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7살 때의 일이었다. 그때 그것을 훔쳐보았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대로 그곳은 기피 해야 하는 장소였다.
나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형의 이름은 김신 나는 김건이었다. 아버지는 작다고 말하기에는 크고 크다고 말하기에는 작은 중견 사업을 하신다. 사업은 일이 잘 풀렸고 우리는 유복한 생활 아래서 지낼 수 있었다. 어머니는 가정주부로 우리를 애틋하게 보살피신다. 금전적인 지원과 사랑만큼은 남들보다 더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금기시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 중의 하나가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면 신발장이 있고 바로 거실이 있다. 그 바로 왼쪽에 내 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신이 형 방이 있다. 신발장에서 바로 쭉 직진하면 화장실이 있고 그 오른쪽에 아버지 방 왼쪽에는 주방이 있고 주방 옆에는 어머니 방이 있다. 어머니 방에 작은 방이 하나 더 딸려 있는데 그곳은 잘은 알지 못하지만, 두 분의 대화를 들어보았을 때 서재인 것 같았다. 부모님은 그 서재를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그곳에 개인적인 생활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서재에 예전에 신이 형이 발을 잠깐 디뎠을 때 크게 혼난 적이 있어 그곳은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신이 형과는 다른 학교에 다니었다.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지만, 사교성이 조금 부족한 형은 명문 중학교에 갔고 그저 그런 성적을 유지한 나는 일반 중학교에 다니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가 끝나면 반드시 같이 중간지점에서 만났고 그대로 하교를 해 집으로 들어갔다. 보통 집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활동은 두 개로 나뉘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했고 신이 형은 공부했다. 둘 다 유전적인 영향으로 머리는 좋은 편에 속했지만, 아무래도 형은 명문 중학교인 만큼 진도와 공부량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김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몇 초 더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몇 초 차이지만, 일찍 태어난 것은 맞으니 형이라고 부르는 게 바르다고 교육받은 것이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우리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저녁을 차리셨다. 보통 집에 오면 5시가 조금 넘어서 바로 저녁을 먹었다. 나는 형과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딱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부모님은 공부를 잘하는 형과 나를 비교도 하지 않았고 공부를 하라고 얘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에게는 조금 달랐다. 자유롭게 방목하는 나와 달리 형에게는 학업에 있어서 큰 관심을 보였다. 형의 성적과 학교 내에서의 비교과 생활에 말이다.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까지 게임을 하다가 현관문 소리가 들리자 나와 형은 방 밖으로 나왔다. 인사를 하고 다시 들어갔다.
다음날이 되고 학교로 등교했다. 미술 수업시간이 되었고 평소에 학업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는 그날도 대충 때우는 식으로 수업에 임하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미술 선생님이 이번 초상화를 제일 잘 그리는 사람에게 매점에서 크게 쏜다고 했다. 나는 보상이 걸리면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내 최대한을 끌어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른 애들이 다 마무리가 되었고 수업이 끝나려는 찰나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나를 보고 다가왔다. 선생님이 말했다.
“건아 이제 수업 끝났어. 제출해야 해.”
그때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내 그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들에게는 수업이 끝났으니 가도 좋다고 말을 하고 계속해서 내 그림을 지켜보았다. 손이 가는대로 그리고 그 감각에 이끌리는 곳으로 그림을 그리고 집중했다. 이윽고 완성하자 선생님이 말했다.
“건아. 그림 그려볼 생각 없니?”
내 그림을 보았다. 그리고 다른 애들 것 하나를 집어서 내 옆에 두었다. 두 그림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달랐다. 삐뚤삐뚤한 선들 정리되지 않은 채색 그것에 반해 내 그림은 정확하게 명과 암이 구분되고 제대로 된 직선과 곡선들이 보였다. 모르는 예술적 재능이 있다고 믿어도 될 만큼이었다. 선생님이 한 번 더 말했다.
“건아. 담임 선생님께 내가 따로 말씀 드릴 테니 잠시 나하고 얘기 좀 하자.”
선생님의 그 반응이 재밌어 보이기도 했고 태어나서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은 처음이었기에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선생님과 한 얘기는 흥미로웠다. 너 정도면 천재라는 말과 교사생활 동안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면담이 끝나고 나는 교실로 돌아왔다. 친구들이 말하기를 아까 그림은 뭐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열심히 그리다 보니 되던데?”
애들은 재수 없다고 웃으면서 장난식으로 말했다. 평소 애들과도 관계가 좋았기에 애들은 자신들을 스케치해달라고 말했다. 그날은 연필로 애들을 스케치하며 온 시간을 보냈다.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하교 시간이 되고 오늘도 형과 만났다. 형은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길을 걷다가 나를 마주치자 가방에 단어장을 넣고 말했다.
“오늘은 잘 지냈어?”
들뜬 마음으로 내가 말했다.
“오늘 일이 있었어.”
“뭔데?”
“나 예술적으로 재능이 있나 봐 형이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처럼 오늘 미술 시간에 초상화를 그리는 수업을 했는데 거기서 미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를 정도였다니까?”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좋겠네.”
그 이후로 한동안 그 얘기를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고 형이 공부하러 들어가자 어머니가 나를 따로 불러서 얘기했다.
“담임 선생님한테 들었어. 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이야.”
그 이후 어머니는 나에게 모든 금전적인 지원을 해 줄 테니 학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술적인 재능이 있다는 것에 큰 관심이 있었다. 학원을 알아보았고 상담을 잡았다. 어머니는 동행하지 않았다. 상담에서 실기 테스트를 보았다. 학원 선생님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나를 당장 입시 미술반에 넣었다. 학교에서는 미술 동아리에 가입했다. 미술 동아리는 실력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말에는 미술 학원을 평일에는 학교에 다니었다. 공부에도 평소에 신경 쓰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에 공부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최상위권까지는 아니지만,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그때부터였다. 형의 질투가 시작된 것은 말이다.
형은 명문고에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큰 것인지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형의 재능은 어디를 가든 빛이 났다.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쌍둥이의 일기라도 시작된 듯이 나는 예술적 재능을 형은 공부에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형은 나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로는 예전보다 나에게 덜 친절해졌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공부에 있어서 과외나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아도 학교에서 하는 야자 하나만으로도 최상위권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형과 전교 1등과 2등을 다투면서 말이다.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형과 나의 비교되는 말을 어머니가 하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말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건이는 지원을 안 해줘도 형이랑 성적이 비슷한데. 네 형은 왜 그러니.”
집에 같이 하교를 했을 때 했던 말이었다. 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방문을 ‘쾅’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닫고 들어갔다.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그 이후로부터 문제를 일부로 1, 2개씩 틀렸다. 그런데도 형은 나를 뛰어넘지 못했다. 형의 성적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형이 2등급을 하나 받은 날 어머니는 쌓여두었던 설움이라도 폭발했는지 나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형의 방에 들어가 꾸짖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방문을 뚫고 나올 만큼 격렬했다. 자세히 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대충 나와의 비교와 왜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형은 나를 피했다. 마치 장애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점점 더 퇴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여행을 가시고 아버지는 해외로 출장을 가셨다. 집에 일주일 동안 비었다.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고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형이 문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세게 열며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넌 왜 그러는데! 왜!”
천적이라도 만난 작은 동물처럼 머리를 숙였다. 형이 목적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미안해. 형. 앞으로 안 그럴게.”
형은 다시 방문을 세게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자 조용해졌다. 형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은 처음이기에 나밖에 없는 방 안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휴지로 눈물을 닦으면서 조금 진정되자 형의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내가 말했다.
“형 내가 공부 가르쳐 줄까?”
나에게서는 일종의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형에게는 오히려 자존심을 더 긁는 행위였다. 형은 묵직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어머니가 유독 형에게 그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이다. 내가 학원에 다닐 때는 나 혼자 알아보도록 했고 나의 성적에는 일관 터치하지 않았다. 지원은 오직 금전적 만이었다. 하지만 형의 과외 선생님을 알아볼 때는 직접 움직이셨고 형의 성적에도 쓴소리를 많이 했다. 조금 서운한 면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복잡하게 생각해서 좋을 것 하나 없었으니 말이다.
어느덧 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미술 학원에 주 4회를 다니게 되었다. 학업은 복습만 하기로 했다. 1학기 것을 말이다. 형은 방학 때 동안 비교과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형의 목표는 단연코 서울대 의대였으니 말이다. 비교과 활동은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어머니도 요새 방학이어서 그런지 캠핑을 자주 다녔다. 아버지는 해외에 일이 바쁜지 해외 출장이 잦았다. 집에서는 나 혼자인 시간이 많아졌다. 쓸쓸하면서도 편안했다. 예전에는 분명 혼자였으면 외로웠을 텐데 말이다.
집에서 할 것이 없자.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내 방을 그려보고 그다음에는 거실 그다음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방을 말이다. 형의 방은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했다. 형의 방을 제외한 모든 방을 스케치하자 서재가 궁금해졌다. 절대로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는 부모님께서 말씀하시었으나 지금은 혼자였기에 들어가서 스케치를 했다. 스케치하던 도중 이상한 부분을 봤다. 자세히 보니 위쪽에는 책들이 배치됐지만, 아랫부분에는 공책들과 사진첩들로 보이는 책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도어락이 눌리는 소리가 들렸고 황급히 그 자리를 빠져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재를 스케치한 종이를 구겨서 침대 아래쪽으로 넣었다. 들어온 사람은 형이었다. 형은 들어오자마자 현관에서 한숨을 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문을 잠그고 구긴 종이를 펴서 스케치한 것을 보았다. 아랫부분에 있는 책들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처음으로 자세히 봤던 것이기에 호기심은 더욱 자극되었다. 순간적이지만, 긴장했던 탓인지 긴장이 풀리자 몸에 피로 급속하게 다가왔다. 낮잠을 잠시 자기로 했다.
일어났을 때에는 어머니가 돌아왔었다. 저녁을 차리셨고 같이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중학교 때와는 달리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저녁 자리는 어느샌가 서로를 견제하고 어머니가 형에 대해 밧줄을 옥죄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기에 형은 언제나 밥을 빨리 먹었다. 어머니가 냉철한 말투로 말했다.
“김신. 오늘 봉사활동 잘하고 왔어?”
형 또한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네.”
그 이후로 우리의 식사 자리는 아무 말도 없었다. 형은 밥을 먹은 채 방으로 들어갔고 어머니와 단둘이 남았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 나도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친구들과 오랜만에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3시간이나 지났고 어느새 시계는 오후 9시를 가리켰다.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다.
이런 날은 계속 반복되었다. 나는 어느새 서재를 잊었다. 2학기가 시작되었고 나와 형은 여전히 하던 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또 한 번 나를 제외하고 비었다. 방에서 침대에 누워있던 도중 문득 서재가 다시 한번 생각났다. 서재로 들어가서 아랫부분에 있는 책 중 사진첩을 꺼내어서 중간 부분을 펼쳤다. 나와 형 그리고 부모님이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다. 조금 더 뒤로 가보자 캠핑하러 다닌 사진 같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사진이 보였다. 그러다 어릴 때도 우리가 닮았을까 하는 생각에 맨 첫 부분을 보았다. 임신한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 보였다. 그때는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도 아니고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장을 넘기자 아이의 사진이 보였다. 이상한 점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곳에는 아이 하나만이 있었다. 그것이 나인지 아니면 형인지 구분하기는 힘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어도 아이는 하나였다. 그러다 아이가 3살에서 4살 정도로 보일 때 두 명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입양된 아이인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격이 다를지언정 외모는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니까 말이다. 이상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진첩을 덮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주말이 되고 학원으로 향했다. 나의 실력은 워낙 뛰어났기에 고등학생 삼학년 학생과 재수생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단연 최고라고 말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고 상담실에서 상담할 때마다 얘기해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매우 행복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에 선생님과의 대화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림을 다 그리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자 집안에 가족들이 전부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따로 방으로 부르셨다. 나도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서재에 들어간 것을 들키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생각과는 완전 다른 말을 하셨다.
“건아. 그게 아니다. 미술 학원은 잘 다니고 있지?”
아버지의 관심을 받아보기는 너무 오랜만이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그 말에 활기차게 대답했다.
“응! 잘 다니고 있어.”
아버지는 헛기침을 두 번 했다. 마치 할 말이라도 있었지만, 말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 들어가 봐.”
내가 나가자 어머니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 이후로 작게 말하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그때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그 이후로 어머니는 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와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셨다. 형은 방에서 나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갑자기 어머니가 소리 지르시면서 나왔어.”
어머니의 모습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두려워 우리는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만 멍하니 지켜보다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만 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방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말했다.
“엄마 무슨 고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어머니는 술잔을 내려놓고 앞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틀어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말했다.
“미안해. 건아 알았지? 엄마가 미안해.”
“왜 그러는데. 말이라도 해 줘.”
“아니야. 들어가 봐.”
답답함을 느꼈다. 별 것 아닐 거라고 넘기고 싶었지만, 찝찝한 기분이 맴돌았다. 내가 말했다.
“알았어.”
화장실을 들어갔다. 용변을 본 후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혼자 술 마시는 모습은 처음 봤다. 무슨 고민인지 유추해 보기로 했지만, 생각이 멈추기라도 한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이후로 어머니는 술을 마시러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밖으로 자주 나가셨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아버지는 해외 출장으로 나가셨다. 어머니는 보통 저녁 11시쯤 들어오셨다. 물론 집안일을 다하고 밥을 차리고 나가셨다.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자 형은 과외 방식을 바꾸었다. 우리 집으로 선생님이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선생님 집으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거슬려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또다시 집 안에 혼자 남겨졌다. 저번에 보지 않았던 서재가 생각났다. 마침 아무도 없고 형도 방금 나간 상태라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나는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번에 봤던 사진첩을 뒤로 한 채 공책에 손을 갔다 대었다. 맨 처음 공책의 표지에는 ‘김건’라고 적혀져 있었다. 공책을 열자 어머니의 필기체로 보이는 글씨가 보였다. 아무래도 이것은 어머니가 직접 쓴 일기 같았다. 그 안에는 나를 기른 흔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적혀져 있었다. 내가 울음을 터트린 것 무엇을 사달라고 한 것 까지 적혀져 있었다. 다른 공책을 집자 거기에는 ‘김신’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맨 첫 장에는 아이가 태어났다고 적혀져 있었다. 이상한 점은 그곳에 ‘한 아이’라고만 적혀져 있었다. 조금 더 넘기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공책을 집었을 때는 그곳에 ‘김신, 김건’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우리는 쌍둥이인데 왜 굳이 둘로 나누었다가 다시 합쳐서 쓴 것인지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첫장을 읽자 알 수 있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곳에는 ‘몸이 아픈 신이를 위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다. 복제인간을 하나 더 만들었다.’라고 적혀져 있었다. 나는 설마 설마 하면서 사실을 부인한 채 페이지를 넘겼다. 뒤 페이지에는 ‘기적적으로 신이가 나았다. 이미 복제인간은 완성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라고 적혀져 있었다. 공책을 당장이라도 덮고 싶었지만, 그 이후의 내용이 나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어쩌면 궁금증이라기보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부감 같은 것들일 수도 있다. 그 이후로 공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공책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신이가 아팠기 때문에 불법적으로 복제인간을 만들어 장기기증을 통해 치료하려 했지만, 기적적으로 신이가 나았고 복제인간을 어떻게 할지 몰랐다가 결국, 일단은 키우게 됐다고 한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책을 덮었다.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멍을 때렸다. 이런 나를 누가 발견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침대에 누웠고 천장을 바라보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여태까지 왜 나에게 형보다 그리 큰 관심이 없었는지 말이다. 답은 나왔다. 내가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날이 되고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 여전히 어머니는 뭐라 하지 않았다. 혼자 등교하고 그날은 학교에서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있었다. 그러다 일이 일어난다. 내가 점심을 다 먹고 혼자 창밖을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창문을 세게 닫으려 하다가 내 얼굴이 잠금장치에 찧었다. 그 애는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 몰랐어.”
나도 모르게 그 애의 등을 세게 때렸다. 그러자 그 애도 나에게 주먹질을 한 방 꽂아 넣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우리는 주먹질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 애의 옷깃을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긴 후 박치기를 했다. 그 애의 코에서는 코피가 주르륵 흘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곧이어 선생님이 오고 우리를 불렀다. 그 애는 코뼈가 부러져서 병원으로 급하게 갔다.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고 그 애가 언제 올지 모르기에 일단은 교실로 올라가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교실로 올라가서 난 똑같이 엎드려 있었다. 하교 시간이 될 때까지 말이다. 하교하고 원래대로라면 미술 학원을 가야 했지만,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자 어머니가 말했다.
“오늘 친구랑 싸웠다며. 친구는 괜찮아?”
나를 걱정하지 않고 그 상대방을 먼저 걱정하는 태도에 화가 나서 말했다.
“난 안 중요해? 난?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는 관심도 없어?”
그러고 문을 쾅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자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건아. 그런 게 아니잖니. 건아!”
끝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록 밖에는 키가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온종일 말이다. 밖에서는 어머니와 선생님이 통화하는 내용이 들렸다. 대충 그 애에게 얼마만큼의 합의금을 줄 건지 얘기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처음을 내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다음날이 되고 방에서 나와 씻지도 밥을 먹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교복을 입었지만, 학교에 갈 생각은 없었다. 학교에 가지 않자 어머니와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근처에 있는 모르는 아파트를 배회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왔다. 나의 이름을 묻고 경찰차에 태운 후 집까지 나를 안으로 데려다주었다. 어머니가 실종신고를 한 것이었다. 경찰이 말하기를 핸드폰에 있는 GPS를 통해 위치 추적을 했고 나를 찾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앞으로 세워놓고 말했다.
“건아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로 그저 바닥을 주시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한 번 더 말했다.
“무슨 일이야? 응?”
내가 말했다.
“서재에 들어갔어.”
갑자기 어머니는 분위기를 바꾸더니 차가운 톤으로 말했다.
“그래서. 뭘 봤는데.”
겁에 질렸다. 그런데도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내가 형을 위한 복제인간이라며! 쌍둥이가 아니라며!”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일절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그렇게 사는 것 뿐이야. 알았어?”
그 자리에서 당장 밖으로 나왔다.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다. 내가 원한 것은 그냥 따듯한 말 한마디였다. 그저 그렇게 너를 낳게 되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지금은 똑같은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고 말하기를 원했다. 시간은 정오를 가리켰다. 이런 상황임에도 배가 고파왔다. 학교로 가서 점심을 먹고 수업시간에는 엎어져 있었다. 어제 그 애가 보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부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이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저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만 말했다. 선생님은 머리를 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어제 일은 어머니가 해결했다며 나를 올려보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형과 마주쳤다. 뒷골목 길에서 말이다. 형은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애써 무시하고 그대로 길을 걸어갔다. 형도 나를 모른 체했다. 다른 친구들은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인지. 그저 형하고 대화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아직도 어머니의 차가운 말투가 생각난다. 아니, 이제는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먼저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가출하는 것이다. 어디든 가는 것이다. 나는 시외버스를 타고 무작정 출발했다. 가방에는 핸드폰, 지갑, 핸드폰 충전기, 돈을 가지고 말이다. 돈의 액수는 별로 크지는 않았지만, 노숙만 제대로 한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내린 곳은 서울역이었다. 서울역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핸드폰을 꺼둔 채로 숨겨두었다. 저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충전기를 챙긴 이유가 없어졌다. 지갑에 있는 카드는 되도록 쓰지 않기로 했다. 어디서 썼는지 내용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가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먹었다. 일주일 동안 버티려면 최대한 검소하게 살아야 했다. 삼각김밥을 먹고 역 근처에 신문이나 상자를 찾아 깔고 누웠다. 침대와 비교하면 많이 불편했다. 많기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출 생활도 3일을 체 가지 못한다. 3일이 되는 날 경찰이 온 것도 어머니가 온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고 덥고 배고프고 씻지도 못하고 평소에 누렸던 것들을 하지 못하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3일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형이 있었다. 형은 나를 무슨 벌레 보듯이 쳐다봤다. 인상을 찡그리고 혐오하는 표정 차라리 들어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한마디 했다.
“씻고 와 밥 먹자.”
나의 몸에 걸친 옷에는 얼룩덜룩한 것들이 묻어있었고 회색으로 조금 물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먼지 때문인 것 같다. 샤워하자 몸이 개운해졌다. 마치 몇 년 묵은 때를 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샤워하고 나오자 화장실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습기마저 뽀송뽀송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를 말리고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로 수저를 놓고 밥을 퍼서 내 앞에 가져다주었다. 나오고 싶었지만, 나오지 못하는 가정에 대해 스스로 서러움을 느꼈다.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자 그 서러움이 폭발했다.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지켜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밥을 다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아무도 들어오지 않기를 바랬다. 책상 위에 있는 휴지로 눈물을 닦았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흘러 나왔다.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울다 지쳐 잠들고 눈을 떴을 때는 새벽 2시였다. 8시간 정도를 이미 잠을 잤기에 졸음이 몰려 오지 않았다. 양치하지 않아서 입이 찝찝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모두가 자는 것을 확인한 다음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리 내지 않고 양치를 했다. 수도꼭지를 비틀어 물을 트는 것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했다. 마치 누군가가 이 상황을 목격하지 않기를 바란 것처럼 말이다. 양치하고 용변을 본 다음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서 그대로 천장을 바라봤다. 숨통이 조이는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했다. 집중할 무언가가 생기자 마음이 딴 곳으로 향해 잡생각들이 사라졌다. 물론 잡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컸지만 말이다. 게임을 3시간 했을 때 집중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했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했을 때는 밖에 이미 해가 뜨기 시작했다. 아마도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일 것이다.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오전 11시였다. 그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았고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문밖에는 어머니가 TV를 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어색함이 몰려올 것이다. 그런 상황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일을 언제까지나 묵혀 둘 수는 없었다. 문밖으로 나가자 마치 세상이 환하게 빛나는 듯 햇살이 내 몸을 내리쬐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고 나는 그대로 얼어버렸다. 어머니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내 쪽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어머니가 말했다.
“건아. 얘기 좀 하자.”
나는 마치 긴장이라도 한 듯 침대에 앉은 채로 정자세를 유지하고 손을 무릎에 올렸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번에 말한 그 차가운 말투와는 정반대였다. 어머니가 한 번 더 말했다.
“건아.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여태까지 너도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키웠어. 언젠가는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네가 그 사실을 알자 먼저 엄마는 배반감이 들었어. 여태까지 잘 키웠는데 왜 그런 사실을 알고 엇나가려고 하는 걸까 잘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렇게 차갑게 말한 거였어. 아들 엄마가 미안해. 용서해 줄 수 있겠니? 사랑해 아들.”
눈물을 흘렸다. 이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파악해야 했다. 이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러니까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파악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사고 보다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파악을 할 틈새도 없이 나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상황에서 단 하나 밖에 없었고 그 말을 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반사가 느껴졌다. 내가 말했다.
“나도 사랑해 엄마.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