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이번에도 이사했습니다. 그것도 또 꽤 먼 곳으로 말이죠. 하지만, 학교도 바로 앞에 있었고 즐길 거리도 주변에 즐비해서 불만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저와 등을 지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이사하고 난 후 술도 잘 마시지 않고 여자를 집 안에 들여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그냥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누워있었습니다. 저에게 딱히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를 의식하는 그런 것 말이죠. 약간의 잔심부름을 시키면 저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에게 “고맙다”라고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습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집에서 나가기 귀찮아 베란다에서 담배를 몰래 피웠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들어오셨고 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 모습을 본 그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라.”
그러더니 그는 담배를 들고 베란다로 왔습니다. 저와 같이 폈습니다. 그는 그러던 중 단 한마디만 했습니다.
“담배 필요하면 말해라.”
그렇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했습니다. 회복이라고 정확히 말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적어도 저번과는 다르게 멀어진 거리가 좁혀졌습니다.
참고로 말하지만, 저는 공고에 갔습니다. 공고 중에서도 남자 비율이 꽤 많은 학과를 선택했습니다. 말이 선택이었지 사실상 강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중학교 때 출석이 많이 비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도 무난했습니다. 그중에서 친하게 지내게 된 신한강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입학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와 학교 수업이 끝나면 뒷골목으로 들어가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애는 불량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그를 불량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죠.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는 괜찮다는 것이 제 신념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념을 깨부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선생님이었습니다. 역시 저는 저를 가르치는 사람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에 대해 강제적이었습니다. 자기 생각을 주입하려 했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이 있었습니다. 저는 참았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틀어지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저를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한강은 어느 날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여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가끔 도가 넘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애들과의 비교로 인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그녀의 실체를 까버리는 것은 그의 인생에 개입해 해를 끼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켜보기를 선택했습니다.
역시 제 생각이 맞았습니다. 그 둘은 3달도 되지 않아 서로 갈라섰습니다. 그의 이별 통보로 이뤄진 결과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온갖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괜찮아. 잘한 선택이야.”
“그래. 고맙다. 담배나 한 대 피우자.”
“좋지.”
그렇게 무난하게 시간이 흐르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헤프닝 중 하나로 여겨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부터 일이 생겼습니다. 신한강은 아마추어 배드민턴 선수였습니다. 그렇기에 학생치고는 꽤 비싼 배드민턴 채를 쓰고 있었습니다. 체육 시간이 끝난 후 그의 반으로 돌아오니 그의 배드민턴 채는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도 그의 소문이 안 좋게 퍼졌습니다. 여자친구를 만난 이유는 오로지 성욕을 풀기 위한 섹스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신한강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담배를 피워주는 것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한강은 점점 정신적으로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주변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저를 멀리했습니다. 제가 그 이유를 물어보기 위해 다가갔을 때, 마치 그들의 시선은 더러운 물건을 보듯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신한강이 게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저는 이제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아봤습니다. 그냥 정면 돌파하기로 했습니다. 제일 믿고 싶지 않은 인물이지만, 선생님에게 찾아가 모든 일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알겠다며 바로 그녀를 불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와 그는 다시 교무실로 불러갔습니다. 그곳에는 선생님과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넷이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해자 입장이어야 하는 저희가 가해자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교묘했습니다. 눈물과 인맥을 앞세워 자신이 했던 행동은 전부 그늘 속에 가리고 자신을 피해자라고 말했습니다. 주변 인물들의 앞서서 나는 행동과 말에 저희는 가해자 입장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편에 섰고 저희를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각목을 하나 들더니 말했습니다.
“엎드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왜 맞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엎드려서 각목으로 엉덩이를 총 5대씩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아팠지만, 두 대 부터는 그리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매를 다 맞고 나서 수업 중에 의자에 앉는 순간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집에 가서 확인하니 엉덩이에는 피멍이 들어있었습니다. 지금의 아버지라면 무언가를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아버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를 보자마자 저는 말할 것이 있다며 방 안으로 같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맞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소문이긴 하지만, 아버지라면 그 소문을 믿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학교에서 맞고 왔어요.”
“원래 다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야. 얼마나 맞았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는 바지를 내려 엉덩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꽤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내일 학교에 같이 가자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휴가를 내셨습니다. 단단히 각오하고 저와 함께 차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곧장 교무실로 향했습니다. 교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는 인사 하나 없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누구냐?”
저는 말 없이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습니다. 아버지는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그녀의 뺨을 한 대 갈겼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위아래로 훑었습니다. 그녀가 입을 다시 열기 전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자식새끼 이렇게 만들고 그 말이 나와? 어느 정도면 넘어가겠는데 체벌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똑같이 안 만들어준 거에 감사해.”
시원하고 통쾌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아버지의 발언은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난 내 아들 이딴 학교에 못 보내. 자퇴서 가져와!”
사실 충격적이라는 게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평범함을 추구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는 게 놀랐을 뿐입니다. 그녀도 화가 났는지 자퇴서를 가져오고 서류는 빠르게 처리되었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저는 신한강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가 학교에 왔는지 아니면 가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연락은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통화음이 3번 가고 곧이어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통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학교 안 갔어?”
“응. 이제 안 가려고.”
“잘 생각했네. 나는 오늘 자퇴했어.”
“진짜? 부모님이 해주셨어?”
“오히려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주시더라.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집에 있으려고. 가끔 담배나 피우면서.”
“그래. 나중에 만나면 담배나 피자.”
그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습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검정고시 준비하고 수능 봐서 대학 가는 건 어때?”
사실 지금 할 것도 없고 마냥 놀기만 하니 대책도 안 나오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바로 차에 저를 태우고 검정고시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몇 분의 상담 후에 바로 내일부터 다니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