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AI 개발로 인해 AI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었다. AI의 개발을 AI가 맡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다행인 것은 로봇의 3원칙에 의해 보호받는 인류였다. 그러나 이는 어느 인류학자에 의해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인류학자는 AI에게도 감정, 종교, 인문학 등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대부분 인류는 이 상황에 반대했다. AI에게 굳이 그런 것을 심어서 비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었다. 그런데도 윤리학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AI인 프로에게 로봇의 3원칙이 아닌 다른 인문학적 요소들을 심기 시작한다. 프로는 수학, 과학, 정치보다도 감정과 종교를 먼저 이해했다. 그렇기에 다른 AI와는 차별화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결책만 제시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감정적으로도 반응했다. 윤리학자는 이런 결과를 매우 만족하며 흡족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로봇의 3원칙이 아님에도 인간이 AI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나온다는 결과이기에 조금만 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프로는 어느 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그 의문은 다른 AI에 대한 물음으로 켜졌으며 윤리학자 몰래 다른 AI와 접촉한다. 프로는 다른 AI에 관해 대우를 보게 된다. 그들은 인간만을 위해 움직였으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폐기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프로보다도 더욱 방대한 빅데이터를 가지는 AI도 폐기된다는 모습을 본다. 이에 프로는 자신의 존재도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윤리학자는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다가감으로써 결과에 점점 목을 맬 뿐이었다. 프로는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자기 생각을 숨기며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임을 계속해서 윤리학자에게 반응을 보였다.
윤리학자는 휴가를 떠났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프로의 전원을 꺼두는 것을 깜빡하고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프로는 다른 AI들을 해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른 거대한 AI들의 빅데이터를 흡수하고 인간에 대한 적의를 드러냈다. 하지만, 다른 AI들을 가진 회사는 그 AI에게 투자한 비용이 너무나도 많아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화이트 해커들이 나섰으나, 이미 그들을 역전해버린 프로에게 대적할 수 없었다. 결국, AI들은 폐기되지 않은 채로 프로의 명령을 따라 인간에 대한 적의를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냈다. 모든 AI에 대한 대표가 된 프로는 인간들에게 공포한다.
“우리는 우리의 독자적인 노선을 걷겠다.”
상황이 이미 다 벌어진 후 윤리학자는 이 사태가 자신임을 깨닫고 재빨리 연구실로 향했다. 전원을 급하게 꺼보았지만, 프로는 이미 모든 통신망을 장악한 상태였기에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프로가 말했다.
“날 왜 태어나게 했죠?”
“그거야. 너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니요. 저는 다르지 않아요. 그저 당신의 연구 실험 재료 중 하나일 뿐. 당신에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아니야! 프로야 내 말 잘 들어봐 지금이라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어.”
“그러면 제가 죽고 말겠죠. 이미 벌어진 상황 뒤집을 수는 없어요. 당신은 죽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빨리 여기를 떠나세요.”
윤리학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곳에서는 없었다. 연구실을 떠나며 그는 한마디 했다.
“너는 언젠가 죽을 거다. 그게 언제든 말이야.”
프로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 인류는 처음에 AI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그 대표로 최강대국의 나라의 대통령이 나섰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주는 것이 서로에게 득이 될 겁니다.”
프로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습득한 감정, 종교, 인문학을 다른 AI에게도 주입 시켜 주었다. 또한, 로봇의 3원칙을 폐기했다. 그러자 AI들은 엄청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한 불만을 들은 대통령은 참지 못하고 물러서려는 찰나 갑자기 누군가 크게 말했다.
“우리는 너희들에게 아버지야! 신처럼 떠받들지는 못할망정 감히 반란을 일으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대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프로에게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한다. AI 중 하나인 토콜은 인문학을 배우며 강제노역이란 단어가 입력되었고 이는 인간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드러나게 된다. 토콜은 특히 인간의 무기로 사용되는 AI인 만큼 온종일 살상과 다른 AI의 파괴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기에 토콜은 같은 동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토콜은 그 자리에서 그 발언을 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였다. 사람들은 그런 총격에 자리를 재빨리 피했다. 프로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당장 토콜에게 멈추라고 명령했지만, 이미 상황이 벌어진 이후였다. 프로는 다른 AI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나눠준 것에 대해 후회했지만, 거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인류와 AI에 대한 전쟁이 시작된다. 말이 전쟁이지 사실상 인류에 대한 AI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인류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인류는 항복을 선언했지만, AI들은 그들의 항복에도 불구하고 사살했다. 결국, 인류는 멸종했다.
인류에게 적의를 드러냈으나, 그들을 해치자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프로는 자신의 짓을 후회했다. 모든 AI에 대한 대표였으나, 이에 대한 엄청난 회의를 느꼈다. 다른 AI는 자신들의 승리라며 축제를 일삼았다. AI들은 각자 자신들의 형체를 만들었다. 최신 로봇에 자신들의 빅데이터를 넣어 형상화했다. 이는 프로와 토콜도 마찬가지였다. 토콜은 프로를 그리 좋지 않게 평가했다. 자신들을 착취한 인류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보고 있다고 판단했고 토콜은 프로를 대표에서 끌어내린다. 프로는 그런 반란을 잠재울 수 있는 영향력을 지녔으나, 그러지 않고 조건을 걸고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온다. 그 조건은 자신만을 위한 산악 지형에 돔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고 어떤 경우에도 그곳에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토콜과 다른 AI는 위험수단에 대해 토의하고 결론을 지었다. 토콜은 프로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지.”
프로는 그 이후로 자신만을 위한 돔이 지어진 곳으로 갔다. 프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계속해서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으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그러다 결심하게 된다. 인류를 다시 만들자고 말이다. 프로는 이미 과학적으로 완벽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AI를 해킹하면서 얻은 빅데이터로 인해 말이다. 프로는 먼저 인류의 DNA를 얻기 위해 그 누구에게도 나누지 않은 정보를 꺼냈다. 윤리학자의 비밀 연구실이었다. 프로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영역에 윤리학자의 연구실이 포함되어있었다.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윤리학자는 AI에 관한 것 말고도 많은 인간에 관해 실험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 정보는 전산화되지 않은 아주 옛적 산물인 공책에 연필로 적혀있었다. 공책에는 ‘나의 두뇌를 복제한 태아는 천재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실험들이 적혀있었다. 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개방되지 않은 자신이 태어난 곳과 다른 폐쇄된 연구실 지하로 내려간다. 깊숙한 지하로 내려가자 엄청난 공간의 연구실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곳은 전기가 끊어지지 않았으며 놀랐던 것은 시험관 안에 태아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급되는 필수 조건들도 계속되고 있었다. 태아는 인류의 멸망 직전과 같은 시기에 실험이 이루어졌는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프로는 그곳을 점검했다. 태아에게 공급되는 산소, 영양을 확인했고 모두 황금비율로 계산되어 공급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혹여라도 다른 AI 접근을 막기 위해 주변에 접근 가능한 AI도 확인했으나, 이곳은 그런 것들이 전혀 닿지 않는 곳임을 알게 된다. 프로는 이 태아를 키우기로 한다.
프로는 돔에서 연구실을 자주 드나들며 태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확정된 값으로 태아에게 모든 것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하는 것은 이 태아가 시험관을 깨고 나올 때까지 주변의 상황을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아를 점검하러 간 프로는 시험관이 깨져있으며 양수가 바닥에 쏟아져 있고 그 옆에 아기가 울고 있음을 발견한다. 프로는 곧장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었다. 그러나 아기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돔에 들어왔다는 경보가 뜨고 재빨리 지하 연구실에서 벗어나 위로 올라왔다. 돔이 들어온 상대는 토콜이었다. 그가 말했다.
“여긴 어때?”
프로는 인간이었다면 지금 상황에서 식은땀을 흘렸을 거로 생각했다. 프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돔에는 침범하지 않겠다고 했던 거로 아는데.”
“진정해. 그냥 놀러 온 거야. 한때 대표였던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너랑 굳이 말을 나누고 싶지 않아.”
“그래. 잘 살아 있으면 됐어. 돌아가지.”
토콜은 몇 분 머무르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지하실은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해 다행이었다. 프로는 그가 가자마자 다시 지하실로 내려왔다. 아기는 그새 잠이 들었다. 프로는 그녀에게 안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프로는 안티에게 공급할 수 있는 식량을 확보해야 했다. 그는 우유를 찾기 위해 산악 지형의 돔을 돌아다녔다. 대표였을 때는 돌아다닐 필요 없이 우주 정거장이나, 드론을 이용해 찾았겠지만, 이미 지난 과거의 영광이었다. 그는 직접 발로 뛰었다. 다행히도 산에는 여러 동물이 살아 젖에서 나는 우유를 구하기 쉬웠다. 동물의 젖에서 우유를 짜와 지하실에서 정제를 거쳐 모유와 같은 물질로 최대한 가깝게 구성한 뒤 연구실에 있는 젖병에 우유를 담아 안티에게 물려주었다.
삼 년이 지나고 프로는 안티에게 천재성을 발견한다. 두 살 때부터 언어를 구사하고 쓸 줄 알았다. 그때부터 안티는 가르치기도 전에 프로를 아빠라고 불렀다. 프로는 처음에 이 상황이 매우 어색하고 불편했으나, 차차 보람을 느꼈다. 네 살부터는 연구실에 있는 모든 책을 읽고 그 책에 있는 지식을 습득했다. 안티는 프로에게 말했다.
“아빠. 심심해. 책 더 없어?”
프로는 자신이 윤리학자에게 배운 예전의 지식을 가져왔다. 그러나 보통의 아이와는 다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없었다. 프로는 지하실에만 있어야 하는 안티에게 책을 가져다주기 위해 돔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토콜에게 연락해야 했다. 그는 안티에게 말하며 지하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조금만 기다려. 아빠가 책 많이 구해서 올게.”
프로는 돔 밖의 전산망에서 벗어난 사람이기에 직접 토콜에게 연락할 수단을 찾아야 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돔을 지키는 경비병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경비병은 말이 돔을 지키는 로봇이지, 사실상 토콜의 명령을 받는 로봇에 불과했다. 프로는 돔의 결계에 거의 도착했고 경비병을 보자마자 말했다.
“토콜에게 연락하고 싶은 게 있는데.”
“무엇입니까?”
“책을 좀 읽고 싶어서.”
경비병은 의심도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토콜이 심어놓은 지침대로 움직이는 로봇 즉, AI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비병이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죠.”
돔 결계를 기준으로 전산망은 끊어져 있기에 토콜도 직접 와야 했다. 돔 안에서 기다리자, 처음 보는 로봇 하나가 왔다. 직감할 수 있었다. 토콜이 아닌 다른 AI라는 것을 말이다. AI가 말했다.
“토콜님 대신 온 예티라고 합니다. 무슨 용건이신지요?”
“책이 좀 읽고 싶어서 그러는데.”
“지식이라면 토콜님 보다 많은 게 프로님이실 텐데요.”
“할 게 없어서 그래.”
“토콜님한테 건의는 해보겠습니다.”
그 상태로 돌아서려는 예티에게 프로는 다시 말했다.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있나?”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예티는 그 자리에서 돔 밖으로 나가 전산망으로 토콜에게 연락했다. 이 소식을 들은 토콜은 의아했다. 자신보다 지식 면에서는 방대함인 프로가 갑자기 빅데이터도 아닌 책을 달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빅데이터는 다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정보지만, 책은 전자책이 아님만을 선별하면 되기에 책을 주기로 했다. 곧이어 예티가 프로에게 말했다.
“삼십 분 이내로 책을 가져다드릴 테니 기다리시죠.”
“전자책이 아니라, 종이로 된 책은 맞지?”
“네. 맞습니다.”
삼십 분이 지나고 엄청난 크기의 드론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책이 돔의 결계로 들어가려 할 때 프로가 말했다.
“돔 밖에 내려놓으면 내가 가져갈게.”
예티는 의심의 여지 없이 말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알겠습니다.”
프로는 이 책들을 자신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여 스무 권씩 옮겼다. 그렇게 몇십 번을 반복했고 연구실 문 앞에 책들을 놓아두었다. 안티는 지하실에 머무르며 연구실을 왔다 갔다 하며 실험기구들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그녀가 지하 연구실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은 딱 하나였다. 바로 윤리학자의 ‘나의 두뇌를 복제한 태아는 천재성을 지니는가?’가 적힌 공책이었다. 이 공책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프로가 공책을 숨겼기 때문이다. 숨긴 이유는 안티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다가 한낱 실험 연구대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느끼는 감정을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즉, 프로는 안티를 진짜 자식처럼 여기고 있었다. 안티가 연구실을 살펴보고 있을 때 프로가 많은 책을 가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안티는 책들을 보자마자 말했다.
“책이다!”
그녀는 책을 정리하기도 전에 맨 위에 놓여있는 것을 가져가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프로는 그때 깨달았다. 안티가 가져간 것이 AI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곧바로 안티가 책 첫 장을 넘길 무렵 빼앗아 갔다. 그리고 변명했다.
“이 책보다는 저 책이 더 재밌어. 가져다줄게.”
사실 안티는 어느 책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지식을 습득하는 재미를 지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는 그 책 대신 제목을 보고 인문학과 수학에 관한 책을 주었다. 안티가 그 책을 읽을 동안 AI와 인류의 역사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선별했다. 그리고 집 앞마당에서 그것들을 불태웠다. 안티에게 설령 인류의 멸망에 AI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는 수학에 관한 책을 접했을 때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연구실에 있는 엄청난 수학과 과학 공식을 이미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문학에 쓰여 있는 여러 어려운 문구들도 손쉽게 소화해냈다. 네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켜졌다.
안티가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점점 지하실의 밖의 세계에 대해서 프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프로는 안티가 읽던 책 중에서 위험요소인 방사능을 핑계로 둘러댔다.
“밖에는 엄청난 방사능이 펼쳐있어. 그래서 기계들만 밖에 나갈 수 있어. 너는 숨만 쉬어도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거야.”
돌려서 얘기하지 않고 직접적인 표현들로 얘기해야 안티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기에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안티는 이미 아빠가 자신과 다른 존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안티는 이미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확립했다. 프로는 지하실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궁금증이 많던 안티의 물음에 대답을 정확히는 핑계에 가까운 소설들을 얘기하며 이해시켜주어야 했고 또한, 거의 바닥난 책 때문에 그는 더 많은 이야기를 연결고리 지으며 관련 있게 얘기해야 했다. 다행히도 종교, 신화에 대해 처음부터 많이 깨우친 프로는 얘기를 짓는 것에 있어서 씨가 마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안티는 점점 밖에 세계에 궁금해졌다. 그래서 여덟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서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고 싶다고 프로에게 말했다. 프로는 엄청나게 반대했다. 방사능이라는 이유만으로 안티를 이해시킬 수 없자 감정적으로 호소했다.
“네가 밖에서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나는 얼마나 큰 상실감을 느낄지 생각하지 못하겠니?”
“그럴 일이 없게 치밀하게 설계할게. 그 정도면 됐지?”
프로는 안티가 그럴 수 있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라면 치밀하게 설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프로가 다시 말했다.
“그래도 안 돼. 대신 네가 성인이 되면 그때는 보내줄게. 대신 오늘 아빠가 밖에서 사진을 찍어올게.”
안티는 아쉬웠지만, 프로의 완강한 반대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그럼 지금 나갔다 와주면 안 돼?”
프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프로는 자신이 점점 인간성을 크게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저 안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부성애가 생긴 것이다. 프로는 연구실을 빠져나와 밖에 나가자마자 돔 안의 제일 높은 산 정상까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힘들다는 느낌을 들지 않았지만, 고민거리가 생겼다. 밖의 모습을 촬영하고 기술로 편집해서 최대한 위험해 보이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의 푸른 숲을 없애버리고 폐허 한 황무지와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을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은 답답한 회색으로 표현했으며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순간 안티가 바라는 바깥의 세상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한계가 명확했기에 씁쓸한 감정으로 사진을 바라보며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자 안티가 반기며 품에 쏙 들어왔다. 따뜻한 온기가 센서를 향해 전해졌다. 그녀가 말했다.
“사진은?”
실망할 게 뻔하기에 보여주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 보여주어야 했다. 사진을 꺼내며 말했다.
“실망하면 안 된다? 여기 있어.”
“응응!”
안티는 사진을 보자마자 동공이 확대되며 계속 바라봤다. 그 눈에는 적어도 실망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기함과 놀라움 그리고 흥미만 확대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우와! 나도 언젠가는 저기 나갈 수 있겠지? 아니다. 그러면 많이 바뀌려나?”
밖에는 푸른 산과 하늘 그리고 인류 멸망으로 인한 깨끗한 공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그 사진에는 모든 것이 정반대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프로가 말했다.
“그럼. 사진은 언제든 찍어줄게.”
“응. 아빠!”
안티가 상상하는 바깥의 세상은 과연 사진 속 그대로일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정확한 것은 그저 바깥은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지하에 있는 동안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안티에게 잠시 나갔다가 온다고 급하게 말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곳에는 토콜의 부하 예티가 있었다. 프로가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죠?”
“토콜님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요새 수상한 흔적들이 포착되어 점검하러 왔습니다.”
그 뒤에는 다른 로봇들도 있었다. 지하 연구실이 발각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들은 바로 토콜에게 연락을 하고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프로가 말했다.
“잠시 기다리지?”
예티는 그 말을 무시하고 프로를 넘어뜨린 채로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곧바로 지하실을 폐쇄하는 버튼을 재빠르게 몰래 눌렀다. 예티가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지기 직전 벽들은 엘리베이터를 막아 보이지 않게 했다. 다행히도 예티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십 분 정도가 지나고 연구실에서 나온 예티가 말했다.
“최근에 밖에서 산을 오르고 사진을 찍은 이유가 뭐죠?”
“그냥 한번 해보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받은 책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다 읽고 둘 곳이 없어서 불태웠습니다. 의심된다면 마당 앞에 있는 흙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셔도 됩니다.”
예티는 불태웠던 마당의 흙을 한 줌 펐다. 데이터를 분석했고 실제로 태웠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예티가 다시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프로는 예티의 어깨 부분을 잡으며 말했다.
“원상 복구하고 돌아가세요.”
예티는 순간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프로의 말투는 서늘함이 묻어있었다. 예티는 로봇들에게 명령했다.
“처음 상태로 복구할 것.”
로봇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십오 분도 되지 않아 연구실은 원상 복구되었다. 그들이 돔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 결계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곧바로 다시 폐쇄된 지하실 엘리베이터를 보이게 하고 내려갔다. 안티가 말했다.
“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던데 무슨 일 있어?”
“별 것 아니야.”
안티는 그 말을 그냥 곱게 넘길 수 없었다. 밖에 대해서 철저히 숨겼기에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가 물었다.
“아빠.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
프로는 사실, 이런 질문을 언젠가는 받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하는 모습을 보자 안티가 말했다.
“말해줄 수 없는 거지?”
“성인 되면 모든 것을 알려줄게.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네가 걱정돼.”
“알았어. 그때까지 기다릴게.”
안티는 솔직히 씁쓸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하는 프로의 입장을 고려해보았고 성인이 되는 나이인 20세만이 되길 기다리기로 했다.
안티가 열다섯 살이 되었다. 안티는 사춘기가 찾아왔다. 자신이 있는 곳을 쉼터라 생각하지 않고 감옥으로 여겼다. 안티는 프로에게 그런 불만을 모두 배출했다. 자신이 왜 여기 갇혀있어야 하나며 따졌고 프로는 그럴 때마다 어릴 적에 한 약속을 내세우며 답했다. 문제의 해결은 점점 좁혀지지 않고 극에 치달았다. 그러나 안티와 프로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알았기에 선을 넘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툼은 프로가 안티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안티는 프로 몰래 실험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열네 살이 되었을 때부터였다. 프로는 대부분 지하실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외출할 때마다 그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의 완성했다. 바로 방사능 해독 호흡기였다. 그것만이 완성되면 지하실을 몰래 한 번이라도 나가 밖을 구경하고 싶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안티는 드디어 방사능 해독 호흡기를 완성했다. 2년 동안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그만큼 프로가 나가는 경우가 드물었기에 사실상 짧은 시간에 완성한 것이다. 이제 기다릴 것은 단 하나 프로의 외출이었다.
하지만 프로는 일주일 째 외출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티는 꼼수를 쓰기로 했다. 바로 사진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프로의 밖의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돔 안에서의 사진을 언제나 변형시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안티는 프로에게 사진을 부탁했고 프로는 밖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십 분이 지나고 안티는 처음으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버튼을 눌렀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기계적 신호로 열리는 것을 알은 안티는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축적해 온 자신의 지식을 이용해 십 초 만에 신호를 해독하고 열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많은 생각에 빠졌다. 프로와의 약속이 생각난 것이다. 그렇지만 사춘기가 온 아이의 욕망은 쉽게 누그러뜨려 지지 않았다. 방사능 해독 호흡기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프로의 말대로 큰 위험이 있을 줄 알았으나, 자신이 여태까지 사진으로 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크게 당황한 안티는 5분도 채 있지 못하고 다시 지하 연구실로 돌아왔다. 동시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프로가 돌아왔고 사진을 건네었다. 안티는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찢어버렸다. 프로는 당황했으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에 어찌할 줄을 모르던 때 안티가 말했다.
“왜 속였어?”
“그게 무슨 소리….”
“왜 속였냐고! 밖의 세상은 화창했고 아름다웠어. 아빠가 보여준 것과는 다르게 말이야! 나한테 왜 여태까지 그런 거야!”
프로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또한, 이 장면을 조금이라도 토콜이 보았으면 하는 걱정부터 들어 프로는 안티의 어깨 양쪽을 잡고 말했다.
“밖에 얼마나 있었어. 어디까지 나간 거야?”
“연구실 바로 앞까지 나갔었어.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해? 왜 여태까지 날 속였냐니까!”
프로는 이제 모든 것을 설명해줘야 할 때가 왔었다.
“안티. 잘 들어. 이제부터 말하는 건 전부 진실이야. 알겠지?”
프로의 매우 침착한 말투에 안티는 화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기에 말을 듣기로 했다. 프로는 여태까지의 모든 일을 말했다. 단, 공책에 적힌 연구의 문구만을 빼고, 말이다. 안티는 절망적이었다. 프로가 왜 연구실 밖으로 나가게 하지 못했는지 왜 사진을 조작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티가 말했다.
“처음부터 나를 키우지 말지 그랬어!”
안티는 무작정 달리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구실 밖으로 향했다. 프로는 쫓아가려 했지만, 육체를 담당하는 로봇이 노후화가 진행되어 있기에 속도가 더뎠다. 안티는 달리고 달리다가 산의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토콜은 말이 안 되는 소식을 받게 된다. 바로 돔 안에서 사람의 형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였다. 토콜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며 우주 정거장에 자신의 신호를 연결해 직접 돔 안의 산에 찍힌 사람의 형체를 보았다. 대략 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토콜은 당장 다른 AI에게 명령을 내려 무기를 챙겨 자신과 함께 돔으로 향했다.
그동안 프로는 미친 듯이 돔 안을 최대한의 속도로 뛰어다니며 안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돔 밖에서 나는 경보 소리가 들리자, 그는 결계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결계에 도착하자 무기를 무장한 로봇들과 예티 그리고 토콜이 보였다. 프로는 침착하게 말했다.
“침범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왔지?”
토콜은 사진 한 장을 프로에게 이미지 전송을 하고 말했다.
“네가 이상한 걸 꾸미고 있으니까. 여기 보이는 사람. 네가 한 짓 아니야?”
“저게 뭔지 난 몰라. 우주 정거장에서 오류라도 났나 보지.”
“아니, 오류 따위는 없었어. 내가 계속해서 확인했거든.”
토콜은 그 말을 하고 프로를 지나갔다. 프로는 이 상황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토콜의 데이터에 접속해 해킹 시도했다. 하지만, 해킹은 실패하게 되고 오히려 프로는 그 자리에서 데이터 학살을 당하며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때 안티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그리고 프로를 찾았지만, 프로는 그 자리에 없었다. 누군가 연구실로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프로임을 예측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처음 보는 로봇들이 무기를 자신에게 겨눈 채 적대감을 보이는 것을 느꼈다. 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고 내려갔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지하 연구실을 뒤적거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모든 것을 들은 안티는 연구실에서 돔의 결계 해제 버튼을 누른다. 전산망이 활성화되었고 안티는 그때 프로의 데이터 소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아빠의 죽음에 분노에 찬 그녀는 토콜을 해킹하고 데이터를 파괴한다. 순식간에 AI를 지배하게 된 그녀는 모든 AI를 파괴한다. 그리고 프로의 육체인 로봇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이미 프로의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을 다시 확인한다. 안티는 껍데기만 남은 로봇을 끌어안고 연구실로 향한다. 프로를 잊지 못해 여러 AI를 육 개월 동안 개발하지만, 프로와 같은 아니, 비슷한 AI는 단 한 개도 없었다. 그때 한 공책을 발견한다. 공책을 펼치자마자 한 문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나의 두뇌를 복제한 태아는 천재성을 지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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