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 같다는 말을 주위에서 들었다. 그러나 나의 세상은 그러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사회는 경쟁이라며 그중에서 나는 특별히 남들과 다르게 앞서가야 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는 심하지 않았다. 그저 아들에게 향하는 충고나 조언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성장할수록 압박은 심해졌다. 초등학교가 되어서 여러 학원에 다녔다. 피아노, 발레, 미술, 보습 학원 등을 말이다. 학원에 다닌 그것부터가 문제였다. 어머니는 나의 이런 바쁜 생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만 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평범하게 그저 중간만 가는 생활은 실패자라고 너는 모든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그런 존재니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알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에서 나에게 작은 어린이 대회에 나가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참가한다고 말했고 집안에 이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는 웃으며 잘해보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회가 점점 다가오며 연습량을 늘렸고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 대회는 점점 코앞에 다가왔다. 학원에서 연습하고 있던 도중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과자 몇 봉지와 음료수를 사 왔고 선생님을 보며 얘기했다.
“혹시 다른 애들도 대회에 나가는 애들이 있나요?”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요! 도현이 말고도 몇 명 더 나가요.”
어머니의 표정은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분노는 아니었다. 약간의 슬픔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과자와 음료수를 먹는 데 집중했다.
대회 당일이 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로 공연장까지 태워주었다. 그리고 관중석에 앉았다. 나는 공연 4번째 순서였다. 다른 지역에서도 온 처음 보는 아이들도 보였다. 다들 하나같이 긴장하는 모습이었지만, 3번째 순서였던 아이는 하나도 긴장해 보이지 않았다. 내 순서가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랐지만, 순서는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3번째 아이의 순서가 다가왔다. 그래서 그 아이의 공연을 쳐다봤다. 완벽한 음정과 속도로 아이 같지 않은 실력을 발휘했다. 대기실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다.
“역시 피아니스트 유망주는 다르긴 달라.”
그 아이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은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쳤다. 더 긴장되었고 저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심호흡했고 내 차례가 되어서 공연장으로 나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어려운 부분에 다가오자 음을 하나 잘못 맞추었다. 그 순간 몸이 얼어붙었고 정지한 상태로 10초가 흘렀다. 관중들이 하나같이 소리쳤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에 안정되어 연주를 다시 이어갔다. 비록 틀린 부분이 있었고 실수한 부분이 있었지만, 스스로 잘했다며 위안을 했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대기실에 찾아와 데려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 부모님은 오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이 이상함을 느꼈는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라고 말을 하자 그제야 어머니가 오셨다. 어머니의 표정은 저번에 학원에 왔을 때처럼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도현아 오늘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해도 그냥 흘려들어. 알겠지?”
나는 아버지가 여태까지 평소에 경쟁 그리고 승리를 얘기했기에 이번에도 그런 얘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보자마자 내 생각이 틀렸다. 아버지가 말했다.
“실망이다. 서도현. 네 앞으로 쓴 돈이 얼마인 줄 알아? 훨씬 잘 쳐도 모자랄 판에 실수까지 해? 아버지가 네가 실수했을 때 얼마나 창피했던 줄 알아? 쓸모없기는.”
평소 엄하신 성격은 알았지만, 이렇게 공격적이고 상처받을 만한 말을 할 줄을 몰랐다. 아직 초등학생이었기에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울자 어머니가 말했다.
“괜찮아. 아들. 오늘 잘했어. 응? 울지 마.”
그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발끈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그러니까 애가 더 저러는 거야 매일 감싸주지 말고 채찍질도 할 줄 알아야지.”
어머니는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 셋은 말없이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 이후로 예체능에 관해 학원에 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가 나에 대해 예체능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더더욱 공부에 집중해야 했다. 반에서 1등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교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어가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아.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야.”
그 상태로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는 더더욱 성적에 집착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언제나 거실에서 앉아 보여드려야 했다. 다행히도 1등을 놓치는 날이 여태까지는 없었기에 크게 긴장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문제는 생각보다 쉬웠다. 이번에도 당연히 1등이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성적이 나오는 날 성적표를 받은 그 날 무언가 잘못되었다. 국어 과목의 성적이 크게 낮았다. 이상함을 느꼈다. 곧바로 선생님에게 찾아가 무슨 부분이 틀렸냐고 말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도현아. 정말 안타깝지만, 이번에 밀려 쓴 것 같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실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버지에게도 잘만 말하면 큰일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버지에게 성적표를 보여드리면서 말했다.
“아버지 이번 국어 성적은…….”
아버지는 이마에 잔주름이 생기며 입꼬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상태로 말했다.
“국어 성적이 왜 이래!!”
놀랐다.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빨리 국어 성적에 대한 사정을 말해야 했다.
“이번에 밀려 쓴 거래요! 그래서 그래요. 제 실수였어요. 그래도 제 실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장난해!? 네 실력에 문제가 없다고? 이런 것 하나하나다 사소한 것도 실력이야! 방심한 거지 방심한 거야. 내가 평소에 네 엄마 말만 듣고 뭐라 안 하니까 이런 실수가 나온 거야. 벌이 필요하겠다.”
어머니는 황급히 아버지에게 말했다.
“실수라잖아요. 다음에는 이런 실수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참아요. 네?”
하지만, 아버지는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어머니의 말을 무시한 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손에 들려있는 것은 회초리였다. 아버지가 말했다.
“이리와.”
반항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에는 세뇌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내가 벌을 받을 만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아버지 앞에 서서 매를 맞았다. 맞을 때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신음을 참았다. 10대를 맞았을 때 회초리를 멈추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다음에는 더 늘어날 거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
그때부터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다툼은 심해졌다. 결국, 이혼하고 양육권은 불우하게도 아버지에게 양도됐다. 이때부터 나의 압박감이 커졌다. 그 매를 맞은 이후 그리고 이혼한 후로 내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먼저 어머니라는 나의 편이 없어졌다. 그리고 친구와 멀어졌다. 공부에만 전념하고 더욱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자, 모든 것이 하나하나 거슬렸다. 제일 친했던 친구도 나보고 약간 이상해졌다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친구를 잃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모님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학부모로 변해갔다. 그래서 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감을 살까 말이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무언가 달라지겠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중3으로 올라가자 아버지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다. 고등학교가 곧 앞이라며 그리고 명문고등학교와 일반 고등학교의 차이는 너무나도 다르다며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크게 강조했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학원을 믿지 못했다. 가서 놀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여 집 안에서만 공부하게 시켰다. 방안에는 CCTV를 설치했다. 핸드폰을 하면서 쉴 수도 잘 때를 빼고는 침대에 누울 수도 없었다.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미쳤으면 했다. 이 고통이 끝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학교 성적은 그때의 실수를 빼면 언제나 만점을 받았다. 하지만, 만점을 받아도 기쁘지 않았다. 그저 고통이 없다는 안도감만 들 뿐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학부모 상담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웃으며 당연히 가겠다고 얘기했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미소를 보는 것은 말이다. 왜 웃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를 알다가 싶다가도 모르겠다.
학부모 상담 당일이 되었다. 아버지는 퇴근하고 저녁 5시에 온다고 했다. 왜인지 모르게 초조했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나의 부족함을 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버지에게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수업이 하나하나 끝나고 5시가 되어가면서 시간이 흐르자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느껴지는 것뿐만 아니라,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이윽고 5시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정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차가 들어오는 것을 봤다. 주차하고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그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허리 숙여 인사를 한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교무실로 들어가자 선생님은 인사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노트북을 잠깐 두드리더니 말했다.
“도현이 성적이 정말 좋아요. 이 정도면 명문 고등학교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앞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아버지의 입에는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말했다.
“다행이네요.”
그때였다. 선생님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도현이가 숫기가 약간 없나 봐요.”
아버지가 미소를 중간에 멈추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도현이가 어디 부족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선생님은 당황한 듯 급하게 두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없어서요.”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다 나아지겠죠.”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겠죠?”
나도 그렇게 믿었다. 고등학교로 올라가면 나아질 거로 말이다. 그래서 그 하나만을 바라봤다. 내가 지원하려고 하는 학교는 기숙사가 있었고 실제로 집과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만 들어간다면 아버지의 그늘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다. 해방된다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면서 말이다.
드디어 고등학교 발표날이 다가왔다. 명문고등학교라고 제발 외치면서 학교 사이트에 들어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숨죽인 채 환호를 표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합격했어요!”
아버지는 별말 없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학교는 어떻게 다닐 거냐?”
당연하게 내가 말했다.
“당연히 기숙사 써야죠. 거리가 얼마인데요.”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더니 무언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설마 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하려는 순간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래. 그러는 편이 좋겠다.”
한 번 더 마음속에서 환호를 질렀다. 이제 지긋지긋한 CCTV가 설치된 방안에서의 숨 막히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드디어 친구들 그리고 자유로운 곳으로 해방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 날짜는 빨리 다가왔다. 벌써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생활은 평범했다. 그러나, 이런 평범조차도 평소의 나에게는 다른 일상이었다. 친구들과 얘기하고 밥을 먹고 점심시간에 축구도 하는 이런 생활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압박감도 느꼈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성적이 좋지 않거나 그러니까, 공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티끌이 아버지에게 걸리면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 말이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러니까, 한 달이 조금 지나자 선생님들은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마디씩 했다. 친구들은 가볍게 받아들이는 반해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가 생각났고 CCTV가 설치된 방안을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들과 담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공부에 집중했다. 시험 날짜가 다가왔다.
이윽고 시험이 시작됐다. 열심히 공부한 만큼 결과도 좋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좋아야만 했다.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들었다. 사전채점은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다음 시험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을까 봐 말이다. 친구들은 나에게 달려와 시험이 어떠냐고 물었지만, 그냥 다 똑같이 느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성적이 발표되는 날 성적이 발표되기 직전에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의아해하는 마음으로 교무실로 내려갔다. 그 자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벌써 위축되며 마음속에서는 간절함이라는 단어만이 소리쳤다. 어떻게 아버지가 오늘에 대해 알았는지는 두 번째였다.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멀리서 봐도 딱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성적표였다. 아버지의 표정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 성적표가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듯 그것을 쳐다볼 수 없었다. 아버지는 성적표를 응시하다가 선생님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이번 시험이 어려웠나 봐요?”
선생님은 이 상황을 파악했는지 아니면, 배려한 것인지 나를 한번 바라보고 눈치를 살핀 후 대답했다.
“이번 시험 아주 어려웠죠. 애들 평균 점수도 낮아요.”
그 순간 느꼈다. 이번 시험은 망했다고 말이다.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내게 성적표를 건넸다. 결과를 확인했다. 2등급이 무려 두 개나 있었다.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를 쳐다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하고 잠깐 얘기 좀 하게 나가줄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나보고 나가라고 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이 상상됐지만,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10분 정도 서 있자 아버지가 나오면서 말했다.
“짐 싸라 집으로 가자.”
그 말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악마 같았다. 하지만, 거역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니까 말이다. 아무런 변명 없이 내가 말했다.
“네.”
그 뒤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기숙사로 향했다. 하나씩 짐을 꾸리면서 눈물이 조금씩 고였다. 짐을 다 싸고 건물 아래로 내려가자 아버지가 차를 가져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 차에 짐을 다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앉는 순간 아버지가 말했다.
“넌 관리가 필요해. 보나 마나 아버지 없다고 친구들하고 놀기나 했겠지.”
엄청난 박탈감이었다. 거기서 말하고 싶었다. 노력했다고 친구들하고 조금 멀어지는 것 감수하면서 그랬다고 말이다.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뱉을 수 없었다.
집에 오자 박탈감은 더 심해졌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허망함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구들 아니, 다른 애들은 나보다 더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왜 높은 점수를 받냐고 화살은 아버지를 향해 날아가지 못하자 애들로 향했다. 사람이 미워졌다. 세상이 싫어졌다. 아버지는 방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기억나지? 전처럼 똑같이 관리할 거다.”
집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지워지는 것이다. 그저 집 안에 있는 물건 중 하나처럼 아버지에게 관리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통학은 아버지가 고용한 기사가 데려다주었다. 기사님은 무슨 지령을 받은 것인지 모르지만, 차 안에서조차도 공부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책을 펴서 읽는 척을 했다. 그러자 기사님은 그 광경을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점점 나와 말을 트였다.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였다. 그래서 학교 통학시간이 즐거웠다. 그동안은 감시하는 대상도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다. 그러나 이 일탈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통학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고 블랙박스를 봤다. 거기에는 고스란히 기사님과 대화한 내용이 들어있었고 곧이어 기사님을 해고하고 다른 기사를 고용했다. 다른 기사님은 정석 그 자체였다. 내가 말을 걸어도 무시했고 책을 손에 잡지 않으면 공부하라는 소리를 했다. 통학시간은 지옥의 연장선으로 바뀌었다.
곧이어 기말고사가 시행됐다. 이번 성적은 기필코 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혹시라도 아버지가 다시 기숙사로 보내줄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시험에 매달렸다. 간절했던 마음이 어딘가에 닿았던 것인지 모르지만, 성적은 모두 1등급을 맞았다. 아버지의 퇴근길을 기다린 적은 처음이었다. 퇴근한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성적표를 받고 소파에 앉았다. 아버지는 성적표를 유심히 봤다.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번 성적이 좋아요. 아버지 그러니까 다시 기숙사로…….”
아버지는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내 방식이 통하는구나 이럴 줄 알았다. 이대로만 해라.”
성적이 좋았던 것이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던 걸까. 기숙사로 다시 가고 싶다는 내 꿈이 너무 컸던 것일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쥐어짰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자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근데 틀린 부분이 있네? 왜 틀렸지?”
“죄송합니다.”
“미안하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아. 그만큼 결과로 답변해야지, 안 그래?”
“네. 아버지.”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틀린 문제를 풀었다. 정답까지 도출하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이걸 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 틀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쉬운 문제였는데 말이다.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이 되었다. 아버지는 방학이 되자마자 예습을 위해 과외 선생님을 고용했다. 과외 선생님의 나이는 28살로 어리셨다. 아버지가 출근하신 시간에 선생님과 같이 있었다. 매일 공부를 하고 같이 붙어있으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비록 같이 게임을 하거나 어디를 놀러 가지는 못했다. 아버지가 설치해둔 CCTV 때문에 말이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으나, 저번에 있던 기사님의 일을 기억했다. 이제는 유일한 내 주변의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로 거리감을 유지했다.
방학은 점점 끝나가고 선생님은 잃고 싶지 않았다. 큰마음을 먹고 아버지에게 얘기해야 했다. 지금 선생님과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허락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가 얘기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저녁 식사에서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신문을 보던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앞에 서서 입을 뗐다.
“아버지 저 선생님하고 개학해도 같이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라. 네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조심해라.”
저 말의 뜻은 나의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 아버지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성적이 좋다면 혹시라도 다른 요구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개학이 다가오고 여전히 친구가 없었다. 유일한 만남의 사람이라고는 과외 선생님이 전부였다. 내적 친밀감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 공부를 하면서 선생님이 말했다.
“도현아 선생님은 너무 딱딱하지 않아? 앞으로 그냥 누나라고 불러.”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쯤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말했다.
“알았어요. 누나.”
“생각보다 잘 부르네.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살짝 웃었다. 나도 겉으로 더 표현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선을 넘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시험을 잘 본다면 아버지께 말씀드려 누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물론 누나를 좋아한다거나 이런 것은 아니었다. 내 주변에 남은 사람 중 제일 친하고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험은 빠르게 다가왔다. 시험 문제는 다 아는 문제였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사전채점을 했다. 틀린 빗금 표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누나가 왔다. 책상에 앉자마자 사전채점표를 같이 봤다. 밖에 아버지가 있음에도 누나는 소리 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면서 내가 말했다.
“누나. 조용히 해요. 밖에서 아버지가 듣겠어요.”
“너무 좋아서 그래.”
누나는 아버지가 평소에 엄격하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했다.
“이번에 성적 좋잖아. 아버지한테 먼저 말씀드리고 어디 놀러 갈래?”
하지만, 예전에 중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다. 사전채점 보다 밀려 써버린 것이 있어서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것을 말이다. 그 기억이 생각이 나자 내가 말했다.
“성적표 나오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같이 놀러 가요. 누나.”
이윽고 성적표가 나오는 날 크게 실망하고 자신을 혐오했다. 이번에도 또 밀린 것이었다. 성적표를 가지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이 마치 지옥문에 입장하는 듯했다. 기사님이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집에 가기 싫어 일부로 길을 잘못 들고 멀리 돌아가고 이것저것 해봤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집 앞이었다. 문 앞에 다다르자 생각했다. 차라리 건물에서 뛰어내릴까 아니면 가출해버릴까 그러나, 다 소용없는 생각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퇴근하신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자동으로 앞에 무릎을 꿇고 성적표를 건넸다. 아버지는 성적표를 확인하자마자 말했다.
“엎드려.”
그대로 엎드렸다. 아버지는 일어나더니 거실에 있는 골프채를 손에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내려치며 말했다.
“이번에도! 성적이! 왜 이래!”
골프채로 처음 맞아봤다. 너무 아팠다. 미치도록 아팠다. 두 대까지는 참을 만했지만, 세 대부터는 참을 수 없었다.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면서 말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버지. 이번 한 번 만 봐주세요. 제발요.”
하지만, 아버지는 견고했다. 자신이 쌓은 성을 절대로 무너뜨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엎드려! 엎드려! 이게 다 이번에 붙인 과외 선생님 때문이지? 네가 괜히 다른 감정 품었다가 공부에 집중 못 한 거 아니야!”
그런 마음을 품은 적도 품을 시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다면 그 말이 전부 맞았다. 내가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아버지.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한 번 만 용서해주세요.”
“과외 선생님은 이제 볼 일 없을 거다. 앞으로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할 거야. 네 성적이 오르든 줄어들든 말이다. 엎드려.”
“아버지! 그건 안돼요. 제발요.”
아버지는 허탈하게 딱 한 번 웃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웃음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 웃음에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다시 엎드려서 맞았다.
얼마나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순간 필름이라도 끊긴 것처럼 말이다. 엉덩이는 무척 쓰렸다. 그러나, 더 쓰린 것은 마음이었다. 더욱 슬픈 것은 이 와중에도 의자 위에 앉아 책상에 손을 두고 연필을 잡은 나였다. 흘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공부는 당연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어떻게든 해야 했다. 더욱 엄한 벌이 내려지기 전에 말이다. 누나는 볼 수 없었다. 그 말은 나의 주변 인물은 모조리 다 없어졌다는 말이다. 친구도, 지인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도 말이다.
내 정신 상태는 점점 이상해져 갔다. 의자 위에 앉아도 멍청히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가끔은 손발이 떨리기도 했다. 편두통은 늘 따라왔으며 가끔은 숨이 헐떡거렸다. 하지만,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를 만족시켜야 목에 조인 끈이 조금은 풀어질 수 있다는 희망만을 품어야 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결국, 자해를 시작했다.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면 살아있다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집중력이 올라갔다. 내 팔뚝에는 그렇게 흉터가 한둘씩 생겨났다. 성적은 오르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기분도 좋아졌다. 웃는 아버지를 보며 이번에도 다행히 잘 넘어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여름이 오자 팔뚝에 있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토시를 매일 착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는 도중에 윗옷을 벗으며 실수로 토시가 벗겨졌다. 순간 빠르게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아무도 안 봤겠지라는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도현아 잠깐 토시 좀 걷어볼까?”
선생님의 말은 온화하고 따뜻했지만, 정신 상태가 망가져 버린 나는 공격적으로 말했다.
“왜요?”
선생님은 당황해하셨지만, 순간뿐이었다. 다시 침착하게 말했다.
“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어. 네 팔뚝에 흉터가 많다고.”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관심이 절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 말 없이 토시를 벗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놀라며 내 팔을 어루만져주었다. 같이 병원도 가서 이상은 없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연락한다고 했다. 그때 오묘한 기분이 몸을 맴돌았다. 혹시 아버지도 나에게 학업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을까 말이다. 옆에서 아버지와 선생님의 통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의 말투는 격양되지도 침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알겠다고 하고 데리러 온다고 했을 뿐이다.
곧이어 아버지가 병원 앞으로 왔고 조수석에 내가 탔다.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집에 도착했다. 자동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왜 그랬냐.”
거짓말하지 않고 진정성으로 말해준다면 아버지가 나를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엄격하다지만, 그래도 자식인데 말이다. 내가 말했다.
“제가 왜 그랬냐면 힘들어서 그랬어요. 아무 기댈 곳이 없어서 살고 싶어서 그랬어요.”
“최근에 성적이 오른 게 그것 때문이냐?”
“연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앞으로는 자제해라.”
그 말이 끝이었다.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제하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한번 크게 실망했다. 내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깊은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내가 뭘 해도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타인인 아버지를 위한 것인지 분간도 가지 않았다. 나는 뭘 위해 사는지 찾고 싶었다. 그러나, 찾을 틈도 찾을 시간도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허탈하게 앉아있자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자해했다. 날이 갈수록 자해는 심해졌다. 팔뚝에서 손목으로 번져있었다. 손목으로 번지게 되자 흘리는 피양도 늘어갔다. 어지러움이 자주 왔고 이는 공부에도 직격타였다. 심지어 예전에 느꼈던 증상도 다시 찾아왔다.
이번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집에 가면 맞을 생각보다 나를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더 무서웠다. 그것은 공포였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성적표를 건넸다. 아버지가 말했다.
“자해 그만뒀냐?”
말만 들으면 걱정하는 것 같지만, 말투는 그렇지 않았다. 분노와 혐오가 담겨있었다. 내가 말했다.
“아니요.”
“근데 성적이 왜 이래?”
자해를 그저 성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아버지가 역겨웠다. 그러나 참았다. 아버지니까 말이다. 그 말을 끝으로 엎드려 골프채로 맞았다. 이번에는 체벌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얼마만큼 맞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이대로 있다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히 일어났고 아버지의 골프채를 뺏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뭐 하는 거야! 이리 안 내놔!”
아무 말 없이 미친 듯이 눈을 노려봤다. 아버지는 뒷걸음치면서 말했다.
“뭐…. 뭐 하자는 거야! 이러다 치겠다? 네가 감히 아버지한테 반항해!”
말투는 격양되어 있었지만, 눈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뒷걸음치는 아버지를 향해 골프채를 그대로 들은 채로 다가갔다. 곧이어 아버지는 현관문 바로 뒤까지 도달했고 그대로 도망치는 듯이 나가려 했다. 그때 골프채로 아버지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버지는 바로 고꾸라졌고 참고 있는 감정은 조절되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대로 계속 구타했다. 아버지는 뭐라고 말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아버지는 바닥에 붙어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구타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헐떡거리면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움직임이 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