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자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핸드폰을 켜자 한 통의 연락만이 와 있었습니다. 바로 골프를 치러갔으니 밥은 알아서 먹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2만 원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제 이 연락도 행동도 익숙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와 같이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우울한 저를 티 낼 수 없었으니까요.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냉장고에서 여러 반찬이 보였지만, 일일이 꺼내먹기가 귀찮았고 설거지도 하기 싫었습니다. 저는 참치 통조림 하나와 마요네즈 통을 꺼내고 그릇에 밥을 퍼서 비벼 먹었습니다.
밥을 다 먹자 할 것이 없었습니다. 2만 원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근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기에 모자를 푹 눌러썼습니다. 중고 서점은 여기서 1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거리였기에 그 사이 누군가를 마주친다는 것은 희박한 확률이었습니다. 서점에 도착하자 책을 둘러봤습니다. 규모가 꽤 컸기에 오래 걸렸습니다. 소설 두 권을 사고 계산대에 가려는 순간 제가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 계산대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책장 뒤로 숨었습니다. 그리고 서점 밖으로 나갔는지 확인하려는 순간 눈이 마주쳤습니다. 다시 책장 뒤로 숨었습니다. 저를 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가올 때마다 저는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계산대를 쳐다보는 순간 선생님과 마주쳤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보며 웃더니 말했습니다.
“재하야. 여기서 뭐하니?”
그리고는 제가 들고 있던 소설 두 권을 보더니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네가 읽기에는 어려울 텐데? 이걸 사려고?”
마치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의 존재에 대해서 반박하기에는 힘들었지만, 용기 내어 말했습니다.
“제가 이런 책들을 좋아해서요.”
그리고 그 질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선생님은 눈치가 없는 것인지 일부로 그러는 것인지 질문했습니다.
“애들하고는 요새 어때?”
답하기가 싫었습니다. 알면서도 질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여기서 선생님 탓을 하며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냥 그래요.”
“그래. 한 번에 친해질 수는 없지. 노력해 봐.”
그리고 그는 계산을 미리 했는지 바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도 책을 계산대에 올려놓았습니다. 중고 서적이라 그런지 2만 원으로 두 권의 책을 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책을 계산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똑같은 마음으로 말이죠. 제발 누구에게도 눈이 띠지를 않길 바라면서요. 포장지를 뜯고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린 다음 책을 펼쳤습니다. 냄새는 마치 새것 같았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는 배가 고파질 때쯤이었습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저녁 7시가 되어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들어오시지 않았습니다.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반찬들을 꺼내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상했는지 쉬었는지 말이죠. 다행히도 반찬은 다 괜찮았습니다. 밥을 꺼내 고추장을 넣고 반찬들을 모조리 때려 넣은 다음에 비벼서 먹었습니다. 점심과는 같은 음식을 먹기가 싫었기에 참치 통조림과 마요네즈는 외면했습니다.
밥을 다 먹고 양치를 하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곧장 양치를 그만두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언가 조금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고개를 푹 떨구고 비틀비틀했습니다. 어디가 아픈 사람처럼 말이죠. 아버지는 저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물 가져와.”
저는 곧장 컵에 물을 따라 아버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물을 입에 머금고 삼키더니 말했습니다.
“안 시원하잖아!”
갑작스러운 호통에 놀랐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고 하며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갑자기 컵을 바닥에 던졌습니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컵이 깨졌습니다. 아버지는 깨진 유리를 피해 신발장에서 거실로 들어와서 저를 노려봤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더니 토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밖에서 깨진 유리를 하나씩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파편들은 청소기를 돌려 치웠습니다. 어느새 손을 보니 유리에 살짝 베였는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아픔보다 아버지가 저를 대한 태도가 더 쓰라렸습니다.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1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함을 느낀 제가 문을 열었더니 역겨운 토 냄새가 퍼져있었습니다. 변기에 물을 내리고 변기에 얼굴을 걸친 채 자는 아버지를 깨우려고 했습니다. 툭툭 조심스럽게 건드리자 아버지가 일어나더니 말했습니다.
“왜.”
방금까지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별 말하지 않고 간단하게만 말했습니다.
“들어가서 주무셔야죠. 아버지.”
아버지는 아까의 비틀거림 없이 온전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세면대에서 입 주변을 닦고 물로 헹구었습니다. 저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곧장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서운했습니다. 저에 대한 사과는 아니더라도 아까의 일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가져주길 바랐습니다. 안방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들렸습니다. 그 소리 때문에 책을 읽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침대에서 뒤척거리기만 했습니다. 해가 이미 진지는 오래였고 다시 뜨기 시작하는 그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거실로 나오는 걸음 소리가 들리자마자 저는 바로 자는 척을 했습니다. 제 방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문은 다시 닫혔고 눈을 뜨자 방 안에는 저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곧장 거실로 나가니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배척받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을 쓸쓸하게 맞이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2만 원을 탁자에 두고 갔습니다. 그리고 깨진 유리 조각들은 식탁에 치워지지 않은 채로 있었습니다. 저는 한참 지나버린 달력을 찢어 유리 조각들은 감쌌습니다. 밖으로 나가 분리수거장으로 향해 그것을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냉장고에는 반찬도 없었습니다. 2만 원으로 무엇을 사 먹고 싶지도 않았고 이 돈을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간직한다거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누구든 상관없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