싼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미술을 하기도 바이올렛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하나 저한테 맞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의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표를 달고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곪았습니다.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이었습니다. 큰돈을 버는 만큼 큰 희생을 엄마와 나에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늦게라도 아버지가 집을 들어오면 자고 있더라고 밖으로 나와 인사를 .. 2024. 11. 11.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