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이 되고 저는 아버지보다 빠르게 잠에서 깼습니다. 저번에 마신 숙취가 지금이라도 올라오는 것처럼 두통이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몇십 년 만에 보는 어머니 앞에서는 적어도 후줄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없어도 우리는 지금 잘살고 있다는 생각을 각인시켜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깔끔하게 입었습니다. 아버지는 출근하면서 거실에서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오늘 어디가냐?”
“아뇨. 그냥 한번 입어보고 싶어서요.”
“특이하네. 그래. 출근한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버지가 나가고 저는 거울을 보며 몸 곳곳을 봤습니다. 혹시라도 조금의 티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자정이 되기까지는 아직 무려 네 시간이 남았습니다. 밖에 산책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더운 날씨 탓에 땀으로 범벅되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아봤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한 상태로 눈을 오래 감았다가 다시 떳다가를 반복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자정에 가까워졌습니다. 느리게 흘러도 시간은 흘렀습니다. 십 분 정도가 남았을 때 밖에 나가 담배를 태웠습니다. 기대감인지 불안감인지 모를 감정이 섞여 심장을 빨리 뛰게 했습니다.
중년 여성이 이 거리를 걸어올 때마다 끊임없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 어머니는 저 사람일까 하는 예측 말이죠. 자정이 되었고 그때 한 중년 여성이 거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점점 제 쪽으로 다가오더니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혹시 재하니?”
최대한 태연하게 당황하지 않는 무표정으로 차갑게 말했습니다.
“네. 맞아요.”
그녀의 돌아오는 대답은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제 심기를 건드릴까 봐 걱정하는 정도로 말이죠.
“그래. 엄마가 할 얘기가 많은데 근처 카페로 가도 될까?”
“그렇게 하세요.”
저희는 카페에 가는 동안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카페에 도착해서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이 울리고 어머니가 커피를 가져오는 동안까지도 말이죠. 제 앞에 커피가 놓여지고 어머니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습니다.
“잘 지냈어?”
저는 공격적으로밖에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네. 당신 없는 동안에도 저는 잘살았어요.”
“그렇구나. 나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게 있니?”
“많아요. 그것도 아주 많이. 사실 잘 살았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당신이 나가고 아버지는 더 나쁘게 변했고 저는 정신병동에도 입원하고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지금도 정신적으로 그렇게 좋지는 않아요.”
“엄마가 미안하다.”
“미안할 짓을 하면 안 됐었죠. 지금이라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더 일찍 돌아왔어야 했죠. 이미 물을 다 엎질러 놓고 마를 때까지 기다린 다음 수건을 닦으면 그게 닦아져요? 아니잖아요. 왜 나한테 이래요? 왜?”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노력하면 안 될까?”
“지금은 이미 글렀어요. 어머니가 없는 가정이 더 편해요. 아버지는 만나봤어요?”
“네 아버지는 이미 만났어. 그것도 몇 달 전에.”
“뭐래요?”
“너만 동의하고 너만 괜찮다면 자신은 모든 것이든 다하겠다고 했어.”
“어쩌죠. 제가 안 괜찮은데. 저 먼저 일어나 볼게요.”
그러자 어머니는 제 손을 붙잡고 말했습니다.
“가끔 연락만이라도 해주면 안 될까?”
“싫어요.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앞으로 제 눈에 보이면 죽어버릴 거니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집 앞으로 가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더운 여름 탓인지 연기가 많이 날리지 않는 것조차도 거슬렸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한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찝찝하고 축축하고 더러웠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오전 열한 시에 일어난 저는 아버지에게 갈 곳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한 양복 집으로 데려가서 정장 하나를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호텔 뷔페를 가서 밥을 먹었습니다. 적당히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려 때 아버지는 더 많이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한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주차하고 아버지는 차에서 쉽게 내리지 못했습니다. 저의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재하야.”
“네.”
“너무 충격받거나 그러지는 마. 네 탓이 아니야. 알겠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버지와 가까운 지인이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자 저는 그 자리에서 굳었습니다. 어머니의 이름과 사진이 걸려있었으니까요. 아버지는 왜 저를 이런 곳에 데려왔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죄책감이 몰려왔습니다. 살기 위한 살인을 한 것처럼 말이죠.
절을 하고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술 한잔하지 않은 채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흡연 구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우고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냉장고를 열어 소주 한 병을 꺼냈고 저는 탁자에서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습니다. 소주를 따르자마자 바로 마셨고 그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했습니다. 어느새 혼자서 세 병을 비웠을 때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시야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말도 어눌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방금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확실했던 것은 저는 울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소매로 훔치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나는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음날이 되고 잠든 기억이 없었지만,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술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속도 좋지 않아 바로 화장실로 가서 토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토 냄새가 나서 최대한 빡빡하게 양치하고 냉수 한잔을 마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제 미안했어요.”
“괜찮다. 그럴 수도 있지.”
어제 그렇게 울었음에도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분명 아무 미련 없다고 느낀 어머니에게 이런 정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결심했습니다. 우요한과의 철학적인 토론의 끝에 나오는 결과를 실행하기로 말이죠. 저는 곧장 우요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방금 일어났는지 몽롱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목소리는 잠겨 있었습니다.
“어…. 왜….”
“지금 만날 수 있어?”
“상관없지.”
“서울에서 만나자. 하고 싶은 게 생겼어.”
“조만간 듣기 좋은 소리네. 준비하고 한 시간 뒤에 만나자.”
“그래.”
한 시간 뒤는 정오였습니다.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술을 파는 곳이 열려있기를 바랐습니다. 정오가 되고 지하철역에서 만난 저희는 곧바로 국밥집으로 향했습니다. 언제나 술이 팔기 때문이었습니다. 순대국밥 두 개를 시키고 소주도 한 병 시켰습니다. 국밥이 나오기 전 저희는 빠르게 소주 한 병을 비웠습니다. 이른 시간 안에 마신 만큼 일찍 취기도 올라왔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 왜 부른 줄 알아?”
“어렴풋이 알 것 같아. 죽으려고 하는 거잖아. 너.”
“그래. 맞아 그래서 오늘 널 불렀어. 너라면 말리지 않을 것 같아서.”
“용기가 필요한 거지?”
“응. 맨정신으로는 힘들 것 같아.”
“그래. 도와줄게.”
다시 소주 한 병을 시켰습니다. 국밥이 나왔고 소주만 마시기에는 속이 좋지 않아서 국물만을 조금씩 먹었습니다. 우요한과는 거의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둘이서 소주 다섯 병을 비웠을 때 저의 정신은 멀쩡하지 못했습니다. 그 상태로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같이 탔습니다.
대교에 도착했습니다. 해의 빛이 물결에 반사되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우요한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용기가 없어?”
“아니, 조금만 기다려 봐. 그러면 될 것 같아.”
제 말을 듣더니 그는 먼저 대교에 매달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할게.”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떨어졌습니다. 그가 먼저 한 자살 시도에 저는 용기보다는 갑작스러운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삼십 초 정도를 갈팡질팡하다가 구조대에 연락했습니다. 자세한 위치와 주소를 말하기에는 처음 와 보는 곳이라 어려웠지만, 구조대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오 분 뒤 구조대는 건져 올려졌습니다. 우요한은 의식이 있는 상태였지만, 무슨 상태인지 말을 어눌하게 하며 행동 또한, 느렸습니다. 한 구조대원은 저보고 구급차에 같이 타라고 말했고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 후 의사는 별 이상 없다고 말했고 안정을 조금 취하기 위해 누워있는 편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자 그는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은 안 나올 것 같다. 넌 왜 뛰어내리지 못했어?”
그 말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위해 희생이라도 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번 더 말했습니다.
“다음에 한 번 더 하면 그때는 네가 뛰어내릴 수 있을까?”
미안했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깊은 고민 끝에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떠밀어주면 좋을 것 같아.”
“그래. 어차피 죽는 마당에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보통의 사람에게서 오갈 수 있는 대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비를 낸 후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이상함을 하나 느꼈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연락을 받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았다는 점 말이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의 기분을 예측할 수 없었기에 물어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자정쯤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고 연락도 없었기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재하야. 언제 들어오니?”
집에 그다지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요한과 다시 자살 시도를 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결과가 성공적으로 끝나길 바라면서요. 제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힘들고 내일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알았어.”
이번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다시 대교로 향했습니다. 저는 대교 아래 강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대교에 매달린 상태에 들어가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 우요한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저를 밀었습니다. 제가 떨어지던 와중 그도 대교에서 떨어졌습니다. 저는 곧이어 물에 빠졌습니다.
그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곳은 어느 병원의 응급실 침상이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재하야! 괜찮아?”
저는 제 안위보다 우요한의 안위가 더 궁금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요한이는? 어떻게 됐어?”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됐냐니까!”
“죽었어. 너만 살아 나왔어.”
자살에도 실패했습니다. 성공한 우요한은 지금 어디에 있을지 그곳에서는 만족하고 있을지 저를 두고 가버린 그는 어떤 심정인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순식간에 또 한 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갇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엄청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인해 아버지가 강제적으로 폐쇄 병동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찾아왔지만, 반갑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자해도, 자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지만, 언제나 소극적으로 임했고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먹어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지만, 이곳에서 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인간으로서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