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애는 최근 들어 화가 많아졌다. 모든 것들이 그리고 조그마한 것까지도 그녀를 화나게 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 그녀의 남편인 창준이 자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한심하게 여기었다. 창준을 한심하게 여기게 된 것은 그가 일을 그만두게 된 것부터 시작했다. 남편인 창준은 원래 공무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서라며 무작정 일을 그만두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귀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작은 사업을 하나 시작했다. 물론 실패하고 말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사업이 실패하자 술을 마셨다. 처음에 시작한 한 두 잔의 소주는 어느새 한두 병으로 바뀌었고 이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술을 만취할 때까지 마셔야 했다. 그날도 다르지 않게 창준은 술 냄새를 풍기며 자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아들을 보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취업할 나이가 되었지만,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인 진성을 보니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아빠와 똑같다며 그리고 너는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하지 못할 거라며 말을 하고 문을 크게 소리가 날 만큼 닫고 방 밖으로 나갔다. 영애는 지칠 대로 지치었다. 자신이 현재 다니는 회사 부장이 아니었다면 언제 무너져도 모를만한 집안이었다. 그나마 영애에게 기특한 모습을 보이는 한 사람은 자신의 두 번째 자식인 딸 윤미였다. 윤미는 대학에 가지 않아서 영애가 걱정했지만, 곧잘 취업하더니 용돈이랍시고 영애에게 돈을 부쳤다. 물론 많은 금액은 아니었으나 그런 모습은 칭찬하고 다닐 정도는 되었다.
다음날이었다. 영애는 마찬가지로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자 창준이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걸 본 영애는 자신이 일어났으니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일종의 배려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미운 정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때 영애에 눈에 띈 것은 부엌 탁자 위에 있는 소주 두 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미운 정까지도 없어지는 듯했다. 영애는 집 밖으로 향하며 한숨을 쉬면서 출근길에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까 영애는 직장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신입 사원이 새로 들어왔는데 눈치가 정말 없고 일머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 흔한 복사기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또한,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퇴근도 늦게 할 때 업무량이 많아 중간에 잠시 쉬거나 할 때 신입 사원은 자신이 팀장과 같은 대우를 바랐는지 자신도 일을 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뿐만 아니라 선배들한테 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신입 사원은 자기 일을 도와달라는 이유가 잘못됐다. 자신의 정시 퇴근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요즘 들어 신입 사원을 구하기도 힘들었기에 바로 내칠 수는 없었다. 영애는 직장에서도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영애를 달래줄 것은 딱 하나 있었다. 금요일에 퇴근하고 친구들과 만나 마시는 맥주 한잔이었다. 영애는 소주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싫어했다. 그 이유는 맨날 집에 처박혀 숨만 쉬면서 술을 마시는 창준 때문이었다. 영애는 그 자리에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50대 초반의 나이에 외박하기에는 무리였다. 결국, 집에 돌아오고 나면 술을 마시는 창준과 게임만 하는 진성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고 영애는 아침에 만든 돼지고기 간장 조림을 상하지 않으려고 데우기 위해 가스 불을 켰다. 그리고 곧장 몸의 피로를 씻으려는 듯이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를 다 한 후 바로 TV를 켰다. 창준은 어느새 잠이 들었다. 늘 그랬듯이 그 옆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TV를 보다 어디서 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이 돼지고기 조림을 까먹은 것을 인지했고 곧장 부엌으로 가서 불을 껐다. 요리는 이미 다 탄 지 오래였다. 결국, 모두 버리고 말았다. 탄 냄새를 맡은 아들 진성이 밖으로 나오더니 영애를 다그쳤다. 하마터면 불이 날 수도 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까지만 말을 했다.
영애는 다음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7시가 되자 일어나서 화장하기 시작했다. 창준은 영애가 틀어놓은 TV 소리에 잠깐 잠에서 깼다. 이상하게 영애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늘 어디가?”
영애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창준을 더 이상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출근해야지”
“오늘 토요일이야 진성 엄마.”
“아! 그러네! 내 정신 좀 봐. 요새 왜 이러지?”
“건망증 아니야? 혹시 모르니까 병원 가보는 거 어때?”
“그런가.”
“오늘 한 번 가 봐.”
“알았어.”
창준의 권유로 영애는 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집 밖을 나서고 차를 탈 때 차 열쇠를 놓고 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차 키를 가지러 집에 갔다가 나왔다. 병원에 도착하고 접수를 한 후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자신의 차례가 오자 증상을 설명해주었다. 의사는 한 번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말했고 모든 검사를 끝내자 다시 진료실에서 의사가 말했다.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입니다. 약을 먹으면 최대한 늦출 수는 있을 겁니다.”
“알츠하이머요?”
“네.”
영애는 충격적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니. 영애는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기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아니면 무너질 가정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치킨과 맥주를 시켰고 먹기 시작했다. 원래랑 같은 날이었으면 맥주 두 캔 정도에서 멈추었을 것이지만, 그날은 달랐다. 옆에서 본 창준은 소주를 마셨다. 계속 마시는 영애의 모습에 무언가를 느낀 창준이 말했다.
“오늘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내버려 둬 오늘은 마시고 싶으니까.”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일 없었어.”
창준의 걱정되는 소리에도 영애는 맥주를 계속 마셨다. 그러다 만취 직전의 상태가 되었을 때 창준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고 일 좀 구하면 안 돼?”
“갑자기 왜 그래.”
영애는 그런 창준의 모습에 질렸다.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갔다. 영애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언제까지 일할 수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럴 때 창준이 그 자리를 대신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창준은 아무것도 모른 채 거실에서 남은 치킨에 소주를 마실 뿐이었다.
월요일이 되고 영애는 자신의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는 것도 모른 채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진성이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고 그제야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학교에 근무하러 갔다.
오늘따라 다행인 것은 신입사원에게 누가 충고라도 했는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기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구에게도 의존하려는 모습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영애는 일을 맡겼다. 모든 직원이 안심하고 근무를 했다. 5시가 되고 모두가 퇴근할 시간에 영애도 자리에서 일어나 퇴근 준비를 했다. 학교 밖을 나오고 차에 탔다. 그런데 그 순간 맨날 가던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로 차에서 20분 동안 생각을 했지만, 끝까지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내비게이션을 켜서 주소를 검색한 다음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영애는 집에 도착하기가 조금 꺼림칙했다. 집에 가서는 원래 이런 생활이 언제 무너질 지라는 걱정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영애는 집에 들어오고 자신의 방에서 거울이 있는 탁자 앞에 앉아 고민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말이다.
영애는 그렇게 고민을 하다 결국, 창준에게 이 일을 얘기하기로 했다. 진성은 방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지 목소리와 게임 소리가 문밖에서도 조금 들렸다. 진성에게는 아직 알리기엔 너무 이른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애는 창준을 자신의 방으로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리고 얘기했다.
“사실 말할 거 있어.”
“왜? 뭔데?”
“저번에 병원 갔을 때.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 거짓말이었어.”
“그러면 뭔데? 심각한 거야?”
“어. 심각한 거야. 나 알츠하이머 판정받았어.”
“뭐라고?”
창준은 그 말을 듣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지금 영애에게 필요한 게 공감인지 아니면 이해인지 계산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중 영애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제발 일 좀 구하면 안 돼? 나도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판에 집안에 아무도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
창준은 영애에게 져 줄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영애의 돈을 믿으면서 생활한 게 전부였다. 그렇기에 영애의 이런 고백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러한 충격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알았어. 일 구해볼게.”
영애는 창준과 얘기를 한 후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눕자 천장이 보였다. 층높이가 낮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것처럼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평생 이러한 벌을 받을 만큼 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성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영애의 방을 노크하고 문을 열고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
영애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네가 나이가 몇 개인데 그 정도도 알아서 못 챙겨 먹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영애는 그대로 이불을 싸매고 창준의 반대편으로 드러누웠다. 그리고 화장도 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다행히 다음 날은 휴일이었기에 영애는 일어나자마자 화장을 지우고 소파에 앉았다. 뉴스를 틀고 TV를 정신없이 바라봤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면서 갑자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황한 영애는 화장실로 들어가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고 변기에 앉아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10분 이상 동안 그런 증세가 보이자 스스로 의심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이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20분이 지나자 조금 진정이 되었고 다시 밖으로 나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약을 먹고 뉴스를 봤다.
진성은 영애가 일어난 4시간 후인 정각 12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토요일인데도 산책하러 간다고 영애에게 말했다. 영애는 진성의 외출을 별 것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진성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바로 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앓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가족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취업하지 않는 핑계로 치부되지 않을까 봐서였다. 진성은 몰래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진료실로 들어가자 의사는 언제나처럼 요새 상태를 물었다. 진성은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맞는 약을 찾는 중이었다. 자신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고 의사는 그 말을 듣고 다른 약을 하나 더 추가해주었다.
병원은 진성의 집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그 후 버스로 추가로 이동해야 했기에 왕복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시간이 맞지 않는 날에는 3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약을 받고 집에 갔다. 약 봉투를 가끔 청소하러 방에 들어오는 영애의 눈에 보이지 않게 침대 안쪽 구석에 넣었다. 진성은 저번 주에 심리검사를 받았다. 용돈을 받는 처지에서 심리검사는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들었다. 그래서 돈을 빌려야 했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돈을 마련했다. 용돈을 받으면 갚는다고 말했다.
영애와 창준은 이런 진성의 상태를 꿈에도 모르고 지냈다. 하지만 진성이 요새 잘 웃지도 않고 무표정인 모습을 보고 웃어 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암막 커튼을 쳐서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방 안의 환경을 보고 커튼을 치우라고 한 적도 있다.
창준은 영애가 자신에게 알츠하이머라는 것을 털어놓자 그날부터 바뀌자고 마음을 먹었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정신과 센터를 방문해서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자 상태가 나아졌고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굴착기 기사로 일했던 것이 도움이 되어 일자리는 금방 구해졌다. 심지어 지금은 여름인 6월이었다. 해가 오래 떠 있는 계절이었다. 창준은 일당을 얼마나 주는지 곳곳마다 비교했고 그중 제일 높을 일당을 주는 곳에 가서 일했다. 수입은 적지 않고 꽤 많았다. 공사가 판을 치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맞는 날에는 하루에 두 번을 뛰기도 했다. 영애는 그런 창준을 보고 안심했다. 이제 술에는 손도 대지 않는 모습에 영애는 마음을 조금 편하게 두어도 됐다. 이런 평화가 오랫동안 지속할 거라고 영애는 믿었다.
하지만 낱낱이 취업에 실패하는 진성의 마음의 병은 오랫동안 유지됐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즉, 자신을 실패자라고 낙인찍었다.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의사는 더는 외래진료가 의미가 없을 거로 생각했는지 입원을 권유했다. 결국,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병원을 가기 전날 진성은 창준과 영애를 부르고 말했다.
“나 병원에서 입원 판정받았어.”
영애는 정신 쪽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투로 말했다.
“어디가 아픈데? 입원하면 호전된대?”
“정신병이야 의사가 2주 정도만 입원해보는 게 좋겠데.”
“진성아 지금 엄마는 이해가 안 가 갑자기 정신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진성은 이유를 설명하고 왜 이렇게 됐는지 거의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상태고 지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창준과 영애는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자식이 병에 걸린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는지 내일 같이 병원을 가서 이야기 해보자고 했다.
영애는 다시 머리가 아팠다. 자신도 챙기기 힘든 와중에 진성이 정신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창준도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마음속 한쪽에는 걱정스러움이 몰려왔다. 창준은 해가 있는 시간까지 일했다. 당시에는 여름이었기에 거의 8시가 되어서야 해가 졌다. 창준도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영애 혼자서 가기로 했다. 의사는 현재 진성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고 말하며 지금 약을 여러 가지를 써봤으나 치료가 되는지 미지수라며 더 나은 진료를 위해서는 입원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입원하는 동안 동의서를 작성하고 폐쇄 병동으로 진성은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철로 된 물건을 전부 반입할 수 없었다. 영애가 보낼 수 있는 물품이라고는 간식거리와 플라스틱 텀블러 그리고 책과 샤워할 때만 쓸 수 있는 전기면도기였다. 진성은 평소에 독서를 즐기는 편이었기에 병동에서 심심한 날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에 대해 매우 회의적으로 느꼈다. 사회적 패배자, 사회 부적응자인 사람들만 갇혀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애는 진성이 걱정되어 하루에 전화를 두 번 정도 걸라고 병동에 들어가기 전 말했다. 하루라도 전화를 거르는 날이 오면 병원에 전화해서 연락했다. 그렇게 2주가 지나고 진성은 퇴원했다. 앞으로는 외래만 와도 될 것 같다며 말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라고 했다.
그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진성은 취업에 성공하며 상태가 거의 완쾌된 수준이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애의 상황은 극도로 나빠졌다. 건망증은 당연히 기본이었고 정신상태가 애처럼 돌아가는 섬망 증세가 나타났다. 즉,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진성과 윤미가 알게 되고 창준에게 영애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했다. 그리고 요새 요양원은 예전과 다르다고 말했지만, 창준은 요양원으로 보내는 것이 진짜 내버려 두는 거로 생각했다. 요양원에 보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영애를 돌보기 위해 창준은 이미 일을 그만둔 지 2년이 되었고 윤미와 진성에게 용돈을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자식과 아버지가 엄마, 아내를 두고 요양원에 모실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창준이 돌볼지 대립하던 그때 진성이 말했다.
“아버지도 요새 건강 안 좋아지실 나이잖아요! 언제까지 엄마 모시고 있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인마? 어쨌든 요양원은 안돼! 그렇게 알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단 말은 다 거짓말처럼 창준의 생각은 확고했다.
어느 날이었다. 창준이 잠이 들고 중간에 일어났는데 옆에 영애가 없어진 상태이었다. 창준은 부랴부랴 옷을 입고 거리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아침 6시였다. 큰소리로 영애를 부르면서 찾았지만, 영애는 좀처럼 나타나지를 않았다. 창준은 혹시라도 파출소에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근처를 좀 더 둘러보고 파출소로 빠르게 뛰어갔다. 가보니 파출소 안에 있는 의자에 영애가 앉아있었다. 영애는 진성이와 윤미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창준은 그 자리에서 영애의 손을 잡고 한동안 울었다. 그리고 경찰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다음 날 창준은 영애에게 이름, 주소, 창준의 핸드폰 번호가 적힌 목걸이를 하나 선물해 주었고 절대 빼지 말라고 했다. 영애는 왜냐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창준의 대답은 무조건 빼지 말라는 것이 전부였다.
이번 주말에는 진성과 윤미가 시간이 둘 다 여유가 있어 집으로 간다고 창준에게 말해놓았다. 창준이 영애를 보며 말했다.
“오늘 우리 아들, 딸 와.”
영애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아이같이 굴며 말했다.
“진성이? 윤미? 와?”
“응. 그래 둘 다 와.”
곧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진성과 윤미가 들어왔다. 둘은 들어오자마자 거실 소파에 앉았다. 영애는 창준의 옆에 앉았다. 침묵만이 조용히 이어졌다. 그러다가 진성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아빠 요양원에 그렇게 보내기 싫으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병원은 어때요?”
“그게 그거 아니냐?”
“병원에 같이 있으시면 되잖아요.”
“지금 여기 집에 같이 있는 거랑 무슨 차이라고 입원을 해.”
창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윤미가 진성의 편에 서며 말했지만, 창준은 이미 귀를 막고 아무것도 듣지 않는 상태였다. 진성과 윤미가 말을 하다가 답답했는지 이만 간다고 하자 영애가 진성의 옷자락을 잡더니 말했다.
“밥 먹고 가. 맛있는 된장찌개 해놨어.”
둘은 져 주듯이 부엌 식탁에 앉았다. 영애는 장갑을 끼지 않고 된장찌개를 옮기려다 손이 데었다. 제일 먼저 창준이 달려가 영애의 손을 찬물에 담갔다. 그리고 자신이 장갑을 끼고 식탁에 된장찌개를 옮겼다.
“밥은 너희가 알아서 퍼서 먹어라. 전기밥솥에 있다.”
“알았어요.”
진성과 윤미는 밥을 퍼서 수저를 가지고 식탁에 앉았다. 된장찌개를 한 입 맛보는 순간 자동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무 짜기 때문이었다. 영애가 소금을 많이 넣은 것이었다. 이런 게 일상이었던 창준은 자연스럽게 뜨거운 물을 된장찌개에 넣었다. 간이 얼추 맞게 되었고 온 가족 넷이서 오랜만에 밥을 같이 먹었다. 분위기는 아까보다는 조금 더 따뜻해졌다.
창준은 진성과 윤미에게 밥을 다 먹었으면 빨리 가라고 눈치를 주었다. 안 그래도 진성과 윤미는 빨리 갈 예정이었다. 그 이유는 말을 듣지 않는 답답한 창준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 둘의 눈에는 창준이 약간 꼰대끼가 있는 아버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창준은 자식들이 모두 간 후 약을 꺼내 영애에게 먹이려고 했다. 하지만 영애는 약이 쓰다며 맛이 없다고 약 먹기를 거부했다. 결국, 창준은 약을 갈아서 오렌지 주스에 넣은 다음 영애에게 먹였다. 이렇게 힘들게 약을 먹이지만, 이제 와서 이게 무슨 소용인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났다. 영애는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몸이 쇠약해진 것도 있으며 낮과 밤도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폐쇄 병동이 아닌 보호자와 함께하는 일반 병실로 입원하기로 했다. 그 옆에는 창준이 지켜주기로 했다. 영애는 어느 순간부터 창준을 진성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창준은 자신에게 진성이라고 부를 때마다 앞에서는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뒤에서는 혼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진짜 진성이 오면 영애는 진성이를 보며 누구냐고 물었다. 자신의 아들까지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윤미만은 제대로 알아보았다. 영애가 창준과 진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의사도 잘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진성은 그런 어머니를 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일반 입원실에 윤미만을 남겨두고 창준과 진성이 밖으로 나왔다. 진성이 담배를 꺼내 들자 창준이 말했다.
“너 담배 끊은거 아니었어?”
“다시 피게 됐어.”
“왜?”
“힘들어서.”
진성과 창준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웠다. 내뱉는 담배 연기가 뿌옇게 앞을 가렸다. 진성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가로등과 병원의 불빛 때문에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진성이 창준에게 말했다.
“아빠는 요새 괜찮아?”
“괜찮아야지. 괜찮아야지. 근데 그게 맘대로 안되네.”
진성은 창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가장의 무게감이라는 것을 느꼈다. 서로 담배를 다 피우고 꽁초를 발로 짓밟아 끈 뒤에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윤미와 영애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창준은 윤미와 진성에게 고생했다고 말을 하고 이제는 그만 돌아가 보라고 했다. 그런데 윤미가 영애의 잡은 손을 빼자 다시 윤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디가. 나 두고 가지 마.”
그러자 윤미가 말했다.
“엄마. 나 좀 있으면 다시 올 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진짜지?”
“응. 진짜야 약속.”
윤미는 영애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을 찍었다. 진성은 자기를 혹시 알아볼까 해서 영애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병원을 나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알아보지 못했다. 왜 자신보고 엄마냐고 질문만 되돌아왔다. 윤미와 진성은 밖으로 나갔다. 그때 윤미가 담배 하나를 꺼내 들어 피우기 시작했다. 진성은 언제부터 피웠는지 또 왜 피우게 됐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닫았다. 진성도 담배를 하나 꺼내 피웠다.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무언가 연결해주는 선이 있는 것 같았다.
영애는 생활방식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을 자야 하는데 뇌와 몸이 아침과 저녁을 구분하지 못하니 생활방식도 그에 따라 뒤죽박죽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옆에서 간호하는 창준이 꽤 고생했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2시간 밖에 못 자는 날도 있었고 심하면 아예 잠도 못 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화장실도 같이 가주고 밥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주어야 했다. 창준은 어느새 점점 지쳐갔다. 그러나 영애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은 삶을 같이 오래 머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창준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창준이 영애의 침대 밑 아래 칸에서 잠이 들다 일어났다. 언제나처럼 영애가 있는지 확인을 하는 순간 영애가 보이지 않았다. 창준은 당장 병원 내부를 이 잡듯이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릎을 조금 접히고 그 위에 팔을 올려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혹시 보호자 되세요?”
창준은 영애 이름도 들어가지 않고 상황설명도 별로 없는 말이었지만, 영애와 관련된 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창준이 말했다.
“네. 혹시 거기 어디인가요?”
“병원 앞 편의점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창준은 그 전화가 한 통 끝나자마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가 널려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영애가 터진 과자 봉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계산대에서 화가 나 있는 사장이 보였다. 창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것을 보자 보호자임을 직감한 사장은 말했다.
“지금 상황 보여요?”
창준은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터진 과자 가격을 변상해 준다고 굽신거렸다. 하지만 사장의 말 한마디가 창준을 화나게 했다.
“다음부터는 환자 관리 똑바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관리요? 무슨 물건입니까?”
“화를 내야 하는 건 제 입장 아닌가요? 왜 화를 당신이 내세요?”
그렇게 실랑이가 오고 가며 옆에 있는 영애는 이 상황이 무서워 울면서 창준에게 말했다.
“화내지 마. 내가 미안해.”
영애의 그 옴짝달싹하는 표정을 보고 먼저 영애의 안정이 먼저라 생각한 창준은 영애를 데리고 계산대에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놓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자신도 안정을 좀 취하자 영애를 큰 사고 없이 찾았다는 생각이 들자 다리에 긴장이 풀려서 근처 난간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시 입원실로 향했고 영애를 눕혔다. 영애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보여 물티슈 한 장을 뽑아서 얼굴을 닦아주었다. 곧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창준은 그런 영애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었다. 마치 몸만 큰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또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영애는 스스로 걷는 것도 버거워졌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좀처럼 밖을 향해 나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창준은 영애를 휠체어에 태운 후 산책하러 종종 나갔다. 병원 밖의 풍경은 언제나 똑같았다. 하지만 영애의 기억 수준은 점점 퇴화하였고 기억을 못 하는 일이 많아져 마치 새로운 공간을 가는 것처럼 좋아했다. 창준은 그런 영애를 보면서 매일 말했다.
“산책 나오니까 좋지?”
영애의 대답은 두 가지로 갈렸다. 물론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을 때 말이다. 어떤 날에는 매일매일 나가도 좋을 것 같다 했고 어느 날에는 언제까지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대답을 했다. 창준은 언제까지 나갈 수 있겠냐고 하는 영애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저 눈물을 참고 다음에 또 나오면 된다고 답을 해줄 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창준은 영애에게 해준 이벤트 횟수가 적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병에 걸렸을 때는 더더욱 말이다. 그 흔한 꽃 선물도 별로 해주지 못했다. 마침 그날은 병실에 진성이 왔다. 창준은 길거리를 걸었다. 걸어가는 도중 한 꽃집이 보였고 이벤트가 생각난 창준은 그대로 꽃집에 들어갔다. 여러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사장이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고 창준은 아내에게 줄 꽃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무슨 꽃이 어떤 꽃말을 가지고 어떤 꽃이 선물에 좋은지 몰랐던 창준은 사장에게 그저 5만 원을 건네며 금액에 맞춰 꽃다발을 장식해 달라고 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꽃다발은 완성이 됐다. 창준은 수고하라는 말 한마디를 하고 꽃집을 나왔다. 자신이 받은 꽃의 향기를 맡았다. 복합적인 향기가 창준의 마음을 조금 뛰게 했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진성이 창준에게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영애는 진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창준을 진성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자기 아들이 언제 오느냐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었다. 창준은 금방 간다고 말했고 병원을 향해 뛰었다. 그런 와중에도 꽃다발이 망가지지 않도록 품에 꼭 안고 조심조심 다루었다.
병실에 도착하자 떼를 쓰고 있는 영애가 보였다. 창준은 그런 영애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그러자 영애가 웃음을 지으면서 좋아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알츠하이머에게 걸리기 전에도 꽃을 자주 건네지 못한 것이 후회되면서도 지금이라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마음도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창준은 피로가 몰려왔다. 아무래도 영애의 생활방식이 뒤죽박죽 해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어서였다. 창준은 알아보지 못하는 진성을 보내고 윤미를 불렀다. 자신이 하루만 집에서 잘 테니 오늘은 윤미가 영애 옆에 있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윤미 또한 창준의 고생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다고 하겠다고 말을 했다. 윤미 옆에 있는 영애는 창준과 진성이 돌볼 때 보다 훨씬 안정되어있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윤미 옆에 있으면 영애는 잠도 잘 자고 약도 비교적 잘 삼키었다. 아마도 윤미만큼은 제대로 알아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창준은 집에서 하루 동안 숙면했다. 오랫동안 쌓인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윤미에게 전화했고 영애의 안부를 물은 뒤에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여유를 느끼는 것이 언젠가 싶었다. 아침을 먹으러 냉장고를 열었을 때는 집이 얼마나 방치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부분 반찬은 쉬어있었다. 온전하게 먹을 건 참치통조림 하나와 김치밖에 없었다. 그 두 개를 꺼내서 반찬 삼아 밥을 먹고 다시 병실로 향했다.
창준은 윤미를 보자마자 영애의 상태를 물었다. 윤미는 약도 잘 먹고 잠도 잘 잔다고 했다. 윤미는 창준에게 말을 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나갔다. 윤미가 안 보일 때쯤 영애가 일어나서 말했다.
“윤미 어디 갔어?”
창준은 그런 영애를 안쓰럽고 속상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윤미 갔어. 다음에 또 올 거야.”
“언제 오는데?”
“금방 올 거야 너무 찾으면 윤미 부담스러워서 안 온다.”
“알았어. 나 기다리는 거 잘해 예전에 진성 아빠 퇴근할 때까지 혼자 집에 잘 있었어.”
영애의 저런 말에 창준은 평소에 자신이 무관심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는 어느 정도의 죄책감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자신에 대해 의기소침해진 창준은 영애를 재우고 옆의 자리에서 자신도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마치 밖의 하늘처럼 파랬다. 왜 파란지 생각을 해보았다. 자주 나가지 못하는 환자들을 배려한 것인지 여러 잡생각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도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었고 창준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오늘도 여전히 어제와 같은 나날이 반복되었다. 하나만 틀린 것을 정리하자면 윤미가 없는 것뿐이었다. 창준은 영애에게 약을 먹이고 같이 화장실을 가주고 마지막으로 휠체어를 끌고 산책하러 나갔다. 휠체어에 탄 영애는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영애의 팔과 다리는 점점 앙상해져만 갔다. 영애는 최근 들어 식사도 잘 하지 않았다. 창준이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영애의 입에 거의 강제로 집어넣는 수준이 되어야만 식사를 했다.
영애의 감정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창준은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것밖에 없다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옛날을 그리워했다. 조금 더 잘해 줄 걸이라는 생각밖에 맴돌지 않았다.
영애의 몸은 더 쇠약해져 갔다.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말을 하는 법을 까먹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눈빛은 캥해지고 아무 감정조차 들지 않아 보였다. 그런 영애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밖에는 눈이 오고 있어 두꺼운 옷을 입혔다. 창준이 말했다.
“진성 엄마 아니, 여보 눈이 내리고 있어. 옛날에 여보가 좋다고 했던 눈 말이야. 어때?”
“....”
“지금 일어나 있는 거지?”
“....”
영애의 눈은 감겨있었다. 몸은 점점 차가워지기만 했다. 창준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여보! 여보!”
영애는 눈을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