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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03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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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야속하게도 어찌어찌 흘러갔습니다. 12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변한 것이라고는 나이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하나 더 있었습니다. 왕따를 당한 이후로부터는 공부에만 매진했기에 성적이 좋았습니다. 전교에서 1, 2등을 다투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교우 관계까지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저의 성적만을 보고 모범생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마저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뀐 것입니다. 바뀐 선생님은 애들을 관리하는 데에 아주 세심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상담한다고 했고 애들을 한 명씩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저는 제 차례가 다가오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왕따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하루당 3명 정도가 불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의 마지막 차례였기에 목이 더욱 쪼이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애 한 명이 다가오더니 엎드려 있던 저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습니다.

. 선생님이 너보고 교무실로 오래.”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습니다. 복도가 마치 원래보다 더 짧아 보였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굳게 닫혀있는 교무실 문 앞이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이 웃으며 저에게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보냈습니다. 바로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자 담임 선생님은 의자를 제 쪽으로 돌리며 말했습니다.

성적이 되게 좋네. 공부 열심히 하는구나!”

관심을 받았습니다. 애들에게 받는 관심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것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얼굴이 조금 펴지는 듯했습니다.

.”

그는 웃는 얼굴에서 갑자기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저와 마주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물었습니다.

애들하고는 어떻게 지내니?”

야구 배트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아니면, 거짓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여태까지 내버려 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랐습니다. 혹시, 사실대로 말한다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저는 결심했습니다.

선생님. 사실 제가 친구들하고 친하지가 않아서요. 공부만 했어요.”

그는 제 대답에서 대화를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나갔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었니?”

저는 사실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물론, 철학적이고 심오한 얘기를 주제로 삼아 말했다는 것을 빼고 학기 초에 애들에게 해주었던 것들 그리고 용변을 봐서 이 지경까지 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제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애들이 실수했구나. 선생님이 도와줄게. 내일 보자. 얼른 들어가.”

어떤 식으로 도와줄 건지 묻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묻지 않았습니다. 하교하는 발걸음이 이번에는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샤워하고 방 안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습니다. 예전에는 천장에 그려진 구름이 꽉 막혀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탁 트인 하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하게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그러던 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이불을 박차고 침대에서 내려와 곧장 거실로 나가 아버지에게 인사했습니다.

오셨어요! 아버지!”

그 말을 뱉고 나서야 너무 들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으나, 말한다면 여태까지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기에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상황이 좋게 다 풀리면 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요. 그냥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서요.”

시간을 보니 원래 퇴근 시간보다 일찍 들어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피곤해 보이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말하기 전에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을 오랜만에 손수 차리셨습니다. 식탁에는 곧이어 대창 전골이 올라왔습니다. 기름지고 짭짤한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말없이 먹던 도중 아버지는 넌지시 말했습니다.

오늘 승진했다.”

그 말은 아버지의 사회적 위치와 금전적으로 더 상태가 좋아진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웃으며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축하해요! 아버지.”

고맙다. 아들.”

우리의 상황은 이제 나아지는 것으로 가는 단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럴 줄 알고 있었고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샤워 후 희망찬 내일을 꿈꾸며 침대에 누웠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몇십 분을 뒤척거린 후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고 아버지는 조금 일찍 나갔는지 집 안을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크게 상관없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모든 것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뀔 테니까 말이죠. 저는 좋은 기분으로 등굣길에 올랐습니다. 애들은 전부 아는 체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곧 바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반에 들어가자마자 이번에도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대처를 할지 궁금했습니다. 애들하고의 싸움 같은 것만 붙이지 않는다면 일사천리로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조례가 되고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선생님을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금이 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애들하고의 원만한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 아닌, 더욱더 배척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종이 한 장이 모든 애에게 배부되기 시작했고 그 종이에는 자신이 누군가를 괴롭혔는지에 대한 질문들이 적혀있었습니다. 머릿속이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저는 당연하게도 그것에 아무것도 적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싶어 주위 애들을 살펴봤습니다. 다른 애들도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적지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몇 분 정도가 지나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다 적은 애들은 교탁에다가 올려놔.”

곧이어 교탁에는 종이가 쌓였습니다. 저는 올려놓으면서 은근슬쩍 다른 애들의 종이를 보았습니다.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제가 본 종이에는 모두 질문에 대한 답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탁에 모든 종이가 내려놓아 지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재하는 오늘 수업 끝나고 선생님 좀 보자.”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무리 어린 애라도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은 모두 저 때문인 것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곧이어 선생님이 가고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재 때문인 거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가 뭘 했다고.”

어울리지 못하는 제 잘못이지.”

어지러웠습니다.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저는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칸 안으로 들어가 토를 했습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업하는 동안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선생님이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수업 내용은 당연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저도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려대고 심호흡했습니다.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말로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까 봐 말이죠.

쉬는 시간마다 지옥이었습니다. 애들은 아침의 조례에 있던 일들에 대해 무수하게 말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제가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면 애들의 무수한 손짓과 말들이 저를 향해 더 옥죄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이 급하지 않은 이상 저는 계속해서 책상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났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와 종례하고 애들은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애들이 애초에 저에게 뭘 시켜주지도 않기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소 시간이 끝나는 게 무서웠습니다. 선생님이 무엇을 질문할지도 예측되지 않았습니다. 애석하게도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의자가 책상 위로 올라가자 애들은 집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텅 빈 교실에 덩그러니 저와 선생님 둘만이 남았습니다. 선생님은 손짓으로 저를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손짓에 이끌려 선생님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습니다.

애들이 적은 거를 봤는데. 하나도 너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 혹시 왜 그런지 알 것 같니?”

사실 저는 애들이 적은 것이 없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학년이 지나고 5학년이 될 동안 저를 직접 괴롭힌 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엔 재하가 약간 부적응이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제 탓으로 돌리는 모습이 큰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선생님이라면 무언가 다를 줄 알았는데 저를 향해 부적응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니 이 사람도 저에게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 이 지옥을 가장한 면담이 끝날 테니까요. 제가 말했습니다.

.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제야 문제가 해결되기라도 한 듯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곤 제 어깨를 두 번 툭툭 두드리더니 말했습니다.

내일부터는 노력해보자. 알겠지?”

이번에도 간단하게 단답형으로 얘기했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래. 내일부터는 달라진 모습 보여주면 좋겠어. 그럼 이만 가 봐.”

저는 90도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학교를 어떻게 다녀야 할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누구하고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사실 누구하고도 마주쳐도 큰 상관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어떤 궁금증도 제시하지 않을테니까 말이죠.

집에 돌아왔습니다. 허망한 마음을 잡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잡생각이 여럿 들었습니다. 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아무 생각도 안 들 테니까 말이죠. 다행인 것은 내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기에 조금은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안정감은 사실 독이었습니다. 회피에 그치지 않는 감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혐오감에 들게 했습니다.

일어난 시간은 저녁 10시였습니다. 학교에서 한 번도 물을 마시지 않았기에 목이 탔습니다. 곧바로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가 소파에서 TV를 보다가 잠이 든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방으로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고 컵을 꺼내 정수기에 차가운 물을 받아 마셨습니다. 목구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이 아닌, 아픔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곧바로 다시 잡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생각을 지우기 위해 다시 잠이 들려고 했지만, 이미 꽤 잠을 잔 탓인지 잠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에서 도피하기에는 책이 좋았습니다. 저는 책장에서 아무 소설이나 한 권을 꺼냈습니다. 그리곤 읽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보통 어려운 소설이었으나, 책을 많이 읽는 저에게는 읽는 속도만 조금 느려질 뿐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 덮고 시계를 보자 새벽 3시였습니다. 책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싫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애들과의 얘기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들과의 무리에서 떨어진 후로 도피할 수 있는 것은 책과 잠뿐이었습니다. 무엇을 선택해도 저에게 득이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아니 모든 것이 마이너스였습니다. 책을 한동안 읽었더니 눈에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잠잘 수 있을 거로 생각해 침대에 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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