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삶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어쩌면 틀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남들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그것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비싼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미술을 하기도 바이올렛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하나 저한테 맞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의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표를 달고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곪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이었습니다. 큰돈을 버는 만큼 큰 희생을 엄마와 나에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늦게라도 아버지가 집을 들어오면 자고 있더라고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어머니는 밥을 차리고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매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유치원에서 실수로 집으로 가는 버스를 잘못 타서 학원에 가지 못한 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그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매를 들어 저를 때렸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상황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특히 저를 낳고 나서 더욱 가부장적으로 변한 아버지를 말입니다. 어머니는 결국, 저를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어딘가로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말입니다. 저를 돌봐줄 사람도 없어지자 저는 유치원 시절을 유모에게 맡겨졌습니다. 당연히도 어머니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바쁘다며 입학식에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여기는 사랑의 가치는 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입학하면서 저에게 나이에 맞지 않는 큰 용돈을 쥐여주면서 애들과 노는 데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따라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에 들어가자마자 고민했습니다. 누구를 만나야 할지 최대한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가난한 아이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돈을 많이 쓸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많은 양의 돈을 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반 애들에게 음식을 먹자고 했습니다. 하나하나 찾아가는 것이 아닌, 선생님이 나가고 수업을 하기 전인 매우 짧은 시간을 틈타서 말이죠. 애들 대부분은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하기보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긍정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그날 하교하고 애들과 같이 햄버거집으로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반에 있는 애들은 20명이 조금 넘었기에 아버지가 준 돈을 거의 다 쓸 수 있었습니다. 애들에게는 당연히도 호감을 샀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햄버거를 사주니 고맙기도 하고 좋았기도 한 감정이 교차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햄버거를 다 먹은 아이는 저에게 한 명씩 집에 가도 되냐고 물었고 저는 당연히 된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자랑했습니다. 돈을 전부 썼다고요. 아버지는 조금 놀라셨지만, 잘했다고 제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저는 칭찬받은 것보다 혼나지 않았다는 점에 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많은 액수의 용돈을 2주 동안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해결하느라 골치가 아팠습니다. 음식점에 데려가기도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사주면서 말이죠. 매일매일 그 돈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친구들은 이 상황에 점점 익숙해졌고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출근할 때 제가 일어났습니다. 저는 당연히도 용돈을 주실 줄 알았기에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이 닫힐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닫힌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용돈을 왜 안 주세요?”
아버지의 표정은 엄했습니다. 출근 시간에 방해라도 되는 것처럼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말했습니다.
“애들하고 아직도 안 친해졌니?”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친해지긴 했으나, 이것은 돈과 연결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멍하니 서 있다가 아버지가 한 번 부르자 대답했습니다.
“재하야!”
“네! 아빠. 친해졌어요. 안 주셔도 될 것 같아요.”
그 말을 하고 아버지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끔찍했습니다. 저랑 그들과의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돈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것이 없다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웠습니다.
학교에 도착하자 다른 애들과 다르지 않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조례하고 나갔습니다. 수업까지는 10분이 남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앞으로 나가 애들에게 오늘 먹을 음식을 정했겠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한 애가 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뛰고 손발이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애는 제 옆에 앉자마자 말했습니다.
“오늘은 뭐 사줄 거야?”
그 짧은 문장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떤 변명을 해도 구차해 보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답을 하지 않자 그 애는 제 이름을 한 번 더 불렀습니다.
“재하야?”
이제는 대답해야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응?”
“오늘 뭐 사줄 거야?”
제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오늘은 안 될 것 같아. 다음에 사줄게.”
“알았어. 그럼 나 가볼게.”
그 아이는 그대로 떠나는 듯하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반 전체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말했습니다.
“오늘 재하가 못 사준데!”
수치심과 창피함 그리고 모멸감이 들었습니다. 애들은 저에게 한 발자국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학교가 끝날 때까지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밖에 나가 공기를 마시고 싶어도 자리에 꿈쩍하지 않고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교 시간이 되고 저는 어제와 아예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혼자 학교 밖을 향해 걸었습니다. 누구도 제 주변에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 오래된 추억이라도 생각나는 듯이 어제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습니다. 친구들과 떠들며 같이 감자튀김을 먹는 모습이 말이죠. 어떤 친구는 감자튀김이 부족하다며 다른 애들 것을 뺏어 먹으려고 하자 제가 더 사준다며 중재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혼자 남겨진 떠돌이 개처럼 외톨이일 뿐입니다. 집에 오자마자 할 것이 없던 저는 책을 읽었습니다. 소설, 시, 인문, 과학 등을 구별하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아무 책이나 한 권을 꺼냈습니다. 인문 교양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책에는 저의 생각과 완전히 반대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과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우정, 사랑, 분노 등이 열거되어 있었습니다. 그 책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는 저녁 시간 전까지 그 책을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아버지는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샤워한 후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저에게 말했습니다.
“친구들하고 잘 놀고 왔니?”
순간 뜨끔했습니다.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행동을 하면 혼날까 무서워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네. 잘 놀고 왔어요. 아버지.”
아버지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무표정을 하고 무덤덤하게 한마디 내뱉었습니다.
“그래.”
그 이후로 저는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라면 혹시 다른 애들과 다시 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다 읽고 난 후 애들에게 이것을 공유하며 같이 웃을 생각에 책을 다 읽고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