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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소설

네 번째 자살 시도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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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곳은 응급실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오른쪽에는 어머니가 왼쪽에는 아버지가 자고 계셨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왼쪽 손목은 많은 양의 붕대로 감겨 있었다. 불편했다.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가려는 도중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정신을 차린 나를 보고는 곧장 멱살을 잡고 말했다.

네가 죽인 거야! 네가 죽였어!”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퀭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그녀를 떼어냈다. 그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우리 서원이 어떡해. 어떻게 하냐고!”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세 번째 자살 시도는 자살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 같이 한 동반 자살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를 찾아왔다. 나를 원망했고 책망했다. 그러나, 나는 죄의식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에게 있었다. 자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게 울부짖는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갔다. 담배 한 갑을 사고 흡연 구역에서 피웠다. 오늘따라 연기가 더욱 짙게 나왔다.

그 사이 기자들이 사건을 알았는지 뉴스에서는 동반 자살 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그 여덟 명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누가 신고했는지는 몰라도 타이밍이 참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과다출혈로 죽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

 

사건은 이러했다. 메신저에서 혼자 죽을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동반 자살 모임이란 글이 하나 올라왔다. 스스럼없이 바로 그 메신저에 접속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다들 각자 사연을 얘기했지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시간과 장소를 물었다.

이틀 후 오후 일곱 시 한 호텔에서 모이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먼 거리였지만, 그래도 가야 했다. 도착한 시간은 오후 여섯 시였다. 호텔에서 체크인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동반 자살하기로 한 사람 중 한 명이 내가 맞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맞다고 했고 그는 나에게 다가왔다. 자신의 억울함, 우울감 등을 내게 얘기했다. 나는 그저 단답식으로 대답했다. 그는 나를 보고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물었다. 그 물음에 오늘 죽기로 한 날에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여섯 시 삼십 분이 되고 모든 사람이 모였다. 호텔을 예약한 사람과 함께 체크인했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은 소주를 가져 왔다. 취기에 빌려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 자살 방법은 손목을 긋는 것이었다. 자살이 처음인 사람은 커터칼을 꺼내 이것도 되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커터칼로는 동맥을 끊기가 어려워요. 식칼이 제일 낫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이런 상황에서 듣는 것이 신기했다. 준비해온 식칼을 꺼내 그녀에게 먼저 빌려주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더니 눈을 질끈 감고 손목을 그었다. 곧이어 피가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당황한 그녀는 아프다고 하며 난리 쳤다. 나는 개의치 않고 그녀가 떨어뜨린 식칼을 들어 나의 손목을 그었다. 아프고 쓰라렸지만, 내 표정은 일절 변하지 않았다. 손목에서는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피가 흘러나왔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자살 시도였다.

 

***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자 경찰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부모님은 경찰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들어오는 나를 보고 그들은 내게 뭐라고 말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충 이번 동반 자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이었다고 짐작한다.

경찰서로 가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자살관여죄에 대해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법도 잘 몰랐고 이 상황에서 나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치소에서 이틀을 있고 나는 풀려났다. 아무런 죄도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안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뒷자리에 태웠다. 운전석에는 아버지가 조수석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고 담배를 피웠다.

 

***

 

나의 첫 번째 자살 시도는 어설펐다. 왜냐하면, 죽는 게 두려웠고 누군가가 관심을 두었으면 하는 것에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 어울리는 것이 어려웠다. 혼자서 초중고생을 보내고 좋은 대학교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혼자였다. 그렇게 무작정 취업 시장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당연히 취업 시장에서도 고립되었다. 부모님은 일 년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 모진 말들을 내뱉었다.

첫 자살 시도는 소주 두 병을 편의점에서 먹고 무작정 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제일 가까운 강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내린 곳은 어디인지 나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그저 조금만 이동하면 강이었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몸이 조금씩 젖자 공포감이 몰려왔다. 그런데도 발을 조금씩 디뎠다. 물은 발목에서부터 허리, 어깨로 조금씩 올라왔다. 이윽고 머리가 잠기자 처음에는 숨을 참았다. 숨이 모자랄 때쯤 자동으로 머리를 뒤로 젖혀 코를 수면 위에 존재하게 하려고 애썼다. 발은 허둥대며 바닥에 닿을 때까지 움직였다. 바닥에 발이 닿자 급하게 강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눈물을 다 쏟아내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몸은 전부 젖어 있었다. 택시를 타려 했지만, 태워주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근처 옷가게에 둘러 치수가 맞는 옷을 대충 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자 시간은 자정이었다. 내가 들어가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안방 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다가왔다. 그 순간 내 뺨을 때리며 말했다.

취업도 못 하면서 어디서 술을 그렇게 처먹고 와? 네가 지금 그럴 때야?”

그 순간 느꼈다. 다시 자살해야겠다고 말이다.

 

***

 

두 번째 자살은 술도 먹지 않았다. 마음에서 나오는 서글픔, 억울함이 치솟았다. 이번에는 물에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 아닌, 다리에서 떨어지자고 했다. 강에 투신하면 일단 생각을 해도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말이다. 이번에도 택시를 탔다. 도착한 곳은 마포대교였다. 넓은 다리에서 가운데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봤다. 공포감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다른 감정이 더 앞서 있었다. 그대로 뛰어내렸다.

정신을 차린 것은 구급차 안이었다. 나는 심하게 숨을 헐떡이며 물을 토해냈다. 구급대원 중 한 명이 정신이 드냐고 말했고 그의 말에 이번에 실패에 회의를 느꼈다. 병원에 도착하자 곧이어 부모님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상철아! 괜찮아? 정신이 들어?”

다시 눈을 감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그저 고개를 까닥거리며 정신이 있다는 표시만 내비쳤다. 아버지는 옆에서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소매를 눈에 가까이 가져가더니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첫 번째 자살 시도의 실패를 기점으로 사회에 버려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나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나의 안부를 물었고 병원에 갈 의향이 없냐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소리를 했다.

그럴 거면 진작에 관심이라도 가져주지. 이미 늦었어.”

그때부터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식사는 어머니가 문 앞으로 가져다주었고 먹는 날도 있었고 먹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만 가끔 들렷다.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다음 자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닌, 확실하게 할 방법 말이다.

 

***

 

방 안에서만 있던 도중 어느 날 구급차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에도 가끔 오기에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했다. 그런데 집 안에 부모님이 다 있는데도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내 방문을 따고 들어왔다. 그리고 강제로 구급차에 태웠다. 그들의 힘에 반항할 수 없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나를 어느 공간에 쳐넣었고 문은 굳게 닫혔다. 들어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정신병동이었다. 남자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환자복을 주며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고 자리도 안내해 주었다. 반항보다는 이곳에서 빨리 나가 다시 자살 계획을 세우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따라서 옷을 갈아입고 안내해 준 자리로 갔다.

다음 날 아침 의사와 면담을 했다. 의사는 먼저 심리검사를 해보겠다고 했다. 심리검사는 지루했다.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무엇을 조립하거나 배열된 단어들의 공통점이나 이상한 그림에 대한 느낀 점을 서술해야 했다. 중간마다 졸음이 쏟아져 왔지만, 겨우 참았다. 심리검사 결과는 삼 일 뒤에 나온다고 말했고 다음은 뇌파검사를 하러 갔다. 머리에 무슨 이상한 젤을 바른 선들을 붙이더니 마치 실험용 쥐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검사를 마치고 다시 간호사가 나의 팔을 붙잡고 병동으로 데려다주었다.

불편한 점은 여기에는 전자기기가 하나도 없었고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거실 같은 곳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간호사가 내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래요?”

.”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로 향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는 조금 흐느끼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하기 전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거긴 어때? 필요한 건 없어?”

강제로 가둔 건 어머니잖아요.”

많이 걱정돼서 그래. 빨리 치료받고 나오자. ?”

여기 생활은 심심한 거 빼고는 별로 없어요. 그냥 소설책 몇 권이랑 생필품 좀 넣어주세요.”

이렇게 말하니 수감자가 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이른 시일 내에 보내준다고 말했고 나는 일방적으로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몇 시간을 잤는지는 모르지만, 간호사가 나를 깨우며 말했다. 밖은 해가 져 있었다.

너무 주무시는 거 아니에요? 밤에 잠 못 주무세요.”

괜찮아요.”

잠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밖에 나가 거실에서 다른 환자들이라 낄낄 웃으며 TV를 보기가 싫었고 이상한 만화책을 읽기도 싫었다.

저녁 10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실제로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불이 꺼졌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목이 말라서 부엌으로 향하자 간호사가 나를 발견하고 말했다.

잠 안 오시죠?”

.”

수면제라도 드릴까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내가 답했다.

.”

곧이어 수면제 한 알을 꺼내오더니 내 손에 쥐여주었다. 부엌에 가서 물과 함께 삼킨 다음 침대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간호사가 나를 깨웠다. 아침이었고 햇빛이 커튼을 통과해 눈이 부셨다. 깨운 이유는 하나였다.

아침 드세요.”

평소에도 아침을 먹지 않아 내가 말했다.

안 먹어요.”

혹시 모르니까 따로 빼둘게요.”

그리고 다시 눈을 붙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귀찮았지만, 일어났다.

어머니가 보내신 물건 도착했어요.”

드디어 조금이라도 할 것이 생겨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건을 받으러 갔다. 과자, 음료수, 소설책 열 권, 속옷, 비누, 샴푸, 바디워시, 로션 등이 있었다. 어제오늘 씻지 못해서 속옷과 세면도구를 챙겨 욕실로 향했다. 생각해 보니 속옷을 다시 빨아야 하는데 세탁기도 보이지 않았고 어떻게 빨아야 하는지 몰랐다. 샤워 후 간호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속옷은 어떻게 빨아야 하나요?”

간호사는 이런 질문이 능숙하듯 대답했다.

직접 빨아서 너셔야 해요.”

진짜 세탁기가 없을 줄은 몰랐다. 귀찮은 일이 여기서는 한둘이 아니었다. 샤워실이 아닌 세면실로 가서 수도를 틀고 속옷을 적신 다음 가져온 비누로 빨았다. 물기를 최대한 짜보았지만, 적어도 이틀은 널어야 완전히 마를 것 같았다.

담배가 피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금지였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코틴 패치 보내줬으면 좋겠는데.”

알았어. 몇 장?”

많을수록 좋지.”

그래.”

정확한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침대에 앉아 소설책을 잃고 있을 때 의사가 잠시 병동에 왔다. 나를 보더니 말했다.

불편한 건 없으세요?”

많죠. 이것저것.”

지금 좀 어떠세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약 처방은 심리검사 결과가 나오고 면담 후에 드릴 거예요.”

.”

의사는 몇 마디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 다시 책을 읽었다. 여기서 할 것이 독서밖에 없었는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앞으로 일과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 하루는 자고 씻고 책을 읽고 그 세 가지가 전부였다.

 

넷째 날이 되는 날 의사와 면담 시간이 되었다. 의사는 심리검사 결과지를 보며 말했다.

심각한 우울증입니다.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항우울제를 처방할 테니 일단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기분은 변동 폭도 없었고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저는 우울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아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더니 의사는 타자를 두드렸다. 아마도, 내가 인정하지 않는 부분까지 기록하는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약은 꾸준히 드셔보시고 경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돌이표였다. 이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면담을 끝내고 자리를 떠났다. 침대로 돌아가 책을 읽었다.

그 이후로 간호사는 밥을 먹고 나면 직접 찾아와 약과 물을 건네며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입을 벌려 먹었는지 확인까지 했다. 먹어야 할 이유도 없는데 확인까지 받으며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이 주일이 지나고 이곳을 나가려면 지금과는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변화한 척을 해야 했다. 먼저 조금씩 웃었다. 간호사와 농담을 나누기도 했고 의사와 면담 중 있지도 않은 기분 변화나 증상의 나아짐을 호소했다.

그렇게 다시 이 주가 흐르고 의사와 면담이 잡혔다. 의사는 이제 외래진료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갈 수 있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웃는 척을 하며 마음속에 있지도 않은 감사 하다는 말을 연신 뱉으며 꾸벅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병동 문이 열리고 제일 먼저 본 얼굴은 부모님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안기면서 말했다.

다행이다. 상철아.”

울고 있는 어머니 모습을 봤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아직 완전히 나간 것은 아니기에 팔을 뻗어 어머니를 포옹하고 있는 것으로 행동을 마쳤다. 아버지는 묵묵히 뒤에서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한 달을 그곳에 있었더니 핸드폰을 만지는 것이 조금 어색했다. 누구에게도 연락은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병동에 들어가는 게 나았나 약간 고민하게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거긴 어땠어? 힘들었지?”

그들이 그곳에 강제적으로 보내놓고 인제 와서 걱정하는 척을 보니 속이 좋지 않았다. 이중적인 모습이 역겨웠다. 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곳으로 보낸 건 다름 아니라 어머니잖아요.”

어머니는 당황했다. 할 말이 없어져 그저 음절 하나만을 뱉었다.

?”

저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세요.”

아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이런 모습을 취하자 어머니는 고개를 떨궜다. 나는 짐을 풀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방을 청소하셨는지 무척이나 깨끗해져 있었다. 그렇다고 고마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저 책상에 앉아 다시 컴퓨터를 켜고 방문을 잠갔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

 

컴퓨터에서 메모장을 켜고 하나씩 적었다. 자살할 방법을 말이다. 여태까지 했던 강물에 투신자살했던 것과 손목을 긋는 것은 제외했다. 그러자 병원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다시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하며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였다. 완전한 사회와의 격리, 그리고 자살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했다. 첫 번째는 삶의 연장이었지만, 사실상 사회에서의 사형선고를 받고 도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두 번째 선택은 이 세상에서 모든 고리에 대한 해방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를 선택하기로 했다.

목을 매달아 죽는 법, 고층건물에서의 투신 등 여러 가지를 적었다. 그중에서 선택하는 데 고민이 들었다. 일단 둘 다 밖에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집안에서 밧줄을 걸만한 곳도 없었다. 집도 아파트가 아니었기에 나가야 했다. 거울로 나의 몰골을 확인했다. 엉겨 붙은 머리, 부스스한 얼굴, 앙상하게 말라버린 몸이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부모님이 모두 출근한 틈을 타 샤워실로 갔다. 샤워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죽을 때도 아무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밖을 나가 걸었다. 철물점은 요새 잘 보이지 않았다. 삼십 분 정도 걸었을 때 철물점이 보였다. 그곳에 들어가서 적당한 두께의 밧줄을 십 미터 정도 샀다. 죽을 때 필요한 밧줄이 몇 미터인지 모르기에 넉넉히 샀다. 그리고 아무도 들키지 않을만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봤던 폐 교회가 눈에 밟혔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를 걸어야 도착했지만, 그것에 관해 고민하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를 걷자 뜨거운 햇살 덕에 피부가 따가웠다. 최대한 그늘 진 곳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정오가 되었기에 그늘이 거의 없었다.

폐 교회에 도착했다. 어느새 주위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지금 자살하기에는 모든 사람의 눈이 띨 것이고 그렇다면 실패로 돌아갈 게 뻔했다. 무엇을 할지 모르던 와중 배가 고파왔다. 곧 죽을 사람이었지만, 마지막인 만큼 맛있는 게 먹고 싶었다. 핸드폰으로 근처 식당을 검색하다 마음에 드는 곳을 골랐다. 해장국 집으로 들어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간단한 밑반찬들이 나오고 그것들을 먹으며 금세 소주 한 병을 비웠다. 해장국이 나옴과 동시에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지만, 에어컨이 강하게 틀어져 있었기에 땀은 흘리지 않았다. 최대한 느리게 먹었다. 시간이 지나도록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혼자는 나뿐이었다. 보통 국밥집에는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곳에서 두 시간 삼십 분을 채웠다. 먹을 음식도 바닥났고 소주도 더 마시면 만취할 것 같았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괜히 일찍 나왔나 싶었다. 폐 교회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더 찾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내가 갈만한 곳은 이제 딱 한 군데밖에 없었다. 바로 피시방이었다. 근처에 있는 아무 피시방이나 들어갔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날짜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라서 오늘 날짜를 확인하니 토요일이었다. 최대한 구석지고 흡연실에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켰다. 아까의 술 때문인지 술기운도 올라오고 속도 좋지 않았다. 평소에 하던 게임에 접속했다. 게임은 내 마음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 스트레스만 받았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도중 속이 더 좋지 않아 그 자리에서 토해버렸다.

씨발

옆에 담배 피우던 사람의 바짓자락에 토가 살짝 튀었다. 그는 나에게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아니, 혼자 말한 걸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 씨발.”

그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거 남에게 뭐하러 감정 낭비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마디를 더 하고 나갔다.

좆같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를 쫓아왔다.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저기요! 이거 세탁비 주셔야 할 것 같은데.”

뭐래. 좆같게.”

뭐라고요?”

어깨를 잡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속을 게워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편했지만, 토 냄새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공용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을 보고 입을 헹구었다. 냄새는 거의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컴퓨터에 로그아웃하지 않고 나왔다. 다시 들어갈까 했지만, 아까 그를 다시 만날까 봐 약간 겁이 났다. 나와 비교하면 덩치가 크기도 했고 굳이 들어가 한 대 맞고 싶지 않았다.

저녁 여섯 시가 되었지만, 여름이기에 해가 지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갈 곳도 없었다. 죽기 전에 들를 곳을 더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술이 거의 다 깼다는 것이다. 왜 다행이냐면, 술로 인한 충동적인 자살로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어머니였다. 아무래도 방 안에만 있는 내가 사라진 것을 지금 발견한 모양이다.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상철아! 어디야?”

밖에.”

왜 나갔어?”

그냥 볼 일이 있어서.”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글쎄. 모르겠다. 끊을게.”

전화를 끊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리를 배회했다.

 

***

 

해가 슬슬 황혼에 접어들었다. 폐 교회로 향했다. 걸음걸이는 점점 빨라졌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폐 교회 문을 열자 십자가와 그것에 박혀 있는 예수가 보였다. 녹이 슬었고 먼지가 많이 쌓였다. 나는 그 십자가 맨 윗부분에 밧줄을 걸었다. 그리고 의자를 가져와 그 위로 선 다음 목을 걸었고 의자를 발로 치웠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경찰들과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아마도 어머니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신고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제발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했다. 점점 의식을 잃었다.

 

***

 

눈을 떴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이제는 지쳤다. 눈을 깜빡이자, 데자뷔처럼 구급대원이 말을 걸었다. 퀭한 눈으로 대답했다. 언제쯤 해방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지긋지긋한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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