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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자격 박탈 (장편 소설)

#013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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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의 수업은 고등학교 때처럼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5번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수업했습니다. 학원이 끝나면 언제나 신한강 집 앞으로 가서 담배를 태우고 얘기를 조금 나누다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의 원장님이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수업을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안 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원장님이 말했습니다.

이재하 맞지?”

.”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수능 반을 열려고 하는데 들어올 생각 있니?”

사실 지금 수능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를 봐도 괜찮았습니다. 검정고시는 수능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에 수능 공부만 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저의 뜻대로 이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버지하고 얘기 좀 나누고 내일 말 드려도 될까요?”

그래. 그러렴.”

그리고 다시 수업을 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오늘 회식으로 조금 늦는다고 했습니다.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술 냄새는 나지 않았고 약간의 여자 향수 냄새가 났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눕자 저도 거실로 나와 말했습니다.

아버지. 다름이 아니라 제가 다니는 학원에서 수능 반이 열린다고 하는데 오면 좋겠다고 해서요. 가도 될까요?”

그럼. 당연하지. 일찍 준비해서 일찍 대학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일찍 들어가 봤자 1살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검정고시라는 게 자퇴하고 난 후 6개월 뒤에 볼 수 있었기에 6월에 자퇴한 저는 18살이 되는 다음 해 4월에 시험을 보고 11월에 수능을 본 후 19살에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학원에 등록하러 갔습니다. 모두가 반겨주는 분위기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운터에 있는 원장과 그 이외 사람들이 반겨주었다는 표현이 더 맞았습니다. 그날 학원을 등록하고 바로 다시 신한강 집 앞으로 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요즘 어떠냐?”

아주 좋아. 매일 얘기하는 거지만, 자퇴하고 나서 후련하고 뭔가 제대로 척척 들어맞는다는 느낌이 들어.”

네가 좋으면 됐지.”

저는 다 핀 담배꽁초를 발로 끄고 말했습니다.

그럼 나간다.”

그래. 잘 가라.”

오늘 하루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잘 풀리는 날은 없었습니다. 마음대로 돼가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일 줄 몰랐습니다.

 

수능 입시 반이 열리고 저는 그날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러 갔습니다. 저 말고도 15명 정도가 더 있었습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반과는 다르게 그곳에서는 자기소개를 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자세한 것은 아니고 이름, 나이 정도만 말하게 했습니다. 나이도 다양했습니다. 제일 어린 게 저였고 제일 많은 사람은 23살이었습니다. 그 이후 서로 친하게 지내라며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사실 그리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공부에 집중해야 하니까 말이죠. 오늘은 오리엔테이션 진행 후 교과서를 받고 나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신한강과 담배를 피울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오늘은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온 후 교과서를 살폈습니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어렵게 다가온 것은 없었습니다.

사실 학원에서 마음 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염색한 금발에 158cm라는 작은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작은 머리를 가진 19살 누나였습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충돌했습니다.

 

***

 

처음에 제 다짐은 어디로 갔는지 몇 개월이 지난 후에는 그들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밖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고 점심과 저녁을 같이 먹으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제일 큰 변화를 말하자면 19살 누나와 사귀게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비밀로 한 채로 말이죠. 학원에서 연애 한다는 것을 표출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연애하러 온 게 아니라 공부가 주된 목적이고 친목은 그것에 있어서 약간의 플러스 요소니까 말이죠. 그녀의 이름은 박가연이었습니다. 이것은 학원 초기에 알던 사실이지만, 저와 집 가는 길에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집에 가는 길에 같이 가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장난으로 누군가 저희에게 사귀는 거 아니냐고 할 때면 시치미를 떼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평일에는 공부를 주말인 일요일이 다가오면 데이트를 했습니다. 같이 피시방을 가서 게임도 하고 놀이공원도 가고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은 것만 피하고 나머지는 즐겼습니다.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은 제가 부담했습니다. 남자가 내야 한다 이런 생각은 둘 다 없었으나, 그녀는 집 안이 그리 유복하지 않았기에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제가 돈을 부담했습니다.

그녀는 검정고시를 이미 봐서 합격한 상태였고 저는 아직 보려면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그녀는 이번에 다가오는 수능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매주 보던 시간을 줄이고 한 달에 한 번 만 데이트 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모르는 것을 자주 물어보며 사적인 대화보다 공부에 관해 대화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저였어도 그럴 거였으니까 말이죠.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날수록 그녀는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압박이 옥죄어 오는 듯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녀를 응원하고 좋게좋게 타일러 주었습니다. 저의 그런 모습을 그녀는 좋게 바라봤지만, 자신에 대한 실망감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대망의 수능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볼 수 없기에 학원에 갔고 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학원과 수능이 끝나는 시간이 비슷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받자마자 그녀에게 한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능 어땠어?”

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와 줄 수 있어?”

당연하지.”

저는 곧바로 그녀가 위치를 찍어준 곳에 갔습니다. 그곳은 한 건물의 옥상이었습니다. 도착하자 그녀는 옥상에서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사를 건네고 조용히 그 옆에 다가갔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난 왜 이런 걸까. 가난한 집안, 없는 재능 뭐하나 특출난 것 하나 없을까. 이번 수능을 보면서 설렘보다는 좌절감을 너무 많이 느꼈어. 스트레스 때문에 미칠 것 같아.”

누나. 이리와 안아줄게.”

그녀는 제 품에 안기더니 울었습니다. 술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습니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그녀는 울음을 멈추며 말했습니다.

키스해줘.”

저는 말 없이 그녀의 입술에 다가갔습니다. 오랫동안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더 이상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저도 옆에서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술이 동나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 진짜 열심히 했단 말이야. 진짜로.”

맞아. 누나 열심히 했어.”

근데 성적표 들고 집 가자마자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

뭐라 그랬는데?”

나보고 학원에서 보나 마나 멍이나 때리면서 집중 안 했겠지 라고 하는 거야.”

너무했네. 열심히 한 거 본 적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오늘 많이 수고했어. 그러니까 일단 들어가서 쉬어 누나.”

나 데려다줘.”

그러려고 했어. 어차피 같은 길 쪽인데 뭘.”

옥상에서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누나는 술에 많이 취한 탓인지 계단에서 미끄러질 뻔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손을 잡고 다시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민폐인 것을 알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었습니다. 이윽고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마음에 너무 담아두지 말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알았지? 나 집에 가면 연락할게.”

그래. 고마워. 나는 들어가자마자 샤워할 거야.”

응응.”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도 혼자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아까 마신 술의 취기가 이제야 올라왔습니다. 시야가 살짝 어지럽고 심장도 조금 빨리 뛰었습니다. 집에 일찍 도착해서 쉬고 싶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저도 아주 뜨거운 물로 샤워했습니다. 땀이 나서 개운해질 정도로 말이죠. 보통 같았으면 15분 안에 끝냈으나 오늘은 거의 40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땀을 빼고 밖으로 나오자 김이 올라왔습니다. 아버지는 언제 도착하셨는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몸에서 술 냄새가 나나 확인했지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양치도 했기에 입에서도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려는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시험 잘 봤데?”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숨기려고 하거나 거짓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연애를 한다는 소식이 어떻게 그의 귀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알았어?”

저번에 보니까 집 앞에서 누나라고 부르면서 껴안는 거 우연히 봤어. 근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하고 다니는 거냐?”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공부하려고 다니는 게 맞는 데 연애가 방해된다는 생각은 언제나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포기한다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가 말이 없자 그가 한 번 더 말했습니다.

연애량 공부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가 다 놓친다. 여자친구 보나 마나 이번에 성적 안 좋게 나왔겠지.”

그 소리에 저는 조금 욱했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공격은 누구에게나 상처가 되기에 저는 약간 반항하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잘 봤을 수도 있죠.”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진짜 못 봤나 보네?”

저는 그냥 그를 한 번 노려보고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그녀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습니다.

나 오늘 좀 많이 피곤해서 먼저 잘게.’

알겠다고 답장하고 난 후 저도 침대에 누웠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녀에게 연락했습니다. 바로 진로 문제에 대해서 말이죠. 그녀의 진로 문제가 왜 저에게 영향을 끼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녀가 저와 같이 한 번 더 공부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에 좋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학교에 갈 것인지 그게 중요했습니다. 대학교에 간다면 멀어질까 봐 두려웠고 한 번 더 도전한다면 실패에 대한 엄청난 두려움에 그녀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화음이 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곧이어 전화를 받자마자 제가 말했습니다.

잘 잤어?”

. 울어서 조금 눈이 붓긴 했는데 괜찮아.”

어떻게 할 거야?”

?”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제가 묻자 그녀는 조금 날카로워진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그녀는 조금 매서웠습니다.

그거 물으려고 아침부터 깨워서 전화한 거야?”

상황파악이 되자 저는 꼬리를 내리고 이 질문은 나중에 해야 하는 것이 더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말했습니다.

지금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내가 너무 급했나 봐 미안해.”

그래. 알았어. 나 조금만 더 잘게.”

전화가 끊겼습니다. 저는 다시 학원에 갈 준비를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수능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많아서 오늘은 학원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걸어가면서 도착하기 전에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들어갔습니다. 예상대로 검정고시반에는 사람이 많았으나 수능 반에는 저 혼자만이 남아있었습니다. 할 것이 없어 국어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9시가 거의 다가오자 학생이 조금 더 들어왔습니다. 그들과 간단하게 인사하고 다시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 순간 문제가 이미 제 눈에 들어오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문제를 보면서 문제를 풀기도 했고 집중도 하나도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라면 그러지 않지만, 짐을 싸서 학원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만나서 얘기하고 싶었고 답을 들어야지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벨을 눌렀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녀의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느라 집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나와 말했습니다.

? 나 잔다고 했잖아.”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게 무슨 상관인데?”

무슨 상관이냐니. 우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그걸 어떻게 아무 상관 없다고 할 수가 있어.”

미안해.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일단 안으로 들어와.”

저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평범하디 평범하고 흔하디흔한 집이었습니다. 다른 가정과 특별한 다른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긴, 굳이 다를 필요는 없었습니다. 거실 소파에 같이 앉았고 조금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제가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나 한 번 더 하고 싶어.”

그럼 하자 나랑 같이.”

근데 부모님은 그게 싫으신가 봐. 계속 아무 대학에나 가라고 하셔.”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나만 꼽자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조언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말이 없자 그녀가 다시 말했습니다.

나 진짜 이대로 포기하기는 너무 아쉬워. 이대로 포기하면 다른 것도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그래서 하고 싶어. 하지만 너무 완고하셔서 마음을 돌리기가 힘들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돈도 없고 뭘 할 수가 없어.”

그러네. 나도 해줄 수 있는 게 듣기밖에 없네. 미안해. 나중에 결과 나오면 알려줄 수는 있지?”

당연하지. 알려줘야지. 들어주기라도 해서 고마워.”

. 오늘은 들어가 볼게.”

밖으로 나오자 날씨가 매우 좋았습니다. 약간의 찬 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그다지 춥지는 않았습니다.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조금 산책하다가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남의 가정사까지 개입하며 선의를 베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저도 바뀔 수 있는 게 약간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올 때까지 잠도 자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눈만 감은 채 동공을 굴리거나 깜빡거리기만 했습니다. 머릿속의 잡념은 치우려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는 들어오자마자 제 방문을 열고 제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나가려는 찰나 저를 불렀습니다.

재하야 잠깐 나와 봐.”

자는 저를 깨우는 경우는 드물어서 의아했습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가자 아버지는 소파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왜 학원에 안 갔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고민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느 정도 마음 터놨기에 말해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아버지. 그게 얘기하면 좀 긴데요. 사실 여자친구가 이번에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학에 갈지 한 번 더 도전할지 그게 문제라고 했어요. 근데 어찌 됐든 저하고 상관이 있잖아요. 그래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여자친구한테 갔어요. 그리고 얘기하다가 돌아왔어요. 학원에 관해 아버지한테 먼저 연락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턱을 매만지며 조금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숨을 조금 크게 쉬며 말했습니다.

여자친구는 어떻게 하고 싶데?”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고.”

근데 집안에서는 반대하지?”

어떻게 아셨어요?”

부모 마음 다 똑같지. 자신의 자식이 더 고생하는 것보다는 당장이라도 조금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야. 물론 다 그러지는 않지만, 그리고 한 번 더 도전한다 해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서 반대하는 걸 거야. 그러니까 무작정 한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말한 걸 토대로 잘 말해보라고 해 봐.”

알겠어요. 아버지. 얘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로 전해서 얘기 더 해볼게요.”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한 얘기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에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한 것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 얘기가 다 끝나자 그녀가 한마디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거야. 나를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

?”

갑자기 바뀐 생각에 당황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유를 물어야 했습니다.

갑자기 왜? 한 번 더 하고 싶었잖아.”

한 번 더 한다고 나아진다는 확신도 없고 어쩌면 지금 대학을 마주하기에 준비가 부족해서 막연하게 가기 싫었을 수도 있어. 그리고 너와 멀어지며 자주 못 본다는 점도 무서웠고 근데 생각해 보니까 언젠가는 겪고 일어나야 할 문제점이더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너랑 헤어진다는 말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고 제가 반론할 틈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에 수긍하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래. 누나가 선택한다고 했으니까. 그 길로 가는 게 맞는 걸 거야. 응원할게.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많은 얘기를 해 줘 나도 궁금하니까.”

그래. 알았어. 언제나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마워.”

대학 입학은 3월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전까지 제가 학원에 다니는 시간을 빼면 거의 붙어 다녔습니다. 국내 여행을 가기도 하고 영화를 보고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이 시간을 최대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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