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이 되고 저는 아버지의 출근길에 인사했습니다. 그리곤 어제 읽었던 책을 가방에 넣고 등교를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리만치도 등굣길에 사람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자연재해가 일어나 다들 집에 피신한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학교에 도착하고 조례가 끝난 후 애들 몇 명이 저에게 접근해 어제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뭐 먹어?”
저는 당연하게도 그런 질문에 대답보다 어제 느꼈던 신선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이 책 알아?”
“이게 뭔데?”
“애들아. 너네는 죽고 난 이후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이 감정도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아?”
애들의 반응은 점점 싸늘해졌습니다. 그러나 책에 푹 빠져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건 말이야. 사람 몸에 있는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거래. 그리고 우리가 친하게 지내게 되는 감정도….”
그때 한 애가 하품을 하더니 제 말을 중간에 탁하고 잘랐습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오늘 뭐 사줄 거냐니까?”
“어?”
저는 당황했습니다. 분명 이것이라면 애들과의 연결고리를 하나 더 만들어 줄 거로 믿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혹시 저의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 한 번 더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애들아. 우리의 우정은 어떤 것에서 비롯된 거냐면….”
이번에도 한 애가 다시 말을 잘랐습니다.
“이상해 너. 뭐 사줄 거냐고 물었는데 다른 소리만 하고. 재미없어. 가자.”
그 이후로 애들은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저를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말이죠. 저는 그 애들이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여 다른 애들에게 찾아가 똑같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상한 말을 한다며 저를 피해 도망갔습니다.
어느 새부터인가 잘못되었습니다. 이제는 애들이 저에게 무엇을 사줄 거냐고 물으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네도 자리를 황급히 뜨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무서웠습니다. 사회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배척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애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저의 노력은 물거품에 그쳤습니다. 이 상황을 다시 돌리려면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교하고 아버지만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은 저녁 7시가 되었는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저녁을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기 초 2주간은 애들과 저녁을 먹고 들어왔기에 집에서 먹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언제나 저녁을 먹고 들어오셨기에 집에서 밥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도움이 중요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얼굴 밑에는 눈그늘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런 모습을 보고 심기를 거슬리지 않게 하려고 인사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꼭 부탁해야만 했습니다.
“저…. 아버지….”
“나중에 말하자. 피곤하다.”
그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저는 거실에 혼자 남겨졌습니다. 곧이어 안방에 있는 화장실에서 샤워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멈추기만을 다시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샤워기 소리가 멈추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거실로 나와서 TV를 틀었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아까는 무슨 일이냐?”
저는 머뭇머뭇하면서 괜히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며 말했습니다.
“그게…. 용돈이 필요해서요.”
“얼마나?”
그 단어에 다시 고민해야 했습니다. 용돈이라고만 말하면 저번과 같은 액수를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던 때 아버지가 한 번 더 말했습니다.
“얼마 필요하냐고 물었다.”
애들을 데리고 제일 싼 분식집이라도 가려면 15만 원은 족히 필요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15만 원이요.”
아버지는 의문점을 가졌습니다. 다리를 꼬고 턱을 손에 받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큰돈이 왜 너에게 필요하지?”
제 나이에는 확실히 큰돈이었습니다. 저는 이유를 제대로 말해야 했습니다. 물론 돈 없이는 친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빼고, 말이죠.
“애들이랑 같이 뭐 좀 먹으려고요.”
“네가 사주는 거냐?”
“네? 네.”
주실 거로 생각했던 제 생각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다른 말을 꺼냈습니다.
“왜 네가 사주는 거냐?”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요….”
“네가 호구냐? 애들을 그렇게 사줘서 나중에 당연하게라도 여기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호구가 되어도 상관없었습니다. 애들하고 친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말이죠. 그리고 아버지는 예측이라도 한 듯 이미 제가 어떤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지 아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해야 할 건 아버지의 말에 긍정의 대답을 표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네. 아버지….”
“들어가 봐라.”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내일 제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 알면서 말이죠.
다음 날 학교에 갔습니다. 오만가지 걱정을 하면서 말이죠. 학교에 가는 동안 그 누구와도 부딪히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저는 아버지 없이는 아무 능력도 없는 꼬맹이 하나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반에 가는 걸음 하나하나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반에 들어가자마자 모두가 저를 한 번씩 쳐다봤습니다. 눈을 마주치기가 무서웠습니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 정적은 몇 초 되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마치 몇 시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몇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다시 애들끼리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밑으로 깔고 자리에 앉아 바로 책상에 엎드려 버렸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다가오는 애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애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습니다. 사회에 저도 녹아들고 싶었습니다. 벌써 이렇게 엉망진창이면 다음의 제가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습니다. 수업시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애들을 볼 자신이 없어서 쉬는 시간만 되면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화장실이 너무나 가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소변이었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대변이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제 나이에 학교에서 대변을 본다는 것은 큰 놀림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상한 애로 이미 찍힌 상태에서 그런다는 것은 더욱 난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해서 화장실에 급하게 달려갔습니다. 용변을 보는 도중인데 갑자기 화장실 안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무언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아이가 제가 있는 칸에 노크를 두 번 했습니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습니다. 답을 하지 않자 그 애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무슨 놀림을 받을지 말입니다. 제가 원한 관심은 이런 종류의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두드림을 계속해서 무시했습니다. 그게 최선이었으니까요.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지금이 좋을 때라고 생각되어 밖으로 나가자 애들의 손가락과 시선은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애들은 하나같이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야 얘 똥 쌌어.”
그 말에 반문해야 했습니다. 저는 애들이 생각하는 이상한 소리를 말했습니다. 용변을 본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말을 하는 도중에 창피함에 휩쓸려 더듬으며 자신 없게 말했습니다. 애들은 그런 저를 더욱 몰아붙이면서 말했습니다.
“이상한 애가 똥 쌌어!”
손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시야는 손 틈으로만 보며 반으로 돌아갔습니다. 책상에 다시 엎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애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제 귀에 스며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참지 못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혼자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나 이상한 애도 아니고! 똥쟁이도 아니야!”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중 덩치가 커 보이는 한 애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소리 지른 것은 후회할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그 애가 말했습니다.
“야. 장난이잖아. 혼자 왜 그러냐? 너 진짜 이상해.”
장난치고는 과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곧장 그 애의 주먹에 얼굴을 맞을까 봐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애가 이제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애는 한마디 더 했습니다.
“야. 대답해. 내가 말하잖아.”
제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선택지는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미안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응….”
그 애는 다시 다른 애들과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아까의 무서웠던 모습은 어디 가고 환한 표정으로 저에 대한 욕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이상한 애로 낙인찍히며 왕따를 당했습니다. 애들에게 말 걸기가 무서워졌고 누가 제 앞에서 귓속말이라도 하면 저를 욕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가오는 이들은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도피를 선택했습니다.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마다 애들이 하나도 오지 않는 옥상에 올라가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서 있었고 눈이 오면 맞았고 아무것도 내리지 않는 날에는 햇볕을 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