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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15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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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이 다가올수록 저는 긴장감이 들었습니다. 학업에 대한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지만,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아버지는 기숙사 신청도 했으며, 입학금도 이미 냈다고 말했습니다. 거리가 좀 있기에 통학은 힘든 상태였습니다. 개강하기 하루 전 저는 아버지와 함께 기숙사로 향했습니다. 그때 2인실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저는 룸메이트와 크게 가깝게 지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말이죠. 아버지는 짐만 두고 가셨습니다. 짐을 다 풀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인기척이 느껴져 잠에서 일어났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옆을 보니 또래 남자애가 보였습니다. 서로 눈을 마주쳤고 그 애가 먼저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요한입니다.”

그 애의 첫인상은 약간 마른 몸매에 보통 키 그리고 옷을 잘 입었습니다. 저도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재하입니다.”

저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질문 세례가 이어졌습니다.

혹시 몇 학년이세요?”

. 1학년입니다.”

진짜요? 저도 1학년이에요. 말 편하게 해도 되죠?”

.”

어느 학과야?”

문예창작학과.”

! 나도 문예창작학과야.”

그렇구나.”

친하게 지낼 생각이 없던 저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애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과 답을 오갔습니다. 지쳐서 담배를 피우러 나가려고 할 때 그 애도 같이 나왔습니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같이 피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 애는 다시 짐을 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첫 수업을 들으러 일어나 샤워하고 옷을 입었습니다. 그도 저와 같은 학과여서 수업 겹치는 부분이 많아 같이 강의실로 들어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저희 둘은 나란히 앉았습니다. 수업을 들으려는 저와 반대로 그 애는 계속해서 다른 동기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솔직히 가감 없이 말하자면 거슬렸습니다. 어차피 대학교를 졸업하면 볼 사이도 아닌 존재들에게 저렇게까지 친밀감을 형성하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애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꾸준히 저에게 다가오려 했고 저는 그를 어느새 밀어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애에게 있어서 한정된 얘기입니다. 다른 애들과는 여전히 잘 어울리지 못했으니까요. 처음에는 관심 없이 그를 보다가 관심 있게 보자 그의 생활방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밖에서와 달리 방 안에서의 성격도 점차 틈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방에서는 쓸쓸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마치 자기 혼자 무엇을 전부 짊어지려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밖과 다르게 잘 웃지도 않았습니다. 밖에서는 술잔을 기울이며 누구보다도 쾌활한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완전 반대였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마다 약을 먹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저와 단둘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기숙사에서는 술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우리는 밖으로 향했습니다. 달랐던 점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버스를 타고 거의 30분 가량을 이동했습니다. 내린 곳은 고급 칵테일바였습니다. 이 나이에 가기는 어려운 곳이었지만, 저는 아버지에게 용돈을 넉넉히 받는 덕에 상관없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여기 맞아?”

. 맞아. 돈은 걱정하지마 내가 낼게.”

아니야. 난 괜찮아.”

알았어.”

보통이라면 자기가 산다고 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 대다수인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칵테일바에 들어가서 앉자마자 종업원이 들어와 저희에게 기본으로 제공되는 과일과 치즈를 놓아주었습니다. 그 애는 자주 오는 듯이 자연스럽게 위스키 한 잔을 주문하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뭐 마실래?”

나도 너랑 같은 거 마시지 뭐. 이런 곳이 처음이라서.”

그래.”

위스키 두 잔의 가격은 꽤 비쌌습니다. 그는 술이 나오자마자 한 번에 입안에 넣고는 삼켰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 잔을 더 시켰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무슨 일 있어?”

좀만 더 취하고 말해줄게.”

저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랐습니다. 최근에 이상한 점이 나타나거나 그런 것은 없었으니까요. 위스키가 다시 나오고 그가 말했습니다.

넌 왜 그렇게 애들을 싫어하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굳이 제 과거사를 다 밝힐 필요는 없다고 느꼈기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좀 사람들에 대해서 안 좋은 과거가 있었어.”

그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위스키를 입에 대고 목으로 넘겨보았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지나가는데 어디에 위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솔직히 맛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차라리 소주가 훨씬 나았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 약 먹는 거 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먹잖아.”

맞아. 잘 알고 있네. 사실 나 우울증이야. 그냥 누구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그 상대가 너밖에 없더라고.”

우울증이라는 말을 듣자 예전 기억이 났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되도록 이런 얘기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좀 의외지?”

생각해 보니 그랬습니다. 밖에서는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고 대학 생활을 즐기는 신입생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어두운 그늘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말이야. 고등학교 때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가 사고로 죽었거든. 그 이후로 예민해지고 혼자 있으려고 하다 보니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더라고 그 이후로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절충한 조언이 필요한 걸까요.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본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그런 모습을보이자 그가 말했습니다.

내 시선으로 너를 봤을 때는 이상한 동질감 같은 게 들더라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몰라도 너도 뭔가 꽤 사연 있어 보여.”

정통으로 정곡이 찔렸습니다. 그는 마치 내가 이야기를 하라는 명령 같았습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요. 분위기는 저의 차례로 돌아왔고 저는 말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좋은 유년기를 보내지는 않았어. 남들보다 예민했고, 감정적이고, 이상한 사람이었어. 어릴 때부터 늘 혼자였어. 남들과는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피해망상일 수는 있겠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폐쇄 병동에도 입원해 본 적도 있어.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는 낫지만, 아직 어느 정도 불안한 듯해. 병원에 다시 갈까 생각도 들어.”

내 생각이 맞았네. 동질감이 느껴지더라.”

담배 한 대 피울래?”

그러자.”

저희는 흡연실로 들어가서 담배를 태웠습니다. 연기를 내뱉는 순간이 마치 한숨을 쉬는 것 같았습니다. 담배를 다 태우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2시간 정도가 지났습니다. 저와 다르게 그는 술에 조금 취해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더 했습니다.

너무 힘들다. 이 짓도. 남들 앞에서 괜찮은 척 좋은 척 웃는 척 행복한 척 전부 다 지긋지긋해. 그냥 나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없을까? 아니, 사랑은 바라지도 않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아까 과거의 얘기를 하기 싫다는 저는 술이 들어가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향을 바라는 그에게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미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변하지 않았겠지. 그런 사람은 없어. 그냥 우리는 우리대로 살아가는 거야. 철저히 사회에서 고립되어 가는 것처럼.”

그는 정신이 되돌아온 것처럼 자세를 고쳐 제대로 의자에 앉았고 저를 한 번 바라보고 위스키를 마셨습니다. 그러더니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했습니다.

부정적이네.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그래서 너는 어떤데?”

무슨 말이야?”

넌 어떠냐고. 말 그대로.”

난 이미 포기했어. 그래서 그냥 나대로 살려고. 그게 음침하든 어둡든.”

나도 그렇게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건 너의 선택이지.”

이제 못 마시겠다. 담배 피우고 가자.”

이번에는 흡연실이 아닌,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런 도중 그는 속이 좋지 않다며 화장실로 갔습니다.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화장실로 찾아갔습니다. 변기에 토를 하고 그대로 잠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버스를 타고 가기는 무리였습니다. 다행인 것은 옷에 묻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를 깨우고 택시를 불러 타고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휘청이면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방 안에서는 지독하게 술 냄새가 났지만, 코는 어느새 적응했고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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