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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16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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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그는 많이 변했습니다. 밖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놀다 오기보다 방 안에서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와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게임이나, 공부, 대화 정도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자신이 다니는 병원을 소개해줬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스스로 저의 정신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생각을 비추며 가지 않았습니다. 설령 더 심해진다고 해도 말이죠. 그러자 그도 약을 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으로 말이죠.

토요일이 되고 아버지와 연락하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얼굴이라도 보아야 했습니다. 우요한도 집에 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고 기숙사로 돌아가며 제가 말했습니다.

너는 집 안가냐?”

안가도 괜찮아. 그다지 가족을 보고 싶지도 않고. 나중에 말해줄게.”

제가 모르는 사연이 더 있었나 봅니다. 그는 지금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제가 나중에 얘기를 더 꺼내는 식으로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저는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타고 세 시간 정도 갔습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네 시쯤이었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 안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 더러웠습니다. 쌓인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있었습니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다 끝나자 해가 졌습니다. 제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을 무렵 현관문 소리가 들렸고 방 문을 열고 나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오랜만에 집 왔어요.”

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오랜만이네. 연락도 없이.”

말투는 조금 딱딱했지만, 눈은 조금 웃고 있는 게 티가 났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더니 더 말했습니다.

네가 청소했나 보네. 잘했네. 요새 바빠서 집에 신경을 못 썼다.”

오늘은 저녁 같이 먹어요.”

그래.”

냉장고를 열었을 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찬장을 열어보니 레토르트 식품과 라면밖에 없었습니다. 장을 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버지가 차려 먹지 않는 것 같아서 배달 음식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4월이었지만, 날씨는 아직 쌀쌀했습니다. 전골을 주문했습니다.

배달은 1시간 뒤에 도착했습니다. 1시간 사이 동안 저희는 각자 방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차리고 적막함이 감쌌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아버지는 이 분위기를 버티지 못했는지 TV를 틀었습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학교생활은 어때? 아직도 술 많이 마시니?”

학교생활에 관해 묻는 것은 좋았으나, 술에 관한 얘기는 약간 거슬렸습니다. 마치 저를 아직 믿지 못한다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것 보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기에 제가 대답했습니다.

학교생활 그냥 그저 그래요. 술은 많이 안 마셔요. 입학하고 친구랑 한 번 마셨어요.”

용돈은 안 부족하고?”

지금 주시는 대로만 주시면 좋아요.”

다시 적막이 흘렀습니다. 밥을 다 먹고 뒷정리를 한 후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영화 보러 갈래?”

영화는 괜찮았지만, 상대가 아버지인 것이 걸렸습니다. 솔직히 말해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했을 때의 여파로 인해 어색함이 크게 묻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다음에 보러 가요.”

그 대답에 조금 실망하셨는지 목소리가 아까보다 조금 두꺼워지고 낮아졌습니다.

그래.”

어색함에 못 이겨 그냥 기숙사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 이제 다시 돌아갈게요. 과제 하나를 깜빡해서요.”

저와 계속해서 같이 있고 싶었는지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태워다 줄까?”

학교까지 버스를 타면 세 시간이었지만, 차로 갈 때는 한 시간 사십 분밖에 안 걸렸습니다. 조금 고민하고 말했습니다.

피곤하실 텐데. 조금 쉬어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알았다.”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음악을 들으면서 세 시간을 거쳐 갔습니다.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열한 시였습니다.

우요한은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보더니 한 번 쳐다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저도 손을 흔들고 짐을 조금 풀고 있을 때 가족사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그에게 말했습니다.

가족사 얘기해 준다고 했잖아.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그는 노트북을 바로 덮었습니다. 의자를 제 쪽으로 돌리고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말하려고 했어. 근데 지금이 좋은 것 같네. 사실 우리 가족은 그리 끈끈하지 않아. 엄마와 아빠는 둘 다 바람을 피웠고 이혼 후 각자 다른 가정으로 독립했어. 그래도 마지막 의무감 때문인지 둘 모두에게 용돈을 받고 있어. 그래서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더라고. 근데 마음속 한 편이 텅 빈 것 같아.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다 나한테 들켰거든 그때부터 그러더라고.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처음에는 사랑이 부족한가 싶어서 여자도 사귀어 봤어.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내가 이별을 통보하고 그런 관계를 세 번 넘게 시도했어. 세 번 다 나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어.”

그의 가정사는 나보다도 복잡했습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심연에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정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것은 공감도 위로도 해결책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나도 모르지. 알 수 없어.”

그래. 난 좀 피곤해서 먼저 자 볼게.”

그 말을 끝으로 샤워 후 침대에 누웠습니다. 시간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일요일이었지만, 어쩐지 늦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났습니다. 우요한은 침대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기숙사는 고요했고 나는 산책하러 나가기로 했습니다. 기분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어제 들은 그의 가정사 때문이었습니다. 주변을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그의 가족사를 듣고 내가 무슨 대답을 해주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어쭙잖은 공감과 위로는 오히려 독이었고 해결책은 답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해가 중천에 다다랐습니다. 이만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샤워 후 나온 듯했습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른 다음에 옷을 갈아입고 나를 조금 쳐다보더니 말했습니다.

어제 한 얘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말한 거야. 공감, 위로, 해결책 이런 건 필요 없어. 그냥 점심이나 밖에서 먹자.”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으로 향했습니다. 라면 두 개와 만두를 시켰습니다. 음식은 빠르게 나왔고 말없이 먹었습니다. 배가 부른 상태로 다시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담배를 피우러 흡연장으로 나갔습니다. 라이터에 불이 나오지 않자 그가 불을 대신 붙여주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지.”

?”

그냥 앞으로 살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내려고 노력도 했는데 나랑은 안 맞더라고.”

음침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담배 연기를 한 번 내뱉고 말했습니다.

무슨 인생을 살고 싶은데?”

평범한 인생, 무색무취인 인생.”

그게 제일 힘들지.”

맞아. 너하고 나는 이미 평범함과 무색무취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검정은 다시 흰색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말에 동감했지만,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 부정하고 싶을까 생각해봤지만, 언뜻 마음속에 난 그보다 낫다는 아니, 어쩌면 반대인 더 불행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내 눈을 한번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무응답이네. 너 생각은 다르구나.”

그는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지금의 대답을 회피하면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동질감을 느끼는 어떤 존재는 우리 둘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죠. 저는 약간의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말이죠. 담배를 다 피우고 그가 돌아가려는 찰나 제가 손목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한 대 더 피우자.”

그래.”

담배에 불을 붙이자마자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검정이라는 말은 동의해. 하지만, 너하고 나는 결이 조금 달라. 너는 결핍에서 문제가 있고 나는 불안정에서 문제가 있어. 같은 검정이지만, 어느 팔레트 위에 있냐가 다른 것 같아.”

그래서. 결론이 뭐야?”

우리의 끝은 우리가 정할 수 있을까?”

우리의 끝은 지금이라도 정할 수 있지. 여기서 함께 뛰어내리거나 아니면 하지 않거나. 어떻게 보면 끝을 미루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끝은 도래하고 사람은 죽어가는 거야. 끝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하고 싶다고.”

말 돌리지 말고 그냥 확실하게 대답해.”

그렇습니다. 어느새 나는 주제를 돌려 이상한 답변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쪽으로 주제가 벗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말하기로 했습니다.

난 너보다 내가 더 불행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동질감은 느끼지만, 너에게 있는 무언가가 나한테는 없다고 생각해.”

너도 여자를 만나보는 게 어때?”

그는 어떻게 이렇게 여자를 만나보겠냐고 쉽게 말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그와 다른 무언가가 사랑의 결핍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근데 만약에 제가 행복해지면 그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내가 행복해지면, 넌 어떻게 되는 거야?”

그는 피우던 담배를 짓밟고 웃는 눈빛과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로 말했습니다.

글쎄. 자살이라도 하려나.”

그러면, 난 받지 않을래.”

? 넌 행복해지잖아.”

너의 남아있는 마지막 감정까지 내가 빼앗고 싶지는 않아.”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보여줄게.”

?”

너한테 소개해 줄 여자지.”

저는 그런 식으로 연인을 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됐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줄 알았던 그는 빨리 포기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그 후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었습니다. 스팸 중 하나라 생각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낮잠을 자던 중이라 비몽사몽한 상태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재하야! 너 연락 온 거 없어?”

무슨 연락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게. 아니다. 나중에 말해줄게.”

알았어요.”

모르는 번호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음이 계속해서 갔지만, 상대방은 받지 않았습니다. 음성 ARS가 들릴 때 전화를 끊었습니다. 우요한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누구? 아버지셔?”

. 근데 뭐 급한 일 있는 것 같았는데, 아닌가 봐.”

별일 아니겠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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