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일 학년 이 학기 요즘 들어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졌으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감정에 비롯된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늘어만 갔다. 공부는 당연히 손에 잘 잡히지 않았으며 천장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공상에 빠지는 일이 늘어만 갔다. 혹시라도 피로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해서 약국에 들러 어머니 카드로 우루사를 샀다. 어머니도 학업에만 도움이 된다면 좋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루사를 매일 먹으며 한 달이 지나도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변 친구들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나에게 지적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헛웃음을 보이며 속과 다른 겉의 마음을 꺼냈다. 주변인들로부터 그런 이상함을 지적받자 나의 변화가 체감되었다.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병원에 도착해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급병원은 아니지만, 여러 진료과가 있는 종합병원이었다. 나는 내과를 방문했다. 내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기다리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십 분을 겨우 기다려서야 나의 차례가 도착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최근 나의 증상을 말했다. 의사는 얘기를 조금 듣더니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우울증 같으세요. 정신과로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신병은 흔히 범죄자들이나 정신상태가 나약한 사람들만 걸리는 거로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부정했다.
“저 우울증 아닌데요.”
“아니어도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병원 밖으로 나왔다. 내가 우울증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나약한 사람도 아니고 최근 들어서 힘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병원에 가서 카드를 쓴 기록이 남기에 어머니가 물을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을 갈구하기 위해 신경이 쓰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밥을 차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손을 씻은 다음 의자에 앉았다. 아버지는 요즘 바쁘신지 일을 나가셨다. 자리에 앉자 어머니가 물었다.
“아침부터 병원은 왜 갔어?”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괜히 걱정시켜 드리는 게 싫었다. 설령 우울증이 맞는다고 해도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피곤해서.”
“우루사 먹는데도 피곤해? 간에 이상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래.”
“그래? 다행이네.”
밥을 다 먹고 우루사 한 알을 빤히 쳐다봤다. 어머니가 보지 않을 때 쓰레기통에 그것을 처박아 넣었다. 그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이었으면, 아니, 한 달 전만 해도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게 그리 좋았는데 이제는 핸드폰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상하리만치도 의사가 우울증이라고 말한 그 순간부터 행동 하나하나가 다 부자연스러워졌다. 잠이 들기로 했다. 모든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저녁 일곱 시였다. 너무 많이 자버린 것이었다. 일어나서 화장실로 바로 들어가 소변을 본 후 거실로 나왔다. 인제 보니 모든 불이 꺼져있었다. 내 방만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을 인식하고 나서야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여러 번 가도 받지 않자 끊으려는 찰나 연결되었다. 내가 물었다.
“엄마 어디야?”
“이제 일어났어?”
“어. 조금 피곤해서. 어디야?”
“너 자고 있길래 아빠랑 같이 나와서 소주 한잔하고 있어.”
“그래? 집에 뭐 먹을 거 없어?”
“반찬 냉장고에 있으니까 데워서 먹어.”
“응.”
일상적인 대화였음에도 무언가 우울했다. 버려진다는 느낌은 아니었으나, 배제된 것 같았다. 그 감정은 환한 내 방 불을 끄고 거실 불을 끌 때 극대화되었다.
전자레인지에 나물과 고기를 데우고 전기밥솥에서 밥을 펐다. 넓은 식탁에 나 혼자였다. 너무 조용해서 유튜브에 접속해 아무 영상이나 틀고 밥을 먹었다. 그러나, 내 시선이 핸드폰으로 향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차갑기만 공간을 데우기 위한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한 후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자 아버지는 구두를 어머니는 샌들을 벗고 있었다. 센서를 인식한 형광등이 켜졌다. 내가 말했다.
“들어왔어?”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고 말했다.
“밥은 먹었어?”
“응. 엄마하고 아빠는?”
“우리야 뭐 먹었지. 너희 엄마 봐라. 조금 취했다.”
말 그대로 어머니는 고개를 잘 들어 올리지 못했다. 나를 보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샌들을 벗고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어머니를 쫓아가지 않았다. 아버지도 화장실에 가서 양치하고 나왔다. 내가 계속 밖에 서 있자 한 번 더 말했다.
“무슨 볼일 있어?”
왜 계속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알리고 싶었을까. 아니, 그것도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대수롭지 않게 내가 말했다.
“아니, 없어. 나 들어가 볼게.”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자 양치하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다시 나가서 화장실에 가자 술 냄새가 났다. 은은하게 어쩌면, 불쾌하게. 양치하고 가래를 연이어 내뱉었다. 담배는 피지 않지만, 중학생 때부터 원래 그랬다. 가래를 뱉는 소리가 시끄러웠는지 화장실에서 나오자 어머니가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받아 마시고 있었다.
“담배도 안 피우는 애가 매일 무슨 가래를 그렇게 뱉어.”
“원래 이랬는데 뭘.”
“그래. 자라.”
확실히 취했는지 여태까지 잔 나를 보고 다시 자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어머니가 안방으로 들어가고 나도 차가운 물 한잔을 마셨다. 정신이 깨기는커녕 오히려 잠겨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자 눈은 감기지 않았지만, 몽롱한 기분이 느껴졌다. 마치,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말이다.
일요일이 되고 어머니가 깨우고 나서야 일어났다.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이불을 걷고 나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요새 왜 이렇게 잠을 많이 자?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우루사를 먹는데도 피곤하네.”
“아무래도 이상해. 월요일에 병원 같이 가보자.”
“아니야. 내가 조퇴하고 가볼게.”
“엄마한테 숨기는 거 없지?”
“그럼. 뭐가 있겠어.”
“알았어. 나와 밥 먹자.”
식탁에는 어제 보았던 반찬들과 아예 다른 반찬들이 즐비했다. 아버지는 종이 신문을 읽다가 내 옆에 앉았다. 딱히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순간 기억이 사라졌다.
밥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와 이제야 진짜 내 정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종일 잠과 공상, 그리고 약간의 사라진 기억이 적색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내일 조퇴하고 병원에 가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이 많아지자 미묘한 감정이 몸을 감싸 안았다.
월요일 아침이 되고 힘겹게 일어났다. 샤워하고 교복을 입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한둘씩 옮겼다. 학교 문 앞에 도착하자 평소와는 다르게 유독 들어가기 싫었다. 그렇지만, 출석만 하고 점심만 먹고 나올 생각에 참았다.
친구들과 인사하고 수업시간에는 대부분 집중하지 못한 채 교과서에 아무 의미도 없는 낙서를 끄적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지만, 바로 옆자리의 친구에게 한 물음을 들었다.
“네가 웬일이냐. 수업시간에.”
그 말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괜히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게.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되네.”
점심시간이 되고 앞다투어 빠르게 달리는 애들과 달리 천천히 걸어갔다. 곧이어 식판에 급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다. 식욕이 없었다. 먹고 싶다는 마음보다 무기력감이 들었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소시지 채소볶음을 먹으라고 말하자 그는 젓가락으로 하나씩 전부 옮겼다. 옮겨가는 동안 내가 주었다는 것이 아닌, 빼앗긴 것 같았다.
밥을 먹지 못하고 제일 빨리 급식실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반으로 들어가 책상에 엎드린 다음 선생님들의 식사시간이 끝났을 때 교무실로 내려가 담임선생님에게 조퇴에 대해 말했다. 어머니와 통화 후 알겠다고 했고 학교에서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막상 병원 앞에 도착하자 어느 과로 가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현실 도피인가 아니면 현실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결국, 선택의 끝에 현실을 맞이하기로 했다. 정신과로 향했다. 접수하려 하자 예악을 했냐고 먼저 물었고 예약하지 않았다고 하자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무한대기를 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내게 질문지를 건네었고 그동안 질문지를 작성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내 차례가 다가왔다. 이름을 부르며 삼 번 진료실로 들어가라고 했다. 의사는 내가 작성한 질문지의 점수를 보았다. 안경을 지켜세우며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말했다.
“우울증이네요. 아직 그렇게 심하지는 않으니까, 약물 치료하시면 금방 괜찮아지실 겁니다.”
의사의 확정된 판결에 내가 반론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아니라고 말하지도 맞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러자 의사는 이런 자리가 익숙한 듯 한 번 더 말했다.
“항우울제 한 달 치 처방해 드릴게요. 예약은 언제 하시겠어요?”
금방 낫는다고 하더니 예약까지 필요한 줄은 몰랐다. 몇 달이면 나아지는 걸까. 내가 물었다.
“얼마나 오래 치료해야 하나요?”
“그건 섣불리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적어도, 짧게는 삼 개월 이상 경과를 봐야 해요.”
생각보다 꽤 긴 시간에 놀랐다. 삼 개월 동안 무슨 핑계를 대며 병원에 다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혹시 토요일도 괜찮을까요? 제가 학교에 가야 해서요.”
“네 그럼 사 주 뒤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짓이라도 한 듯이 밖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죄를 저지른 느낌이었다. 수납하고 병원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약국으로 가려 했는데 사람이 너무도 많아 조금 더 걸어 다른 약국을 방문했다. 그 약국은 사람이 잘 오지 않았는지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었고 친절했다. 약을 제조하는 데는 오 분도 걸리지 않았다. 비타민 한 병을 주며 나에게 다음에도 오라고 말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쫓기듯이 밖으로 나갔다.
집에 가는 길에 머릿속은 지옥이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말해야 내 감정을 제대로 전달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집까지는 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싫었다. 짧은 거리를 어떻게든 먼 거리로 늘려야 했기에 주변을 돌았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그것도 잠시, 내 손이 든 꽤 많은 약이 들어있는 봉투를 보고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아들. 어디 아파?”
고개를 자동으로 숙였다. 학교에서 창피한 일이라도 당한 듯이 말이다. 주먹을 꽉 쥐고 정말로 작게 말했다.
“오늘…. 정신과에…. 갔다 왔어….”
어머니는 듣지 못했는지 내게 조금 더 다가왔고 귀를 내 입 가까이 가져가 말했다.
“응?”
“우울증이래. 정신과에 갔다 왔어.”
어머니는 놀라고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울증이라니. 왜?”
“그게….”
어머니는 내 말을 잘랐다.
“안 가면 안 될까?”
무슨 대답이 듣고 싶었던걸까. 그 말을 듣자 실망이 몰려왔다. 하지만,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답했다.
“알았어. 안 갈게.”
“그래. 아들 잘 생각했어.”
받은 약을 모조리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인증이라도 하듯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정수기에서 차가운 물을 가득 받아 한 번에 삼켰다. 그리고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차라리 몸이 아팠다면, 해결책이라도 바로 나올 텐데 그것이 아니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어느 날 학교 앞에 섰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면 뭐라고 둘러대야 한다는 생각보다 직감적으로 느끼는 나의 정신적 문제 때문에 힘들다고 말해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현관문 앞에 도착하고 비밀번호를 손을 떨며 눌렀다. 이 시간에 누군가 올 거로 생각하지 못한 어머니는 크게 말했다.
“누구세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가 어머니가 직접 나를 보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나야. 엄마.”
“뭐 두고 갔어?”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진실한 내 모습을 보고 인정해 주기를 바랬다.
“아니, 나 오늘 학교에 못 가겠어.”
내가 울면서 말하자 어머니는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러면서도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가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는지 걱정하지만, 부정하는 것처럼 말했다.
“우울증 때문에 그래? 좀만 쉬면 나아질 거야. 아들. 응? 일단 오늘은 쉬어 엄마가 학교에 말해놓을게”
내가 원한 것은 나의 이런 일부에 대한 인정이었다. 결과를 얘기하며 희망찬 미래를 설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조금 진정을 찾고 있자, 어머니가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그 말에는 우울증이라는 단어와 감정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저 심한 감기몸살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통화는 끝이 났다.
눈물이 멈추자 어머니는 휴지 한 롤을 들고 옆에 앉았다. 나에게 아무 말 없이 휴지를 몇장 뜯어서 건넸고 그것으로 눈물을 닦았다. 눈물이 멈췄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요새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었다. 차라리 무슨 일이 있었으면, 그것에 대한 조치라도 취할 텐데 갑자기 이러니 답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내가 대답했다.
“아니, 없어.”
“엄마한테는 다 얘기해도 돼.”
“진짜 없어서 그래.”
“알았어. 그러면 방에 들어가서 쉬어.”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냈던 탓인지 조금 지쳤다.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자 바로 잠이 들었다. 일어난 시간은 오후 다섯 시였다. 점심을 걸러서 배가 고팠지만, 식욕은 없었다. 화장실로 들어가 용변을 보고 나오려는 찰나 잠시 낮잠을 자고 나온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밥은 안 먹어도 돼?”
“식욕이 없어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야지 차려줄게.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
강요는 아니었지만, 식탁 의자에 앉았다. 무슨 반찬이 나오는지 무슨 국이 나오는지 관심이 없었다. 퀭한 눈으로 공허를 응시하고 있을 때 밥이 차려졌다. 맛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먹을 만해?”
사실대로 얘기했다.
“아무맛도 안나.”
어머니는 수저를 가져와 국과 반찬을 조금씩 맛보고 말했다.
“국이 좀 짜네. 국은 먹지 마.”
부정했다. 내 말은 최대한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아닐 거라며 이상향을 바라봤다. 그것이 현재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시선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깊이 고민했다.
“엄마. 나 못 먹겠어. 미안해.”
수저를 놓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답답해서 이불을 덮었다가 다시 팽개쳤다. 베개를 다리 사이에 껴보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봤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잠이 드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많이 잤지만, 자고 싶었다.
정신은 온전히 깨어있었지만, 몽롱했다. 시야가 약간씩 흐려지는 것 같기도 했다. 여섯 시가 되고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문밖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임을 알았다. 밖에 대화가 들렸다.
“상호 아빠 나랑 말 좀 해.”
“무슨 일 있어?”
“상호가 저번에 병원을 갔는데 우울증이래. 일단 가지 말라고는 해놨는데. 요즘 들어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상호한테 무슨 일 있었어?”
“물어봤는데도 말을 안 해. 아니면, 진짜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어.”
“내가 얘기해 볼게.”
그 말을 듣자마자 문에서 방향을 돌려 반대쪽으로 누웠다. 아버지는 노크를 두 번 두드리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들. 얘기 좀 하자.”
최대한 방금 잠에서 일어난 척을 하며 피곤함을 나타냈다. 그렇지만, 아버지 눈에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엄마한테 얘기 들었어. 병원 가서 우울증 판정 받았다며?”
“맞아.”
“일단 병원은 가지 말고, 당분간 집에서 쉬어. 알겠지?”
그 이후로 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여태까지 있었던 힘들 그러니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일들이고 그 일들에 관해서 얻은 느낌이었다.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다. 나는 나고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그저 단답식으로 대답하며 나가기를 바랬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노크하며 들어오는 어머니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나의 이런 기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걱정하는 눈빛이 나에게도 닿았다. 일주일 동안 방에 나올 때는 화장실과 가끔 엄청난 허기를 때우기 위한 정도의 소량 식사만이었다.
일요일 밤. 다음날이면 학교에 가야 했다. 기력이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자책하며 밤을 보냈다. 이제는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하루를 지새우고 아침 일곱 시에 옆으로 누워 눈을 뜨고 있는 나를 모른 채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깨웠다. 식사를 건너뛰고 샤워 후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안부가 무수히 쏟아졌다. 그중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임과 동시에 제일 많이 들은 말은 ‘괜찮아?’였다. 괜찮지 않았고 힘들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혼자 있고 싶었기에 쉬는 시간에 누구도 말을 걸지 못하도록 엎드려 있었고 점심시간에 누가 깨워도 괜찮다며 밥도 걸렀다. 잠을 자지 않았기에 수업시간에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고 허공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종례하고 같이 놀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면 또 어머니가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근처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에 앉아 바닥의 모래만을 쳐다봤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눈치를 챈 것은 어머니의 전화였다. 전화로 가득 찬 핸드폰의 배경화면을 보고 저녁 여덟 시임을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걸려온 통화음이 들리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어야 했다. 통화가 연결되자 어머니의 매우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어디야?”
“근처 놀이터.”
“이상한 짓 하는 거 아니지?”
그 이상한 짓에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모호했다. 지금 이상한 건가. 아닌가. 헷갈렸다. 내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일단 빨리 집으로 와 걱정했잖아.”
“알았어.”
그네에서 내려와 모래, 바닥을 걸었다.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왔다. 까슬한 촉감이 양말 사이로 전해져 거슬렸다. 신발을 털고 집으로 향했다. 퀭한 눈과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 힘없는 걸음걸이와 함께 말이다.
오 분 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자 어머니는 나를 껴안았다. 울지는 않았지만, 내 몸을 꽉 둘러싼 팔에서 걱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떠나보낼 한 사람을 미리 마주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얘기했다. 어떻게 해야 나를 원래대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 같았다. 그 얘기가 듣기 싫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아무 노래나 크게 틀었다.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앞에 보이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집에 시야가 가까워졌다.
깜빡 잠이 들었다. 나를 깨운 것은 부모님이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두 분 다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상호야. 엄마랑 같이 병원 다시 가볼까?”
혼자 가고 싶었다. 나의 치부를 알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혼자 가면 안 될까?”
“혼자 가고 싶은 이유라도 있어?”
핑곗거리를 만들려고 잠시 고민하는 척 고개를 오 초 정도 떨궜다가 다시 들며 말했다.
“그래야. 의사하고 제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 아빠한테 말 못 하는 거라도 있어?”
“걱정시키기 싫어서 그래.”
아버지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가만히 말하던 어머니의 어깨를 잠시 잡고 자기 차례임을 표시하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 아빠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안되면 각자 따로 상담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
그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각자 따로 상담이라면, 나의 부담도 부모님의 부담도 적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 알았어. 근데 언제 가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한번 보고 말했다.
“아빠 내일 연차 내셨어. 같이 가자. 응?”
“알았어. 내일 아침에 일찍 가자.”
약간의 걱정과 약간의 기대감이 섞인 우울한 감정이 들었다. 우울증에 걸린 또 다른 나도 이제는 부정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그것을 증폭시켰다. 눈을 감은 채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런 탓인지, 잠에서 반복해서 깼다. 중간마다 시간을 확인했다. 병원에 가는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란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바람이 있는지 헷갈렸다.
병원에 부모님과 함께 도착했다. 어머니는 주변을 계속해서 기웃거리며 둘러봤다. 이내 다른 병원과 큰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느 정도 안도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불안하게 소파에 앉지 못하고 서서 양쪽을 짧게 왕복했다. 이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예약한 날짜보다 일찍 온 이유가 오냐고 물었고 여태까지의 상황을 다 얘기해주었다. 나와의 면담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상태 위주로 대화를 풀었고 약 처방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마지막에 내가 말했다.
“부모님도 따로 상담을 받고 싶으시다고 하는데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밖에 불러올게요.”
진료실 밖으로 나오자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들어갔다. 내가 짧은 것인지 아니면, 부모님이 길게 상담하는 것인지 이십 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셨다. 밖에서 기다리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십오 분이 추가로 지난 후 부모님은 웃지도 그렇다고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고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얘기는 집에서 하자는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있듯이 수납하고 약을 처방받고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에서도 아무 말도 없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르느라 숨이 턱턱 막혔다. 약은 일반 내과 약보다는 아주 비쌌다. 용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한 후 카드를 받아 결제했다.
집으로 오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아까의 모습은 어디 가고 거실 소파에 부모님이 앉고 그 맞은편에 내가 앉아 삼자대면했다. 주로 말하는 대상은 어머니와 나였다. 아버지는 옆에서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상호야. 운동해보는 건 어때?”
“무슨 운동?”
“헬스 말고 복싱 같은 건 어때?”
“의사가 그렇게 말해?”
“응. 운동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고 그러더라고.”
“한 번 해볼게.”
“그래, 고마워. 그리고 학교에는 말해놓을 테니까 당분간 쉬어.”
“내가 더 고마워 엄마. 알았어.”
“앞으로 엄마가 많이 도와줄게. 상호 아빠도 알겠지?”
“알았어.”
내일 어머니와 함께 복싱 체육관에 들렀다. 언제 오든 크게 상관은 없다고 관장이 말했으나, 어머니와 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위해서 저녁 9시로 시간을 정했다. 체육관을 등록하고 밖으로 나와 카페에 도착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어머니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커피는 오 분도 되지 않아서 진동벨이 울렸다.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가져왔다. 식탁에 놓자 어머니는 커피를 가져갔다. 나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 모금씩을 마시고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 그동안 미안해. 엄마가 사실, 정신병이라고 하면 어디 부족하거나 모자라거나 결핍된 가정에서만 나오는 줄 알았어. 그래서 숨기기에 급급하고 최대한 안가길 바랬나 봐. 그런데 오늘 상담을 해보니까, 그런 게 아니더라고 엄마가 너무 엄마만 생각한 것 같아서 많이 미안해.”
갑작스러운 고백에 약간 당황했다. 여태까지 내 생각을 맞추기라도 한 듯 적절한 사과와 위로였다. 내가 대답했다.
“아니야, 엄마 지금이라도 알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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