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17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4.
반응형

2개월이 지나고 종강까지 3주가 남았을 때 더위가 몰려왔습니다. 저와 우요한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다른 애들과 달리 철학적인 물음을 가지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귀결되는 것은 자살은 개인의 권리라는 종착점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겁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삶을 더 연장하고 싶은 것인지 저희는 쉽게 시도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누군가 고통 없이 자신을 죽여주기를 원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중간고사는 둘 다 겨우 F 학점을 맞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했습니다. 교양, 전공 상관없이 말이죠.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도 맞고 정해놓은 틀에 대해 답만을 요구하는 방식에 반항 감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춘기가 막 온 소년처럼 말이죠. 기말고사도 아마도 똑같이 그럴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점점 폐쇄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밖에 나가길 꺼리고 기숙사 방 안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말이죠.

기말고사가 다가왔습니다. 남들은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공부할 때 저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놀지도 않았고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말고사도 당연히 저희는 F 학점을 겨우 면했습니다. 그리고 찾아오지 말아야 할 종강이 찾아왔습니다.

 

각자 집에 가게 된 저희는 생각보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습니다. 통화든 문자든 직접 만남이든 말이죠. 두 주에 한 번꼴로 연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모르는 전화번호였으나, 조금 익숙했습니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저의 물음에도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그러자 여자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함을 느끼고 끊으려는 순간 그녀가 말했습니다.

재하 맞지?”

누구세요?”

나 네 엄마야. 기억하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게도 말이죠. 거의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었다고 생각한 존재가 감히 엄마라는 말을 꺼내며 얘기하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적어도 제 기억 속에서 죽었습니다. 다시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전화를 바로 끊었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여러 감정이 머릿속을 교차했습니다. 그 교차의 종착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말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괜히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문자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번호로 말이죠.

엄마가 미안하다. 너만은 버리지 않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다 엄마 잘못이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고 싶어서 연락해봤어. 아무리 떨어져 있었다지만, 핏줄은 핏줄이잖아. 이제부터라도 너에게 잘할게.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볼 기회를 줄 수 있겠니? 보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도 좋아. 기다릴게.’

처음 드는 생각은 역겨웠습니다. 피로 연결되어 있을지언정 제 기억 속에서 엄마는 아버지와 저를 버려버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도 모르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잡혀있었는지 마지막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쉽사리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몇 시간 뒤 우요한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연락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보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가 지금, 이 타이밍에 연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저녁이 되고 술집에서 그와 만났습니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처럼 질문했습니다.

무슨 일 있는 것 같네. 말해줄래?”

너도 내 어머니가 도망갔다는 건 알지?”

그 부분에서는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처음 들어.”

일단, 어머니는 내가 자아를 확립하기도 전에 아버지 때문에 떠났어. 그리고 그 이후로 연락 한 통도 없었고, 찾아오는 일도 없었지,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도 모르는 채로 자랐어. 원래 없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오늘 연락이 왔어. 모르는 전화번호였지만, 나는 혹시 몰라서 받는 습관이 있어. 그렇다고 엄마를 기대한 건 아니고 그냥 내 사생활에 있어서 그런 거야. 전화를 받더니 한 여자가 울고 있더라고.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엄마라고 얘기했어.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지. 그 이후 장문의 사과 편지가 왔어. 아버지에게는 이 사실을 아직 알리지 않았어. 아니, 어쩌면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라. 저번에 나한테 무슨 연락 온 것 없냐고 말한 적이 있거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욕망과 원망이 같이 들어.”

우요한은 머리를 한 번 쓰다 넘기고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셔 넘기더니 한숨을 한 번 쉬었습니다. 다리를 꼬고 손은 가지런히 모은 다음 말했습니다.

만나보는 게 어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뭐야?”

네 마음속에 있는 그 감정을 풀기 위한 키는 그것밖에 없다고 느껴져서 어머니에 대한 그림이든 원망이든 모든 건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야 풀리는 거 아니야?”

맞는 말이었습니다. 이 만남에 거부감을 드는 것도 만나야 풀릴 것 같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네. 네가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럼 벌써 고민 해결이야?”

그렇지. 술이나 더 마시다 가자. 연락은 나중에 해볼게.”

아니, 지금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저보다도 더 적극적인 모습에 약간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저에게 해가 될 만한 짓은 한 적이 없기에 알겠다고 했고 문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앞. 자정까지 오세요.’

문자는 매우 간결했습니다. 구차하게 보고 싶었다든가 왜 버리고 갔다든가 그딴 것은 적어도, 문자에 적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우요한에게 말했습니다.

내 말대로 문자 보냈어.”

그래. 잘했어.”

그 이후로 저희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위스키만을 네 잔 정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위스키 네 잔은 생각보다 저를 취하게 했습니다. 집 앞에서 휘청거리며 담배를 피웠습니다. 내일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반응형

'소설 > 자격 박탈 (장편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18  (0) 2024.11.15
#016  (0) 2024.11.13
#015  (0) 2024.11.12
#014  (0) 2024.11.12
#013  (0) 202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