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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14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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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찾아오고 우리는 거리상 매우 멀리 떨어졌습니다. 연락도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믿었으니까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메시지 하나만 남기는 것도 남자가 있는 술자리에 가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아마도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2주 간격으로 만났습니다. 누나는 학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격렬하게 포옹하고 손을 잡고 산책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영화도 보고 남부러울 것 없는 그런 연인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서로의 입에서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권태기가 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 서로의 사랑이 식은 건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어떤 말을 내뱉어도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 상태로 내버려 둔 채로 한 달이 흘렀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사람을 바꾸기에는 굉장히 긴 시간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변했습니다. 연락도 뜸해지고 전화도 뜸해지고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약간의 의무감이라고 느낄 정도의 사랑이었습니다. 마치, 결혼했다가 어쩔 수 없이 1020년이 지나 우정만 남아버린 그런 느낌 말이죠. 이제는 진짜 말해야 했습니다.

그날 누나는 술을 늦게까지 마시고 자취방에 도착하자마자 저에게 잔다고 연락을 보냈습니다. 시간은 새벽 두 시였습니다. ‘할 말 있어. 좀 있다가 자면 안 될까?’라고 보냈습니다. 누나는 귀찮은 듯이 나중에 하자라며 말을 끝냈습니다. 이대로는 진전이 없다고 판단해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음이 계속해서 이어졌지만, 받지 않았습니다. 큰 허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수능 공부 중이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도 누나에게 연락은 없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냥 연락은 안 하는 것인지 몰랐지만,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누나에게 연락이 온 것은 오전 열 시였습니다. 그것도 아주 형식적이고 자신의 상태를 보고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나 강의 갈게.’ 그 메시지를 보고 뭐라고 답을 보내야 주제를 변환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시간 돼?’ 그리고 답이 온 건 다시 두 시간이 흘렀을 때였습니다. ‘오늘 저녁에 약속 있어서 점심에 잠깐 통화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점심이 되고 누나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1시 정도가 되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받았습니다. 통화는 연결됐지만, 서로 10초 정도 말없이 정적이 흘렀습니다. 제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누나, 요새 뭐해?”

누나는 마치 바쁜 듯이 아니, 이 흘러가는 시간 아깝고 귀찮은 듯한 말투로 말했습니다.

대학 다니지.”

그게 아니잖아.”

그럼 뭔데?”

우리 사이 어떻게 생각해?”

연인 사이잖아.”

나 사랑하긴 하는 거야?”

그 말에 누나는 순간 멈칫거렸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야 박가연 언제 와!’라고 크게 외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나가 말했습니다.

나 먼저 가볼게.”

가면 내 맘대로 상상할 것 같아. 대답 좀 해주고 가면 안 돼?”

가볼게.”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관계일까요. 연인 사이지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운 그런 정의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런 슬픔을 잊고자 공부에 집중하려 했습니다. 자습 시간에 문제집을 풀다가 저도 모르게 감정이 돋구쳤습니다.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눈물로 휴지를 닦았습니다. 그 상태로 십오 분 정도 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발걸음은 힘이 없었습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바로 꺼내서 확인하니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장문으로 말이죠. 그때부터 불안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 먼저 하고 싶어. 우리 관계는 이미 글러 먹은 것 같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나오기 힘들고 연락도 뜸해지고 잘 만나지도 않고 아무래도 육체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마음이 맞는 것 같아. 그리고 이런 관계가 지속하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 사실 나도 이제 좀 자유로워지고 싶어. 언제나 너라는 목줄에 내가 맬 수는 없는 거잖아. 우리 이만 헤어지자. 미안해.’

얼핏 보면 제 탓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전부 누나의 문제였습니다. 연락도 만나는 주기도 그리고 목줄이라는 단어를 보자 저는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게 어떻게 목줄로 생각되는지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답장하려고 글을 써 내려가는 와중에 제가 이렇게까지 매달려봤자 달라지지 않기에 허탈하게 한마디만 보냈습니다.

그래.’

그 이후로 우리는 이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공부는 이제 저에게 있어서 필수조건이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꼭 해야만 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자신을 보면 누나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했습니다. 제 마음속이 곪는 것도 모른 채 말이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수능이 다가왔습니다. 준비물을 챙기고 시험을 봤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사실상 끊은 채로 공부에 매진했기에 성적은 매우 좋게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최상위권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합격의 순간 기쁨보다는 허탈감이 돌아왔습니다.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까지 도달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이제 할 것이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술과 담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렇기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주로 아버지와 마셨으나,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아 방에 들어가 혼자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 잠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속도 안 좋고 머리도 아팠으나, 그것은 술을 마시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차차 줄어들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하게도 이런 저를 안타깝게 여기는 동시에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재하야 술 마시는 건 괜찮은데. 적당히 마셔야 할 거 아니냐, 그러다가 알코올 중독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때마다 제가 하는 말은 똑같았습니다.

괜찮아요.”

그렇게 한 달을 매일 소주 두 병씩 마셨습니다. 담배도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태우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대학교에서는 OT가 열렸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멀어진 지 꽤 오래되었기에 그리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기에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만한 용기가 사그라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전증이 심해졌습니다. 밥을 먹을 때 숟가락을 겨우겨우 들어 입으로 넣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의심하며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손을 떨어? 알코올 중독 아니야?”

그때 저도 모르게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알코올 중독 아니라고!”

아버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알코올 중독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말은 부자 관계에도 금이 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네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보라고 했습니다. 할 말이 없어졌고 아버지는 병원을 가서 판단하자고 했습니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그것만큼 확실하게 판별할 방법이 없기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접수하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의사는 술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질문했습니다. 일주일에 몇 번 마시는지 한번 먹으면 얼마나 마시는지 그리고 간 수치 검사도 했습니다. 결과는 알코올 중독 중증이었습니다. 의사는 입원을 2주 정도 권유했습니다. 아버지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저는 진료실에서 가지 않겠다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결과는 강제 입원이었습니다. 2주 동안 저는 그곳에 다시 갇혔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자 복통과 두통 그리고 손 떨림이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대부분 게워내야 했습니다. 달랐던 점 하나를 꼽자면 아버지는 거의 매일 방문해서 저를 보고 갔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었기에 원망과 감사함의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2주가 지나고 복통과 두통은 없어졌으나, 수전증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퇴원했을 때의 날짜는 개강하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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