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무언가 결핍되었다. 맞벌이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부모님, 그리고 각자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나와 여동생만 보아도 가족들의 연대감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던 도중 동생의 생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동생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와 나는 반대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머니의 의견에 뜻을 따르겠다는 나였다. 어머니는 한 소중한 생명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강조했다. 그에 반해 동생은 키울 수 있다며 아버지에게 끝임없이 말했다.
동생의 생일날 아버지는 그날 유독 늦으셨다. 동생과 함께 말이다. 어머니와 나는 연락해 봤지만, 돌아오는 연락은 밥을 먹고 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아버지의 손에는 정말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있었다. 동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들어왔고 어머니는 가져다 버리기 전에 치우라고 말했다. 나는 강아지를 보자마자 매력에 빠져들었다. 곧장 태도를 바꿔 동생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많이 바뀌었다. 맞벌이를 끝내고 돌아온 부모님에게 먼저 달려가는 것은 나와 여동생이 아닌, 별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는 별이를 품에 안고 웃으면서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삼일 정도만 싫어하는 척을 하신 것인지 그 이후로는 아버지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
며칠이 지나고 강아지의 이름이 붙여졌다. 원래는 아버지의 성을 따라 이별이라고 부르려고 했으나, 뜻이 좋지 않아 어머니의 성을 붙여 최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별이는 무척 작았다. 내 손 크기 하나 정도였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특히 어디에도 보이지 않을 때가 가장 무서웠다. 혹여라도 이불이나 사각지대에 있어 밟기라도 하면 대형사고이기 때문이다.
***
삼 개월이 지나자 별이는 조금 컸다. 손바닥에 다 올리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와 찾아오는 중성화 수술을 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동물병원으로 갔다. 중성화 수술에 대해 상담을 받던 도중 별이는 고환이 밖이 아닌 안에 있어서 수술비가 많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맞벌이였던 우리 가족이기에 수술비는 그리 부담이 되지 않았다. 수술 날짜는 가족이 모두 볼 수 있는 토요일로 잡았다.
토요일이 되고 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는 약간의 상담 후 별이를 데리고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이가 깔때기를 쓰고 나왔다. 수술 부위의 상처를 핥지 못하기 위해 쓴 것이었다. 별이는 계속해서 수술 부위를 핥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소독약과 연고를 자주 발라주는 것과 며칠 뒤에 다시 실밥을 풀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는 게 체감이 되었다. 동생은 마치 큰 수술처럼 수술이 끝나자 울음을 터뜨렸다.
***
우리 가족 중에서 별이를 제일 아끼는 사람은 아버지와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 둘의 방식은 너무나도 달라 자주 다투었다.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 별이는 자신도 먹고 싶었는지 계속 아버지의 다리를 긁으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에 식탁 위에 있는 고기를 물로 씻어서 주려고 했다. 동생은 이를 보자마자 안된다고 화를 내며 별이 입안에 있던 고기를 빼서 버렸다. 둘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고 어느 날 크게 싸우게 되었다. 왜냐면 아버지는 삼겹살을 성인 남자 세입 크기로 잘라 별이에게 몰래 주었고 그것을 먹고 토한 것이었다. 동생은 누가 그랬냐며 따지고 묻자 어머니와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당당하게 그럴 수도 있느냐며 넘어가려 했다. 어이가 없었던 동생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별이 그런 거 먹으면 토하고 건강 나빠진다고.! 나중에 죽으면 다 아빠 탓이야.”
아버지는 그런 일도 있다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넘겼다.
“안 죽어. 괜찮아.”
그러자 동생은 더욱 화냈다.
“앞으로 이러면 이럴 때마다 집 나가 버릴 거야.”
아버지도 그때부터 화가 났다.
“그딴 말 할 거면 그냥 지금 나가.”
“어 나갈 게 별이 데리고.”
“별이는 여기 있을 거야. 왜 데리고 나가?”
“아빠가 하는 게 별이한테는 독이 될 테니까.”
“조용히 해.”
“내가 왜 조용히 해야 해? 지금 조용해야 할 것 아빠 아니야?”
아버지는 말이 없다고 조용히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기가 유난히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동생도 별이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함께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
별이는 분리불안증이 생겼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웃이 말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나와 동생이 가고 맞벌이로 부모님이 가면 계속해서 짓는 것이었다. 이웃에게는 소음이었고 조용히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별이에게 짖음 방지기를 목에 착용했다. 짖으면 약간의 전기 충격으로 짖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전류는 아프지는 않고 살짝 따가운 정도였다. 그런데도 약간의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마치 학대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짖음 방지기를 사용하자 며칠 가지 않아 우리가 없을 때도 짖지 않았다. 그러나, 분리불안증은 계속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집에 웹캠을 설치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이는 짖는 대신 낑낑거리는 것으로 대체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별이와 함께 산책하러 자주 나가는 것은 동생과 아버지였다. 이것도 둘의 방식은 달랐으나, 여태까지 큰 위험이 없기에 서로 건드리지 않았다. 동생은 목줄을 꼭 했으며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서 산책을 시켰고 아버지는 목줄을 하지 않고 뒷산 같은 곳에서 산책을 시켰다.
그날은 아버지가 산책을 시키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 산소에 간다며 나와 별이를 차에 태우고 산에 도착했다. 별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좋다며 뛰놀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진돗개 몇 마리가 목줄에 묶여 있었는데 별이는 유심히 지켜보다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그때 진돗개 한 마리의 목줄이 끊어지더니 별이를 향해 돌진했다. 별이는 몸통이 물렸고 엄청난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당장 달려가 진돗개의 몸통을 발로 찼고 별이는 풀려났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나와 아버지는 산소고 뭐고 당장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수의사는 별이의 상태를 보더니 큰 부상은 아니지만,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다행히 뼈에 이상은 없었지만, 별이의 몸통에 누가 봐도 이빨 자국이 보였다.
집에 도착해 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산책갔다 왔다고만 했다. 씻기는 것은 동생 몫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별이를 앉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러던 도중 화장실 문을 닫았음에도 동생이 놀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거!”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자 바로 집 밖으로 당구를 치러 간다고 말하며 나갔다. 자연스럽게 화살이 돌아오는 것은 내 쪽이었다. 별이를 화장실에 둔 채로 나와 내 방문을 노크도 하지 않은 채로 열며 말했다.
“별이 몸통에 상처 뭐야!”
“아…. 산책하다가 다른 개한테 물렸어.”
“뭐?”
“병원 갔다 왔어. 엑스레이도 찍었고 별 이상 없고 약만 잘 발라주래.”
동생은 나에게 묻고 아버지 방문을 열었지만,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긴장될 정도였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는지 동생이 크게 소리 지르며 말했다.
“아빠! 내가 산책할 때 꼭 목줄 하라고 했잖아! 그게 힘들어?”
“산인데 뭐 어때.”
“그래서 다른 개한테 물렸어? 크게 안 다쳐서 다행이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빠 친구들이랑 있으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알게 된 엄마는 동생에게 별이에 관해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동생과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약간의 뒷말을 했다.
별이를 다 씻기고 나오자 상처 부위가 도드라져 보였다. 동생은 병원에 한 번 더 가봐야겠다고 하자 나와 어머니가 말렸다.
***
어머니는 벽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봤다. 거의 10년 전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는 어머니는 오래되었다며 다시 찍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생이 거들었다.
“별이 데리고 한 번 더 찍는 거 어때?”
“그럴까? 당신 생각은 어때?”
“나야 좋지요.”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시간을 조정해서 이번 주 일요일에 사진관을 예약했다. 우리는 모두 조금 들 떠 있었다.
일요일이 되고 아버지 차를 타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헉헉거리며 아버지 무릎과 동생 무릎을 왔다 갔다 했다. 십오 분 정도 가자 도착했다. 주위에는 사진관 하나밖에 없는 시골이었다.
사진관 안으로 들어가자 사진사가 예약에 관해 물어봤다. 예약한 어머니는 이름을 대며 확인했다. 그 이후로 탈의실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별이를 제외한 모두가 메이크업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색하다면서 싫어했지만, 나의 부탁으로 꾸역꾸역 억지로 받았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조금 오래 걸렸다. 사십 분 정도가 지나서야 나왔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약간의 적응이 필요했다. 모두 준비가 끝나고 동생이 별이를 안자 사진사가 말했다.
“강아지 옷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어요. 한 번 보시고 입혀주시면 될 것 같아요.”
동생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래요? 어디에 있어요?”
사진사는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동생은 별이를 안고 이옷 저옷을 입혀보다가 노란색 강아지용 후드티를 입혔다.
스튜디오에 들어가고 사진사가 말하는 대로 자세를 잡았다. 자세를 다 잡자 사진사는 갑자기 사진을 못 찍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순간 당황해서 왜냐고 물어보자 사진사가 대답했다.
“표정들이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찍어요. 자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각자 서로 바라보세요!”
여동생은 별이를 안고 나를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려고 했다. 사진사는 셔터를 많이 누르더니 이번에는 별이를 각자 다른 사람이 안고 있으라고 말했다. 별이는 셔터에서 나오는 플래시가 싫었는지 정면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별이를 포함해 다 웃고 있었다. 사진을 다 찍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자 이대로 집으로 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카페라도 가자고 했다. 동생은 핸드폰으로 검색을 좀 하더니 근처에 애견카페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수많은 강아지가 있었다. 다만, 대형 개는 위험요소가 있기에 따로 분리해 두었다. 카페 메뉴를 보던 중 멍푸치노라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는 궁금증에 물어봤다.
“멍푸치노는 뭐예요?”
“아 강아지들이 먹는 커피에요. 물론, 카페인이나 그런 것들은 당연히 없어요.”
동생은 무조건 시켜서 별이를 먹여보자고 했다. 그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아이스티 두 잔, 멍푸치노 한 잔을 시켰다.
십 분 정도가 지나고 커피가 나왔다. 혹시라도 멍푸치노가 뜨거우면 어쩔까 했지만, 미지근했다. 우리는 커피를 받자마자 별이에게 멍푸치노를 주었다. 별이는 맛있는지 계속해서 혀로 할짝거렸다. 아버지는 갑자기 궁금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사람이 마셔도 돼요?”
“상관은 없는데 맛은 없으실 거예요.”
별이가 배가 부른지 멍푸치노에 관심이 없을 때 우리는 돌려가며 한 번씩 마셨다. 역시 강아지의 미각과 사람의 미각은 매우 달랐다. 자극적인 것에 찌들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맛이 굉장히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사진관을 들렀다. 우리 가족은 모두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총 사십 장이 넘는 사진들이 대형 스크린에서 띄어졌다. 먼저 배경을 고르기로 했다. 숲, 바다, 등등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일 무난하고 자연스러운 것은 흰색 배경이었다. 그다음에는 자세에 따라 고르기로 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을 골랐다. 마지막은 별이였다. 별이가 앞으로 보는지 아니면 옆을 보는지 눈을 감았는지를 보며 골랐다.
마지막으로 선택된 사진은 흰색 배경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고 아버지 품에 안긴 별이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을 골랐다. 액자의 크기는 벽에 걸 수 있는 정도가 아닌, 책상이나 탁자에 놓을 만한 작은 액자를 선택하고 총 네 장을 뽑았다.
사진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곧이어 사진이 담긴 네 개의 액자를 주었다. 별이에게 보여주자 냄새를 맡으면서 발을 올렸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
우리는 이사를 했다. 전의 집과 열다섯 평이 차이나는 집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집이 사정이 안 좋아졌다거나 가난해졌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세하게 모르지만, 어머니는 집값이 제일 올랐을 때 그 집을 팔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내 방도 비교하면 매우 작아졌다. 별이는 새로운 집에 금방 적응했다. 첫날에는 집안 곳곳을 온종일 냄새를 맡으며 경계했지만, 그것은 이틀도 가지 않았다. 또한, 산책도 전보다 더 자주 나갔다. 아파트 뒤에는 뒷산이 있었는데 거기는 사람도 많이 오지 않는 곳이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왔다. 목욕을 시키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렸다. 그런데 별이가 갑자기 뒷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생각을 동원했다. 하지만, 산책 중에서 아무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생도 이를 목격했고 당장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서 도착하자마자 수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자고 말했다. 별이는 계속해서 낑낑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제발 큰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수의사가 말했다.
“양쪽 슬개골 탈구예요. 소형견한테는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내가 물었다.
“큰 수술이에요?”
“아뇨. 너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술은 이른 시일 내에 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그날 바로 수술을 했다. 수술하고 나온 별이는 조금 초췌해 보였다. 이제 다섯 살인데 마치 열다섯 살 같은 노견처럼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히 수술이 끝난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수의사는 미끄럼 방지 패드를 집에 설치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날 당장 미끄럼 방지 패드를 주문했다.
물건이 도착한 것은 다음날 오후 한 시였다. 부모님은 일을 나갔고 우리는 방학 기간이어서 설명서를 보며 패드를 깔았다. 다 깔고 나서는 바뀐 점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옛날에는 별이가 뛰어다니면 약간의 미끄럼과 함께 조금 밀리는 듯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오고 별이는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안겼다. 바닥에 깔린 패드를 보고 우리에게 고생했다고 말했고 오늘따라 꼬리를 더 흔드는 듯한 별이를 볼 수 있었다.
***
별이는 언제부터인가 사료를 잘 먹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꾸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어서였다. 그로 인해 별이는 알레르기가 생겼다. 귀에 피가 날 때까지 긁었다. 다시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동생은 전부 아버지 탓으로 돌렸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수의사는 사람이 먹는 음식은 절대 주지 말고 귀 소독약과 알레르기약 그리고 알레르기에 맞는 사료도 주었다.
집으로 향하자 별이가 귀를 여전히 긁고 있었다. 긁지 못하도록 다시 깔때기를 씌웠다. 그리고 동생은 바로 별이를 잡고 귀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음식 절대 주지 마. 절대로.”
아버지의 대답은 한결같았지만, 바뀌는 행동은 전혀 없었다.
“알겠어.”
문제는 별이가 사료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주는 음식으로 길들어 있기에 가족끼리 식사를 하면 아버지의 다리를 긁으며 낑낑거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며 괜찮다고 말했고 동생과의 분쟁은 심해졌다.
사료를 먹지 않은 지 삼 일이 되었다. 별이는 계속해서 귀를 긁으려고 시도했다. 결국, 동생은 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한참을 얘기하다가 나왔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전쟁의 선전포고 같았다. 그 이후로 동생은 아버지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또한, 아버지도 별이에게 음식을 주긴 했지만, 전과 비교하면 훨씬 덜 주었다. 별이는 결국, 사료를 먹어야 했다. 사료를 먹자 제일 좋아하는 것은 동생이었다. 동생은 사료를 다 먹은 별이에게 약을 먹이고 간식을 주었다.
***
나는 대학생이 되고 동생은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었다. 대학에 합격하고 거리가 조금 멀었기에 기숙사를 써야 했다. 주말마다 집에 가서 별이를 보았지만, 돌보지는 못했다. 동생은 성적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공부보다는 아직 알레르기가 있는 별이를 돌보았다.
동생은 별이 덕분에 아버지를 더 싫어하게 됐다. 옛날에는 산책을 시켜주고 씻겨주었지만, 이번에도 괜찮다고 씻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가 별이가 진드기에 물렸기 때문이다. 그 진드기의 종이 무엇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별이는 매우 아팠다. 병원에 가서 진드기를 다 제거하고 주사도 맞아야 했다. 수의사는 그런 별이를 보며 말했다.
“자주 안 봐야 좋을 텐데. 자주 보게 되네요.”
“그러게요. 저희도 그러고 싶어요.”
그날부터 동생은 아버지에게 별이를 산책시키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럼 누가 시키냐고 물었다. 동생은 당연히도 자기가 대신시키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할 말이 없었고 알겠다고 하며 손을 저으셨다.
***
기숙사에서 학업 활동과 대외 활동이 맞물려 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집에 가면 별이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두 달이 넘는 동안에도 못 가지 못했음에도 나를 기억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별이를 키우기 전에는 강아지도 그냥 동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을 깨주었다.
동생도 점점 바빠졌다. 고등학교 삼학년 초반에는 별생각이 없었으나, 오 월이 되면서 생각이 바뀐 듯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여전히 유지하셔서 집에 늦게 들어왔고 동생도 늦게까지 독서실에 있었다. 나는 집에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별이는 그렇게 점점 혼자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별이의 고통을 당연하게도 이해하지 못하고 심려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행복을 채우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쯤부터 산책도 원래는 이틀에 한 번은 갔으나, 일주일 주말인 일요일에 한 번으로 줄었다.
***
그리고 방학이 찾아왔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여전히 학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산책을 시켜주고 씻겨주고 알레르기약과 귀 소독을 했다. 귀찮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어느 날 아버지는 별이를 산책시켜준다고 했다. 동생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방 밖으로 나와서 목줄과 풀숲에 가지 말라고 크게 강조했다. 아버지는 목줄을 챙기고 알겠다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두 시간이 지나고 늦게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받지 않았다. 그때 이상함을 느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 이 말을 들은 동생은 위험한 생각을 했다.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세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진짜 이상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다시 걸자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사고가 나서 지금 동물병원이야.”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말을 듣고 동생을 바로 방 밖으로 나와 내 핸드폰을 뺏고 말했다.
“무슨 사고? 많이 다쳤어?”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입이 열 개라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동생이 다시 물었다.
“무슨 사고냐고!”
“병원으로 와서 얘기하자.”
그 자리에서 어머니와 나 동생은 바로 차를 타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동생이 화를 내며 물었다.
“큰 사고야? 별이는 어디 있어!”
“수술 중이래.”
동생은 곧바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를 책망하며 말했다.
“별이 잘못 되면 어떡해! 내가 그러니까 목줄 제대로 하고 다니라고 했지!”
아버지는 동생을 안으며 말하려고 했지만, 동생은 아버지를 뿌리쳤다. 그때 수의사가 나왔다. 제일 먼저 다가간 것은 동생이었다.
“제발 저희 별이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수의사는 동생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래로 시선을 고정하면서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죄송합니다. 별이는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고가 너무 크게 났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별이가 왜 죽어요.”
어머니는 동생의 어깨를 잡고 말렸다. 아버지는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
별이가 죽고 나서 아버지와 동생은 일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는 몇 번 다가가려고 애썼으나, 동생은 그런 아버지를 완강히 거부하고 밀어냈다. 별이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반기는 누구 하나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은 공부에 당연히 집중이 되지 않았고 표정은 시체와 다름 없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말이다.
아버지는 피우시는 담배가 늘었다. 베란다를 보면 언제나 고개를 밖으로 돌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연기를 내뱉는 척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는 별이가 죽고 매일 불쌍한 별이라며 나에게 말했다.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 더욱 그리울 것 같아서 더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말이다.
***
일년이 지나자 우리 가족은 많이 회복했다. 아버지와 동생 사이도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어머니의 입에서 별이라는 말은 자주 나오지 않게 됐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별이의 장난감, 배게, 그릇을 버리지 않고 한쪽 구석에 놔두었다.
산책하다가 가끔 강아지가 보이면 별이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져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별이는 우리가 없을 때마다 얼마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불쌍한 별이, 행복했으면 하는 별이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더 행복한 주인을 만나기를 빌면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