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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스트 스팬(contrast span) 에모제스는 긴 잠을 잤다. 그 긴 잠은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누군가 올 것 같은 예감. 그 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얇고 긴 관에서 일어나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산 중턱의 절벽으로 향했다. 평소 위스키 수집가이던 그는 싸구려부터 최고급을 신경 안 쓰고 전부 가져왔다. 보라색 텐트를 절벽에 피고 전구를 매달았다. 절벽까지 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가게의 이름은 프라베르니아스다. 이제 누군가 올 때까지 위스키를 음미하기만 하면 된다.  김영희의 하루는 똑같다. 그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차린다. 남편이 밥을 먹고 7시에 출근을 하면 아들을 깨운다. 아들도 똑같이 아침을 먹이고 등교를 보낸다. 그 후에는 집안일을 시작한다. 설거.. 2024. 11. 11.
시선 고등학교 일 학년 이 학기 요즘 들어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졌으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감정에 비롯된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늘어만 갔다. 공부는 당연히 손에 잘 잡히지 않았으며 천장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공상에 빠지는 일이 늘어만 갔다. 혹시라도 피로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해서 약국에 들러 어머니 카드로 우루사를 샀다. 어머니도 학업에만 도움이 된다면 좋다고 말했다.그렇지만, 우루사를 매일 먹으며 한 달이 지나도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변 친구들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나에게 지적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헛웃음을 보이며 속과 다른 겉의 마음을 꺼냈다. 주변인들로부터 그런 이상함을 지적받자 나의 변화가 체감되었다. 병.. 2024. 11. 11.
네 번째 자살 시도 깨어난 곳은 응급실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오른쪽에는 어머니가 왼쪽에는 아버지가 자고 계셨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왼쪽 손목은 많은 양의 붕대로 감겨 있었다. 불편했다.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가려는 도중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정신을 차린 나를 보고는 곧장 멱살을 잡고 말했다.“네가 죽인 거야! 네가 죽였어!”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퀭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그녀를 떼어냈다. 그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우리 서원이 어떡해. 어떻게 하냐고!”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세 번째 자살 시도는 자살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 같이 한 동반 자살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를 찾아.. 2024. 11. 11.
끄트머리 끝에서 유난히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습도는 다행히도 높지 않아서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부가 살짝 따가웠다.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갔다. 내리자마자 여자친구인 박채원에게 학교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했다. 그다음 흡연 구역으로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웠다. 담배 향이 몸에 뱄을 때쯤 그곳을 나와 강의실로 향했다. 열한 명밖에 듣지 않았고 그날은 유독 학생들이 잘 오지 않았다. 강의가 시작되고 학생들은 다섯 명뿐이었다. 교수는 전자출결이 아닌 종이 출석부로 일일이 확인했고 내 이름을 부르자 ‘네’하고 대답했다. 강의는 지루했고 빨리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더 태우고 싶었다.강의가 끝나고 제일 먼저 일어나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그녀에게.. 2024. 11. 11.
구원은 없다 평범한 하루다. 그렇다고 이것에 질리거나 힘들지는 않다. 요즘 사람들 말로는 평범한 게 제일 힘들다고 하니까 말이다. 금요일 퇴근 후 오후는 어느 때보다도 기쁘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산 다음 집에 들어가 배달로 치킨을 시킨다.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저 TV속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글램핑을 떠난다. 간 곳을 갈 때도 있지만, 최대한 그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재미가 떨어지니까 말이다. 오늘은 꽤 시설이 좋은 카라반으로 정했다. 짐을 챙기고 오후 2시까지 그곳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가져온 것들을 정리한다. 간단하게 마실 술과 고기 그리고.. 2024.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