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다. 그렇다고 이것에 질리거나 힘들지는 않다. 요즘 사람들 말로는 평범한 게 제일 힘들다고 하니까 말이다. 금요일 퇴근 후 오후는 어느 때보다도 기쁘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산 다음 집에 들어가 배달로 치킨을 시킨다.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저 TV속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사람들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토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글램핑을 떠난다. 간 곳을 갈 때도 있지만, 최대한 그것을 지양하는 편이다. 재미가 떨어지니까 말이다. 오늘은 꽤 시설이 좋은 카라반으로 정했다. 짐을 챙기고 오후 2시까지 그곳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가져온 것들을 정리한다. 간단하게 마실 술과 고기 그리고 옷들을 말이다. 저녁이 되면 본격적으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장작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다. 타들어 가는 소리가 예술이다. 침이 흘러 당장이라도 먹고 싶지만, 식중독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것은 피하기로 한다. 겨울이기에 고기는 빠르게 지방층이 굳어간다. 그러면 맛이 없기에 재빨리 술을 한 잔 마시고 굽던 고기를 집어넣는다. 따뜻하다가 못해 뜨겁지만, 이것도 괜찮다. 내일 아침이 되면 가져온 컵라면 하나로 해장을 하고 일요일 아침 8시에 집에 도착한다.
다시 바빠진다. 교회를 다니기에 아침 예배를 하기 위해 9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교회에 도착하고 예배한 후 헌금을 내고 다른 사람들과 얕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간단한 인사를 한다. 그 후 다시 집에 들어온다. 기도의 내용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지금의 삶만을 유지해달라는 것이었다.
월요일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출근하는 첫날 너무나도 피곤하고 금요일부터 시작된 휴식이 기다려졌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어엿한 중기업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다. 연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혼자서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오후 5시 곧 퇴근을 앞둔 상황에서 벼락이 하나 떨어진다. 바로 회식이었다. 팀장님은 오늘 회식할 사람을 마치 먹잇감을 찾는 눈빛으로 이리저리 돌아봤다. 그 레이더에는 언제나 내가 걸려있었다.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출근은 정말 최악이었다. 그런데도 마땅할 이유가 없어 거절하지 못했다. 단둘이 회식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팀장님의 입에서는 언제나 회식 자리에 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누가 오고 싶겠냐는 말을 하고 싶지만, 억지로 공감해주는 척을 해야 했다. 안 그러면 회식이 더 연장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다시 금요일이 다가온다.
이번 주도 똑같았다. 퇴근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사고 집에 가서 배달로 안주를 하나 시켰다. 예약해둔 글램핑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잠이 든다. 어제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상하리만큼 오늘따라 숙취가 느껴졌다. 운전하다가는 분명 음주측정에 걸릴 거로 생각해서 조금 늦더라도 낮잠을 한 번 더 자기로 했다. 너무 자버렸는지 일어난 시간은 저녁 6시였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재빨리 글램핑장을 향해 출발했다. 밖에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길을 가면서 이상함을 느낄 정도로 가로등이 없고 비포장도로의 연속이었다. 누구 하나 죽어도 모를만한 장소라 생각했다. 궁금증에 좌우를 둘러 보았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것이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쾅’ 소리가 들렸고 차를 멈춰 세웠다. 직감했다. 분명 무언가 박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음속으로 제발 동물이기를 바랐다. 이런 시골이니 멧돼지나 고라니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이다. 차에서 내려 차츰차츰 앞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차에 타는 순간 경악했다. 라이트에 비친 몇 미터가 날아간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다. 바로 차에서 내리고 그 사람을 건드렸지만, 아무 미동조차 없었다. 핸드폰을 켜서 112에 신고를 해야 할지 말지 갈팡질팡하는 순간에 다른 차 소리가 멀리서 조그맣게 들렸다. 순간 겁이 덜컥 나버려 시체를 끌고 와 트렁크에 넣었다. 그 사이에 비가 세차게 내려 핏자국이 다 없어졌다. 그때 차 한 대가 옆으로 지나갔다.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금 지나간 차가 목격자가 될 수도 있는지 그리고 주변에 CCTV는 있는지 하나씩 생각해보았다. 그 후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CCTV는 없었다. 비 덕분에 증거도 생기지 않았다. 남은 것이 이 시체를 처리하는 것밖에 없었다. 여기서 돌아가면 더욱 의심을 받을 것이다. 일단 글램핑장으로 가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다시 차를 몰았다.
글램핑장에 도착했다. 비가 멈추었다. 식은땀이 계속해서 났다. 체크인하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 사장과 얘기했다.
“혼자 오셨어요?”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네.”
“오늘 손님이 하나뿐이네요.”
“아. 그래요?”
대답하는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 혼자라면 여기 글램핑장의 뒷산에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고 그곳에 시체를 묻으면 될 것이다.
“근데 겨울인데 땀을 왜 그렇게 많이 흘려요?”
마치 내 범행이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았다. 하지만, 금세 이성을 붙잡았고 대답했다.
“아 차에서 히터를 계속 틀었더니 더운 것도 몰랐네요.”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사장은 유쾌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곧이어 텐트 장소를 안내받고 그 옆에 바로 차를 세웠다. 시간은 오후 7시였다. 내 머릿속은 시체 유기에 관한 생각들로 꽉 찼다. 빨리 사장을 보내려고 하는 순간 그가 말했다.
“고기 구워 드셔야지. 장작불 드려요?”
빨리 가라고 여기서 벗어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의심만 받을 것 같아서 숨을 고르며 답했다.
“네. 주세요.”
텐트 안에 들어가자 미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그리고 이런 대처 또한 여태까지 내가 한 많은 상상을 다 빗겨나갔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텐트 밖에서 사장이 말했다.
“계세요?”
곧장 달려가 텐트를 열고 말했다.
“네.”
사장은 장작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그대로 떠나갔다. 그가 가자마자 곧바로 자동차 트렁크를 열어 시체를 확인했다. 여전히 아무 미동 없이 그대로 있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판단되어 다시 닫고 장작불로 향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크게 의식됐다. 냉장고를 열 때 움직이는 손목과 팔도 작은 거리를 이동할 때 쓰는 발과 다리까지 말이다. 지금 고기를 먹을 때가 아니다. 장작불에서 불타오르는 숯들만 본 채 의자에 앉았다. 그러던 중 이곳에 CCTV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에게 걸리면 산책이라는 빌미로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를 돌아다닌 결과 이곳에도 CCTV는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후 곧바로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시체 유기하기 위해 새벽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새벽 2시가 되었다. 텐트 밖을 나가니 글램핑의 조명도 전부 꺼져 있었다. 지금이 적기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비가 멈추는 덕에 시체를 끌고 가면 핏자국이 남는다는 것이었다. 차에서 혹시 무언가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이 있지 않은지 뒤지기 시작했다. 나온 것은 고작 물티슈, 호미, 물, 삽밖에 없었다. 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때였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스스로 한심하게 여겼다. 혹시 텐트에는 도움이 될만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텐트 안으로 들어가 수납장을 전부 뒤졌다. 그러던 중 랩 두통이 나왔다. 이것으로 미친 듯이 감아버리면 피가 샐 일은 없을 것이다. 당장 랩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시체를 감았다.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조심하며 피가 튀기면 바로 물티슈를 가져와 닦았다. 고된 작업이 끝나자 시간은 어느새 새벽 3시 30분이었다. 시체의 랩핑을 전부 다 하고 트렁크에서 온 힘을 다해 조심스럽게 내렸다. 꽤 무거웠다. 운동을 평소에 해놓았어야 했다. 시체를 옮기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조명을 켜서 입에 물은 다음 랩핑이 찢어지지 않도록 튀어나온 돌들을 피해 가면서 옮겼다. 그렇게 1시간 정도를 옮겼다. 사람들이 아무도 드나들지 않을 만한 길목에 구덩이를 깊게 파기 시작했다. 2 미터 정도를 파고 그 안에 그대로 묻었다. 다시 텐트로 돌아올 때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갈까 생각하던 도중 이미 새벽 5시이기에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할 수 없이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누군가 발견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지, 신고하지 않고 시체유기로 인해 더욱 큰 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잠이 도통 오지 않았다. 뒤척이며 최악의 생각들로만 가득 찬 머릿속에는 두통만이 아려왔다. 결국, 잠이 오지 않은 채로 아침이 되었다. 머릿속은 온통 한가지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공포감이었다. 잠을 자지 못해 눈은 퀭했으며 팔과 다리가 마취한 듯이 약간의 저릿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뒷산을 한 번이라도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일 것이다. 선택지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이곳을 재빨리 떠나는 것이었다. 트렁크에 가져온 짐을 전부 싫은 다음 급하게 차를 몰고 나갔다.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하나뿐만이 들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내비게이션을 봤을 때는 집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일단, 집으로 향하자는 마음이 들어 그대로 차를 몰고 갔다. 도착했을 때는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원래대로라면 교회에 가야 했다. 하지만, 집안 안방에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로 한 발자국도 나서기 힘들었다. 난방이 강하지 않은데도 식은땀이 계속해서 흘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결국, 교회에 가기로 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옷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동안에는 눈이 아주 많이 내렸다. 술을 마신 것처럼 볼과 귀가 빨개졌다.
아침에 글램핑장에서 너무 일찍 출발한 탓인지 집에 오랜 시간 있었음에도 예배하는 때에 적절하게 도착했다. 목사님의 말 중에는 두 가지 단어만이 귀에 맴돌았다. 죄 그리고 벌이었다. 나머지 단어는 그저 귀를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기도 시간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두 손을 모았다. 목사가 말하는 말은 나에게 그저 앵알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기도를 하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제발 아무에게도 들키지 말게 해주세요. 어쩔 수 없는 사고였습니다.”
신이 있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모두 보고 계신 전지전능함이면 나의 죄를 한 번쯤은 눈감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얼마나 착실하게 기도하고 헌금도 낸 것이 지금을 위한 것처럼 말이다. 밖으로 나가면서 헌금을 넣었다. 보통 액수와는 다르게 훨씬 많은 액수를 냈다. 면죄부를 사는 심정으로 말이다.
예배가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가려는 순간 평소에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신도가 나의 옷자락을 툭툭 쳤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말했다.
“무슨 죄라도 저질렀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의 기도는 통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 어쩌면 그냥 물어본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황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말했다.
“네?”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내 귀 가까이 입을 옮겨 속삭이듯이 말했다.
“헌금을 평소보다 많이 내셔서 그냥 물어봤어요.”
다행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싶었지만, 그것까지 하면 정말로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접기로 했다. 저 말에 대한 대답의 핑곗거리를 찾았다.
“아 성과급을 받아서요. 이게 다 하느님 덕분이죠.”
그녀는 다시 거리를 벌리고 대답했다.
“전 또 별일 있으신 줄 알았네요.”
나는 머리를 긁으며 애써 웃어 보이게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아닙니다.”
그대로 교회 밖을 재빠르게 걸어 나왔다. 밖을 나오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긴장했던 탓이다. 옆에 있는 난간을 짚으며 계단을 하나씩 내려왔다. 원래대로라면 다른 신도들과 더 인사를 나눴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차에 탄 후 진정이 될 때까지 30분이 흘렀다. 그대로 집을 향해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키고 여러 신문사 팝업창을 띄운 다음 기사를 검색했다. ‘시체 유기, 살인사건, 교통사고’ 몇몇 키워드에 뜨는 기사가 있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짓이 뉴스 기사에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아니, 다행인 건가. 도무지 잘 판단할 수 없었다.
어제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자고 싶지는 않았다. 잠을 잔 사이에 내가 한 짓이 전부 들켜 세상에 나올까 봐 그 잠깐 사이 또한, 안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반응은 정신을 이기지 못했다. 잠이 들었다.
2시간 후에 깨버렸다. 악몽을 꾸었다. 시체가 일어나서 내 집 앞까지 걸어와 초인종을 누르는 꿈을 말이다. 이불과 침대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팔과 다리는 살짝 마비되듯이 저렸다.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정수기에 물을 가득 담아 단숨에 마셨다. 목 중간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잘 내려가지 않았지만, 그냥 삼켰다. 삼키고 나니 목구멍이 아팠다. 밖을 보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소리가 창문을 넘어 안쪽까지 자세하게 들렸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었다. 죄책감인지 아니면, 탄로가 날까 봐 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내일은 출근해야 했다. 그러나 이 상태로면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휴가를 3일 냈다.
월요일이 되고 또다시 악몽을 꾸었고 잠이든지 2시간 만에 일어났다. 이대로는 안 되었다. 확인이라도 한 번 하고 안전한 곳에 시체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침 8시 먼저 교회로 향했다. 기도했다. 신도들은 나를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간에 나와 있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가 끝나고 밖에 나와 정수기에 물 한 모금을 마실 때 한 신도가 물었다.
“이 시간에는 웬일이세요?”
“믿음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신도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어휴. 지금도 훌륭하신데 다른 분들 들으면 섭섭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기도를 끝내고 저번에 갔던 그러니까, 시체유기를 했던 글램핑을 다시 예약했다. 평일이기도 했지만, 원체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것인지 예약하기는 쉬웠다. 끔찍한 악몽과 죄책감 그리고 부담감을 떨쳐내야 했다. 글램핑은 오후 3시부터 입실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번에도 새벽 2시가 되고 사람들이 전부 없을 때쯤 밖에 나가서 시체 확인을 하고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내 목표였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저번처럼 깔끔하게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했다.
2시가 되고 글램핑장으로 출발했다. 저번에 그 길목을 지나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포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오후 3시에 딱 맞춰 도착했다. 체크인하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가자 사장이 나를 알아봤다.
“어라? 저번에 오신 분 아니세요?”
이상하리만치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저번에 온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게 더 이상하게 보일 게 뻔하여서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캠핑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또 오시고.”
나는 최대한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 네.”
그 말을 끝으로 사장은 내가 당신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저 장소를 안내해주기만 하고 다시 가버렸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심호흡을 얼마나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했다. 조금 나아지는 기미가 보여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들이켰다. 그러던 중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사장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장작불 서비스로 드릴게요. 사용하시는 법은 저번에 알려드려서 괜찮죠?”
“네. 그럼요. 감사합니다.”
곧이어 사장은 다시 옆 텐트로 가버렸다. 긴장이 갑자기 온몸을 확 지배했다. 너무 두려워서 손과 발이 조금씩 떨렸다. 이대로라면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셔 약간의 취기를 빌리는 방법은 어떤지 생각했다. 이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를 끌고 근처 슈퍼에서 고기 조금과 소주 두 병을 사 왔다. 아직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장작과 토치가 옆에 보였다. 지금 먹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했다. 늦은 저녁 시간까지 텐트에 들어가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리는 것 이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오후 10시가 되고 장작을 통 안으로 옮겨 토치로 불을 붙였다. 그 위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타들어 가는 소리가 마치 긴박감을 부르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고기를 구운 지 오래였다. 대화하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개의치 않고 고기를 굽고 소주를 잔에 따랐다. 소주는 미친 듯이 썼다. 이렇게까지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장작불은 11시에 반납해야 했기에 고기를 먼저 다 굽고 텐트 안으로 들어와 프라이팬에 데웠다. 그리고 소주를 계속해서 마셨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에 도달했다. 적당한 취기가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좋은 취기는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범행을 도와주는 용기 정도가 맞았다. 숨을 크게 한 번 내쉬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저번보다 1시간 정도가 이르지만, 이 정도면 별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트렁크에서 삽을 꺼내 저번에 갔던 장소로 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그 장소가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충격적인 경험이기에 기억을 못 할 수가 없었다. 술 때문인지 그사이에 체력이 조금 저하된 것인지 숨이 조금 가빠졌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40분이 흘러 있었다. 그와 동시에 장소에 도착했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느새 무언가 턱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흙을 파헤치니 시신이 그대로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덮으려는 그때 누군가 빛을 나에게 쬐었다. 그가 말했다.
“거기 누구 있어요?”
미치겠다. 진짜로 미치겠다. 그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땅을 순식간에 메꿀 수 없었다. 점점 그가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시신이 보이는 부분에만 흙을 덮었다. 그는 어느새 내 앞까지 와서 말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네?”
“여기 개인 사유지입니다. 땅 이렇게 막 파고 그러면 안 돼요.”
“아…. 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참 좋았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면 되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땅 판 곳으로 올라가더니 말했다.
“뭐야. 왜 이렇게 물렁물렁해?”
그리고 그는 시신이 보이는 부분만 메꾼 곳에 손을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퍽 소리와 함께 내가 가진 삽과 그의 머리가 부딪친 것은 말이다. 그는 외마디 비명 없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머리에서 피가 계속 나오는 상태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의 머리를 계속 내려쳤다. 그는 어느새 묻혀있던 시신 위에서 숨졌다.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 뒤로 넘어졌다. 확인만 하려 했었는데 상황만 더 악화시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원래 시신이 묻어있던 구멍을 더 깊게 파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직 어두컴컴한 주변에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랩핑 할 시간조차 없었고 그럴 여유 또한 생각나지 않았다. 구덩이를 더 깊게 그리고 넓게 팠다. 약 3m 정도 되자 시신을 집어넣었고 땅을 메웠다. 그리고 미친듯한 속도로 뒷산을 내려와 텐트로 들어갔다. 텐트에 들어가자 삽과 옷에 고스란히 튄 피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샤워기에 물을 틀어 몸을 씻고 삽을 씻었다. 화장실 바닥은 옅은 빨간색 물이 배수구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밖에는 빗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이 되고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술은 이미 다 깬 상태였다. 여유분 옷을 하나 가져왔기에 갈아입고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은 오전 6시에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비가 멈추었다. 순식간에 살인을 두 번 했다. 그것도 무고한 사람을 대상으로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들이켰다. 회개해야만 했다. 신에게 빌어야만 했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했다. 그 전에 마음을 비워야 했다. 교회로 향했다. 그리고 아침 예배를 하고 헌금을 저번보다 더 넣었다. 남들이 다 일어나 밖으로 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기도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출근은 했지만,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상사에게 훈계를 듣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그 사건으로 가득 찼다. 여태까지 모아놓은 돈이면 몇 달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사표를 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는 계속해서 교회에 가는 것이 의무였다. 매일 갔고 매일 기도했고 매일 헌금을 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목사가 나를 불렀다.
“요새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나에게 있어서 목사는 신과 제일 가까운 존재였다.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은 피하기로 했다. 내가 말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헛기침을 두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다 용서하실 것입니다.”
여태까지 계속해서 신을 믿었지만, 이번만큼은 확신이 없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답했다.
“정말인가요?”
“그럼요. 형제님처럼 매일 이렇게 나오셔서 온 힘을 다 쏟는 것을 보면 그럴 겁니다. 우리의 곁에는 하느님이 계시니까요.”
목사의 말을 듣자 엄청나게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일종의 해방감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목사의 말대로 내 곁에 신이 있는 것이다. 내가 한 짓도 전부 용서받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날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집에 와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악몽도 꾸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일요일처럼 생활했다. 아침 예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맥주를 한잔했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점점 칼날이 무뎌진 식칼처럼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아침 예배에 갔다. 예배가 끝난 후 다른 중년 여성들의 신도들이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
“요 근처 글램핑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데요.”
‘글램핑장’,‘살인사건’ 그 두 단어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내 머릿속에 들렸다. 그 대화에 껴서 무슨 얘기인지 더 듣고 싶었으나, 그럴 수는 없었다. 교회에서 미친 듯이 달려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신호 위반과 과속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집으로 가자마자 신발을 벗고 곧장 TV를 틀어 뉴스를 시청했다. 뉴스에서는 방금 들었던 살인사건에 대해 도보 되고 있었다. 범행 현장이 비가 오며 지반이 약해져 조그마한 산사태가 일어나며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혹시 내가 한 것이 아닌 다른 사건이지 않을까 싶은 희망을 품고 뉴스를 더 지켜봤다. 뉴스에서는 한 시체는 랩핑으로 다른 한 시체는 방치된 채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심지어 범죄심리분석관의 말로는 하나는 계획적으로 나머지 하나는 우발적으로 살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확하게 내 심리까지 파악하자 마음이 벌거벗고 주변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다행인 것은 아직 범인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 내가 그곳에서 무언가를 두고 왔거나 지문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생각을 곱씹어 보았지만, 자세히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문득 그 생각에 빠졌다. 교회에 가서 목사와 얘기한 것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죗값을 치르고 하느님께서 용서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쭈그리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당당해지기로 했다. 신께서는 이런 시련도 필요하다고 준 것이고 이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내 목표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교회에 요새 자주 간 것이 이유인지 신도들과 조금 더 친해졌다. 물론, 같이 술을 마시거나 깊은 얘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인사를 더 성실하게 할 뿐이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기도를 했다. 이 시련을 이겨내게 해줄 수 있게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기도였다. 그 후 헌금을 내고 집에 돌아가려는 순간 한 남자 신도가 말했다.
“저희 밥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좋지도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은 제안이었다. 어차피 집에 가서 할 것이라고는 딱히 없었고 불안감에 떠는 것보다는 같이 밥이라고 한 번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가 대답했다.
“네. 그러죠.”
“생각해보니 저희 이름도 모르는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이기철입니다.”
“저는 강백훈입니다. 그럼 가시죠.”
그를 따라 다른 신도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했지만, 강백훈이라는 이름밖에 외울 수가 없었다.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우리는 한 쌈밥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제육쌈밥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 수다 시간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누군가 말했다.
“최근에 일어났던 살인사건 너무 무섭지 않아요?”
“그러니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무서워서 글램핑도 못 다니겠어요.”
그러자 이 말을 들은 강백호는 마치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그 사람도 다 사정이 있겠죠. 설마 그냥 죽였겠어요?”
신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신도중 한 명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은 안 되죠. 무슨 꼭 살인자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려요.”
그도 말실수를 알았는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수다의 어색함과 종료가 맞물렸을 때 음식이 나왔다. 신도들은 아무 말 없이 쌈을 싸거나 그냥 먹거나 제 방식대로 밥을 먹기에 집중했다. 음식을 다 먹고 그들은 나에게 카페를 갈 것을 권유했으나, 그곳까지는 가지 않았다. 너무 많은 수다의 정보량에 의해 지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고 내가 저지른 그 얘기를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이번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알게 된 것은 이 살인은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보다 세상은 나에게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관해 별생각 없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점점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뉴스도 점점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일도 그만뒀기에 하루가 한적하게 흘러갔다. 산책이라도 할 겸 거리를 걸었다. 그러던 중 편의점에서 신문을 파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신문을 한 부 구매했다. 그리고 저렴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햇빛이 거실 안쪽까지 들어와 따뜻했다. 커피를 탁자 위에 놓고 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정치 얘기가 대부분이어서 흥미가 식을 때쯤 요즘에 보도하지 않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신문 한 면을 장악했다.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살인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 그들의 가족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었다. 신문에 나온 내용으로는 첫 번째 피해자로 추정되는 랩핑에 쌓인 사람은 가족들과 큰 다툼을 했다. 결국, 그는 가출했고 며칠째 돌아오지 않자 실종신고가 접수되었고 나중에야 시체로 발견된 것이었다. 가족들과 싸운 이유도 별 것 아니었다. 그저 그는 혼자 공부도 하며 집안일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결국, 이런 일상에 지친 그는 가족과 싸우고 가출한 것이었다. 두 번째 사람은 나이가 좀 있는 산악경비원이었다. 자식들에 대해 엄격하고 가부장적이었다. 아내와 자식을 폭행한 적도 있어 가정폭력으로 신고가 몇 건 접수된 것도 있었다. 자식과 아내는 그가 죽은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신문 한 면을 다 읽었다. 누구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는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잘 죽였다거나 그랬으면 안 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말 그대로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무 감정 없이 글을 읽었고 글을 다 읽자마자 옆에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근거는 신께서 나를 용서했기 때문이다. 사람보다도 위에 있는 그런 존재에게 용서를 받았는데 감히 누가 나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제는 매일 아침 교회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신에 대한 믿음이 고취될수록 그나마 깊은 수렁에 빠져 있던 죄책감도 완전히 사라져갔다. 오히려 이제는 사람이라면 그런 시련쯤은 하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빠졌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일이 저질렀지만, 나는 구원 받았다고 말이다. 이제는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다른 신도들과 밥을 먹고 카페를 가기도 했다. 신도들은 나보고 예전에는 딱딱한 무언가가 표정으로 드러났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고 같이 어울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 또한 신의 구원 덕분이었다. 일상의 평화는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다.
총 4달 정도가 지났다. 슬슬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저번의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구직은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도 대기업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엿한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사원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참작하기로 했다. 이제는 살인했다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히 말하자면 살인을 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입을 놀리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을 것이고 나 또한 평범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달라진 것이라면 이제 교회에 매일 가지 못하고 일요일마다 간다는 점이었다. 꿀 같은 금요일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건장한 남성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
“이기철 씨 맞으시죠?”
무슨 일로 그들이 왔을지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했다.
“경찰입니다.”
그 말을 듣자 예전에 생각났다. 죄책감과 악몽 그리고 범행이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며 고생한 4달 전이 말이다. 나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로 뛰쳐나갔다. 그들은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15분 길다면 길고 적다면 적은 시간이 흐르고 나는 수갑을 찼다. 그들은 나를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라고 했다. 그리고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심문을 받는 동안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그리고 경찰이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공황 상태였다. 내가 상태가 좋지 않자 경찰은 구치소에 나를 물건 다루듯이 넣었다. 나는 다시 기도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교회에 매일 가겠다고 다짐했다. 이 일이 벌어진 것은 내가 매일 하던 예배를 일을 구하고 난 뒤부터 전과 다르게 많이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다시 그렇게 할 테니 이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돌아오는 것은 구원하는 신의 손길이 아닌 나와 아무 상관없는 아니, 아무 상관없길 바라는 경찰의 손길이었다. 그렇게 다시 심문과 구치소를 왔다 갔다 했다.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거의 매일 몇 시간씩 할 정도로 말이다.
기도를 점점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현실을 직시했을 때에는 법원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중이었다. 나무망치 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다. 선고받은 형은 사형이었다. 앞으로 감옥에서 썩을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 그렇다. 나에게 구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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