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게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이병훈 세상에서 탄생한 것이 죄가 된다면 죄가 될 수도 있는 아이다. 그의 성격은 소심하고 선뜻 나서는 것이 없었다. 그 말은 애초에 사회성 그리고 사교성도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그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다. 그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병훈은 초등학생부터 혼자였다. 반을 관리하기 귀찮은 선생님은 처음에는 그를 불러 대충 상담하면 아이들과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병훈은 그렇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그 무리에 섞어 들어갈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혼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생이 되고 14살 입학식을 치른 후 사춘기가 왕성한 시기의 다른 애들과 같은 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통통한 체형이었던 그는 중학생으로 자라며 뚱뚱한 체형으로 변했다. 그로 인해 애들에게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름 대신 학교에서 돼지로 불렸다. 아무것도 뛰어나지 않은 그는 무엇을 하기보다 점점 숨는 것에 익숙해졌다.
애들의 놀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 어느새 돼지라고 불리는 것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위기는 다시 한번 찾아온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도 놀림을 받는 나이다. 그 당시에 학교 화장실에서 대변을 본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그것도 놀림을 받는 중인 아이가 말이다. 병훈은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애들의 놀림이 무서워 참는 중이었다. 배는 점점 아파져 오고 머릿속에서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괄약근에 힘이 풀어졌고 그대로 바지에 지렸다.
그 이후로 똥돼지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불쌍하게 생각한 애들의 다가오는 손길도 그때부터 끊겼다.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면 괴롭히는 애들이 생겨났으니까 말이다.
등교하던 도중 계단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밀었다. 그대로 계단에 다리를 박은 채로 넘어졌다. 병훈은 뒤를 돌아봤다. 같은 반 여자애 3명이 낄낄 웃으며 병훈을 쳐다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정강이를 찧어 너무 아픈 나머지 눈물이 흘렀다. 그러자 그녀들은 오히려 병훈의 등을 강하게 때리고 자신들의 반으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서 눈물이 다시 들어갈 때까지 서 있다가 반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도피처는 하나였다. 점심시간과 매점에서 군것질하는 것이었다. 악순환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풀면 살이 더 찌면서 놀림도 더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근데 이제 그마저도 간섭을 받게 됐다.
그는 점심을 남보다도 일찍 먹고 매점으로 햄버거를 하나 먹으려 향했다. 햄버거를 구매하고 전자레인지에 40초를 돌리는 동안에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가 햄버거를 한 입 먹으려는 순간 권선용이 매점으로 들어왔다. 그는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애 중에서 추측이었다. 그는 병훈을 보자마자 햄버거를 빼앗으려 했다. 이것마저 뺏기면 앞으로 가망성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병훈은 햄버거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순간 그의 뺨으로 손이 날라오며 선용이 말했다.
“또라이 새끼 아니야 이거. 그냥 한 입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뺨은 얼얼했다. 서러움이 폭발했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그 애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주먹은 그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선용은 그 주먹을 가볍게 피하고 병훈의 멱살을 잡아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계단 뒤쪽으로 끌고 가 구타하기 시작했다. 병훈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움츠리고 최대한 안 아프게 맞는 수밖에 없었다. 발길질과 주먹이 끝난 후 선용은 말했다.
“야. 앞으로 조심해라.”
병훈은 집에 얘기할 수도 선생님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집에 있는 할머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릴 수도 선생님에게 얘기해봤자 상황이 달라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미 1학기 때 놀림을 받자 선생님에게 말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살을 빼보라는 권유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선용은 병훈을 보면 반갑게 인사했다. 물론, 그 인사는 적어도, 병훈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다. 선용은 병훈을 보자마자 뺨을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야. 바지 벗어 봐.”
병훈은 당연히 얼 탔다. 모호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선용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뺨을 한 대 갈기며 말했다.
“안 들려? 병신아?”
위기를 감지한 병훈은 급하게 바지의 자크를 풀어헤치며 내렸다. 악랄한 선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팬티도 벗어.”
반에는 아무도 없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모든 애의 이목이 쏠렸고 병훈을 쳐다봤다. 그가 말했다.
“왜 창피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쪽팔려서인지 창피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수치스러워서인지 무서워서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저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려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는 들러리가 한마디 했다.
“야 선용아 여기까지만 해. 애 잡겠다.”
선용은 그 말에 행동을 참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그럼 네가 벗을래?”
그 한마디에 그 애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했고 선용은 동일 선상에 있다는 착각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그러고는 김이 샜는지 뒤를 돌아 그대로 반을 나갔다. 병훈은 바지를 올려 입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리에 가서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모든 것을 숨는 것인 줄 아는 동물처럼 엎드렸다.
점심시간이 되고 급식을 먹으러 줄을 섰다. 선용은 자연스럽게 내 앞자리로 와서 새치기했다.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바로 뒤로 물러난 내가 그 뒤에 있는 애에게 듣는 소리는 가관이었다.
“야 뒤로 가.”
그 말을 들은 선용이 그 애에게 말했다.
“야. 다시 말해 봐.”
“어…? 아니, 너한테 한 말이 아니라….”
선용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얘 내꺼니까. 나만 할 수 있어. 알았어?”
“어…. 알았어.”
병훈은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알았다. 선용만의 놀림감, 장난감 그런 것들 말이다.
유일한 스트레스의 해소시간인 밥, 간식마저 이제는 통제당하는 상황이 됐다. 선용은 그의 식판을 보면 언제나 음식을 전부 섞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먹게 했다. 병훈은 그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맞는 것보다는 나았으니 말이다. 매점에서도 괴롭힘은 똑같았다. 한 입만 먹는다며 그의 먹을 것을 가져가 한 입만 먹고 버리며 말했다.
“어차피 안 먹을 거잖아? 내가 버려준 거다?”
병훈의 입에서 나올 말은 의기소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고마워….”
하나도 고맙지 않고 원망스러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외에는 최선책이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선용은 어느 날 새로운 놀이를 가져왔다면서 병훈에게 접근해 말했다.
“노인.”
병훈은 당연히 알아듣지 못했다. ‘노인’이라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선용은 다른 단어를 말했다.
“아기.”
그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선용은 병훈에게 뺨 한 대를 갈겼다. 그리고는 귀에 대고 다시 한번 말했다.
“노인.”
이 상황이 수십 번 반복되었다. 뺨은 붉게 물들었고 다음 날이면 멍이 생길 정도였다. 아무거나 해야 했다. 선용이 ‘아기’라고 말하는 순간 병훈은 누워 재롱을 떨 듯 팔다리를 휘저으며 크게 말했다.
“응애! 응애!”
그러자 선용은 미친 듯이 웃었다. 새로운 신문물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웃더니 손은 옆 애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거봐! 된다니까?”
그 애는 선용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동시에 좋아했다. 그는 병훈에게 말했다.
“야 재밌었다. 선물 줄 게 앞으로 3일 동안은 자유롭게 다녀라. 누가 괴롭히면 말하고 나 말고는 있으면 안 되니까.”
뺨은 미치도록 아팠고 애들의 시선이 수치스러웠지만, 그 말을 듣자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것도 잠시 그런 기분이 들은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3일 동안은 정말 자유로워졌다. 이 달콤한 시간이 빨리 가지 않기를 바랬다. 3일 동안은 무엇을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선용에게 반항하거나 거슬릴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뿐이었다.
3일 병훈의 첫날은 좋았다. 아직 2일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까 말이다. 그날은 급식을 먹으러 줄을 섰다. 선용이 저 멀리서 다가왔다. 3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왜 내게 다가오는 지 알 수 없었다. 공포감이 휩쓸었다. 선용은 병훈 뒤에 섰다. 그리고 말했다.
“3일까지 시간 남았으니까, 네 앞에는 안 설게 고맙게 생각해라?”
그는 어느덧 습관이라도 베었는지 병훈의 뺨을 한두 번 두드렸다. 두드린 뺨은 맞지도 않았는데 얼얼해진 느낌이었다. 병훈은 과연 앞으로 3일까지 진짜로 선용이 건드리지 않을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신을 믿는 것 외에는 말이다.
급식을 먹는 도중 일이 하나 터졌다. 오랜만에 등교한 선용의 측근이 병훈 옆에 앉아 음식을 다 섞어 버렸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그런데 선용은 화가 났다. 자신이 정한 규칙 밖에서 움직이는 애들을 바라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애에게 다가갔다. 덩치도 큰 것이 성큼성큼 다가오니 그 애는 당황했다.
“왜 그래?”
그 애가 말하는 순간 선용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애에게 싸대기를 날렸다. 그리곤 말했다.
“3일이라고 했잖아. 내가!”
다른 애들이 보면 마치 나를 지켜주는 행동이라고도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애는 어벙벙한 표정을 한 채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선용의 측근들이 그 애에게 다가와 상황설명을 하듯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자 그 애는 선용의 발끝을 붙잡고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선용은 뒤를 돌아보더니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먹으면 용서해줄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병훈은 달콤했다. 내 기분을 쟤도 느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일 뒤에 내 모습이 저럴 걸 생각하니 기분은 순식간에 반전됐다. 그러는 순간 그 애는 바닥에 뱉은 침을 ‘호로록’ 소리가 나도록 빨아들였다. 그 애는 자신이 한 짓이 수치스럽다는 것을 알았지만, 병훈처럼 되고는 싶지 않기에 그런 선택을 했다. 선용은 그 모습을 보자 말했다.
“넌 재미없다. 그냥 내 옆에 있어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애는 선용의 옆에 다시 붙어 다녔다.
2일째가 되었다. 다음다음 날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다녔다. 평화로운 일상은 꽤나 달콤했다. 누구하고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그것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혼자인 편이 더 좋았다.
3일째가 되는 날 망상에 사로잡혀야 했다. 이날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머리가 아파졌다. 시간은 유난히 빠르게 흘렀다. 병훈은 고통스러웠다. 달콤한 휴식을 맛봤기에 고된 노동하기 싫은 근로자처럼 말이다. 종례가 끝나고 하교하려는 찰나 선용은 가방도 챙기지 않고 병훈의 자리로 걸어왔다. 그리고 귀에 대고 말했다.
“내일이면 끝나네?”
그것은 악마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달콤한 제안 따윈 없이 무자비한 벌만 내리는 악마 말이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병훈은 가방을 메고 달렸다. 어디든지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 이 학교에서 멀어지기만 하면 되었다.
3일이 지나고 등교하는 중 자신이 왜 학교에 가야 하냐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장악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핸드폰 전화도 꺼놓은 채로 한 아파트 건물 놀이터 그네에 앉았다. 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알 수 없다. 핸드폰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 이후로 학교가 꺼려졌다. 그래서 다음날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통틀어 4일이 지났다. 할머니에게는 임시 휴교라고 말을 해놓았다. 안심하고 장날에 일하러 나갔다. 하교 시간이 되고 1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택배인지 관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계속 문을 두드리자 결국, 문을 열었다.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선용이었다. 선용은 마치지 집인 것처럼 신발을 벗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선용은 4일이 지나도 오지 않은 병훈이 걱정된다며 선생님에게 얘기해 집 주소를 받고 온 것이었다. 선용은 손짓하며 말했다.
“물 한 잔만 떠와 봐.”
병훈은 부엌에 가서 컵을 가져와 정수기에 물을 따르고 선용에게 떨리는 손짓으로 가져다주었다. 물을 마시던 선용은 갑자기 컵을 바닥에 던져 깨뜨리고 말했다.
“미지근하잖아. 찬물로 가져와.”
“우리 집 정수기가 원래 그래서….”
선용은 대꾸하는 내가 싫었는지 말끝을 똑같이 따라 하며 비꼬며 말했다.
“그래서?”
정신 차렸다고 하는 편이 맞을까 아니면 미쳤다는 표현이 맞을까 냉동고에 있던 얼음이 생각나 다시 컵에 물을 따르고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만든 후 가져다주었다. 선용이 말했다.
“네가 지적장애인도 아닌데 왜 두 번 말하게 만들어. 응?”
“미안해.”
선용은 4일 동안 무척이나 심심했다. 그의 장난감인 병훈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도 조금씩 괴롭혀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병훈만큼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병훈과 친한 아이를 물었고 선용은 자신 있게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병훈의 주소를 받고 그를 찾아간 것이다. 선용은 병훈에게 원망스러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말했다.
“학교에는 왜 안 나왔냐?”
“그게….”
선용은 목소리를 깔고 하나하나씩 읊었다.
“똑바로 얘기해.”
“미안해. 내일부터는 꼭 갈게.”
선용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 말을 이해 못 해? 내일부터 나오겠다는 대답이 아니라 왜 안 나왔는지 대답해야지.”
병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그의 괴롭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용기는 샘솟지 않았다. 머릿속을 회전시켜 나온 그의 대답이었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못 나갔어.”
선용은 당연히 의심했다. 지금 집에 없는 사람의 상태를 보지도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영악했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았다. 그가 말했다.
“그럼 오늘 네 할머니 돌아올 때까지 여기 있는다?”
병훈은 당황했다. 거짓말인 것이 들통나면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래서 한 번 더 거짓말을 했다.
“할머니 병원에 계셔서 안 돌아오셔.”
“병원까지 내가 가야 해?”
병훈은 이때 핑곗거리를 하나 더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중환자실이라 면회도 어려워. 그래서 나도 못 가고 여기 있는 거야.”
병훈의 말이 거짓임을 선용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발악하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선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져주고 가는데. 내일도 안 나오면 나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네 집 주소도 아니까.”
집 주소를 안다는 말이 저렇게 두렵게 다가올 수 없었다. 미친 듯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점점 적당한 박동수를 찾아오는 데는 선용이 집을 나가고 20분이 흐른 뒤였다. 병훈은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훔치며 지옥에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말이다.
결국, 다음날이 다가왔다. 병훈은 내가 가지 않으면 그가 올 것이고 심지어 이번에는 할머니까지 계실 수도 있는 상황을 보기 때문에 거짓말이 들통나 두 배로 괴롭힘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등교 시간 마지막 1분 1초까지 쥐어짜 내며 늦게 도착했다. 조례가 끝나고 도착하자 반의 자리가 바뀌어 있었다. 선용은 바로 내 옆자리였다. 선용은 조례가 시작 전 자리를 바꿀 때 선생님에게 사정해서 병훈의 옆자리에 앉고 싶다고 했다. 성적도 좋고 모범생으로 포장된 그의 이유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성적도 별로인 병훈을 도와주고 싶다는 말로 달콤하게 선생님을 속였다. 그의 옆에 병훈이 앉자마자 선용은 이번에도 뺨을 두 번 두드리며 말했다.
“앞으로 나랑 계속 붙어있겠다. 그지?”
“어…. 어….”
“대답이 시원치 않네? 나랑 있는 게 싫어?”
병훈은 순간적으로 실수했다. 어물쩍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선용이 그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이번에 묻는 물음에는 차가운 칼날이 목소리에 배어 있었다.
“싫냐고.”
“아냐. 아냐. 좋아!”
“그치?”
그러더니 선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드라이버를 꽂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측근들을 불러모아 얘기했다.
“야야 얘가 박치기 10번에 이 드라이버 뺄 수 있다는 것에 5만 원 건다. 너희는 어느 쪽에 걸을래?”
측근들은 물타기라도 하듯 못한다, 한다는 것에 구별 없이 큰돈을 걸었다. 그 액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자그마치 50만 원을 웃돌았다. 돈을 다 걸자 선용이 말했다.
“이제 해 봐.”
“뭐…. 뭐를…?”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한 번 더 말해?”
“아…. 알았어…. 지금 할게.”
머리를 박으려는 순간 선용이 병훈의 머리채를 잡고 다시 올리면서 말했다.
“나 참고로 네가 한다는 것에 5만 원 걸었다? 잘해? 응?”
병훈은 머리를 책상에 들이받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마지막 10번이 되었다. 고개를 올려 드라이버를 보는 순간마저 기억하기 싫을 정도였다. 고개를 올리자 드라이버는 빠지지 않고 그대로 꽂혀있었다. 선용은 그 광경을 보면서 웃지도 않았다. 재미없다는 듯이 한심하게 병훈을 쳐다 내려 볼 뿐이었다. 병훈은 머리에서 피가 났다. 이마가 조금 찢어졌다. 꿰맬 정도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몰골이 처참했다. 그 광경을 본 선용이 말했다.
“야 보건실 갔다 와.”
선용의 말투에는 서늘함이 담겨 있었다. 보건실에 가되 자신의 짓을 말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병훈에게서 선용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그대로 보건실에 갔고 넘어져서 찢어졌다는 말과 함께 소독과 반창고를 붙였다.
교실에 돌아왔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선용마저도 말이다. 다음에 있을 형벌에 대해 고민하며 책상에 엎드렸다. 그러나,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선용은 병훈을 괴롭히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선용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측근들도 병훈을 괴롭히지 않았다. 병훈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태도와 출석하지 않는 선용을 말이다. 평화로운 일상이 찾아왔다고 생각할 때 선용이 학교에 나왔다. 두려움과 공포감이 병훈의 몸을 감싸 안았다. 조례가 끝난 후 선용은 병훈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어깨를 툭툭 쳤다. 병훈은 일어나자마자 선용과 얼굴을 마주쳤다. 눈과 눈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선용은 병훈의 뺨을 두 번 툭툭 친 다음에 말했다.
“여태까지 미안했다. 앞으로 안 괴롭힐 게 사과받아 줄 수 있지?”
병훈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여태까지 그런 일이 있었는데 사과라니, 그것도 일방적으로 용서해 달라는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병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왜! 내가 왜!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선용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에 있던 습관들이 몸에 배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잖아. 씨발놈아.”
그 눈빛은 당연히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과거에 얼룩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행위 중 하나였다. 그가 한 번 더 말했다.
“용서하는 게 어려워? 그럼 앞으로 용서 안 해주면 네가 어찌할 건데? 용서하라잖아.”
여태까지의 학습된 공포는 병훈을 위축되게 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용서받아줄게.”
선용은 이번에도 습관처럼 병훈의 뺨을 두 번 두들겼다. 마치 자신의 강아지처럼 말이다. 그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아 들리냐!”
곧이어 반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그는 공식적으로 용서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병훈아! 애들 안 들린 데. 다시 한번 크게 말해줄래?”
억장이 무너졌다. 여태까지 쌓은 견고한 벽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세상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런 생각이 끝날 때쯤 울면서 크게 말했다.
“용서할게!”
선용을 포함한 애들은 크게 웃었다. 선용은 만족했다. 자신의 앞길에 이제 해가 될 일은 적어도 하나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어떤 한 명은 그 장면을 촬영했다. 마치 증거라도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선용은 사실 이번에 아역 배우로 캐스팅됐다. 그것도 영화에서 아주 선하고 순수한 인물로 말이다. 자신의 학교생활과 대비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도 촬영 때문이며 계약서를 작성할 때 추후 논란이 터지면 물어낼 위약금이 있기에 일부로 병훈에게 저런 짓을 시킨 것이었다. 이제 선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병훈은 괴롭힘이라는 지옥에서 빠져나왔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겼다. 누군가 자신에게 손짓을 건네면 때릴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더욱 안 좋아졌다. 위로하고 공감하는 말조차도 위선으로 느껴졌으며 다가오는 이들의 손길도 거절했다.
어느 날 병훈은 하교하고 집에 간 날 핸드폰을 보며 그 속에 갇혀있을 때 한 포스터를 보게 된다. 영화에 캐스팅된 선용을 본 것이다. 신은 벌을 주기는커녕 그에게 축복을 주었다. 병훈은 낙심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말이다. 병훈은 당장이라도 게시판에 학교폭력 사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녹음도 영상도 그의 공식적인 사과도 말이다. 막막했다. 그 이후로 매일 그는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선용은 여전히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다.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았고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거나 드라마, 영화까지 아역 배우 캐스팅 1순위로 거듭났다. 병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묵묵히 이 상황을 바라보며 저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용은 학교에 도착했다. 곧바로 자리에 앉아 애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 목소리가 병훈에게 들렸다. 선용은 평범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단계에 도달했다. 선용은 병훈에게 다가갔다. 엎드려 있던 병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예전에 괴롭힐 때 재밌어하는 목소리가 아닌 진중하고 무거웠다.
“야. 일어나 봐.”
병훈은 베고 있던 팔을 풀고 앉은 상태로 상체를 들었다. 그러자 선용은 그를 흘깃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여태까지 했던 거 다시 한번 사과할게. 근데 너도 문제 있던 거 알지?”
그의 말은 진심으로 자신이 했던 잘못했던 짓이 병훈의 문제였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병훈은 그때 참지 못했다. 곧바로 일어나 선용을 주시했다. 선용은 어이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상황 자체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밑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대드는 행동을 보이니까 말이다. 선용의 말투는 달라졌다.
“앉아.”
병훈은 앉지 않았다.
“앉으라고!”
이번에도 앉지 않았다. 병훈은 앉는 척하더니 의자를 들고 선용을 개 패듯이 팼다. 평소라면 당하지만 않고 반격을 했을 테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그대로 맞기만 했다. 곧이어 애들이 그 상황을 말렸다. 병훈이 더욱 화가 났다. 자신이 당했을 때는 가만히 방관하던 애들이 반대 상황이 되자 말리는 것이 역겨웠다. 병훈은 의자를 휘두르며 소리 질렀다.
“시발새끼들아! 꺼져! 꺼져!”
의자를 든 채로 미친 듯이 휘두르는 병훈을 막기 어려웠다. 병훈의 시선이 다른 애들에게 정신이 팔리는 동안 선용은 일어나서 병훈의 의자를 잡아 다른 곳으로 던졌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왔다.
학교폭력 위원회는 3일 후에 빠르게 열렸다. 가해자는 이병훈 피해자는 권선용이었다. 선용은 이번 일로 갈비뼈와 팔에 금이 갔다. 선용은 피해자일 때 아주 영악했다. 자신의 지위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얼굴은 웃으며 병훈의 행동을 용서해주었다. 이 사실은 뉴스에도 나왔고 선용은 더욱 착한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병훈의 문제는 더 처참해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또래인 애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문제아로 소문이 났다. 평소에 선용을 시기하던 병훈이 그 모습이 꼴 보기가 싫어 우발적으로 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맞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병훈의 상처는 점점 더 곪아 썩기 시작했다.
선용은 그 이후로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피해자를 용서하는 선한 이미지로 말이다. 물론, 그다지 좋지 않은 여론도 있었지만, 선용의 인기와 선플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병훈은 학교에서 일주일에 수업을 몇 번 빠지고 상담사와 얘기해야 했다. 상담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아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고 판단해 그냥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상담을 했다. 미소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적어도 병훈에게 이제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은 없었다. 어느 말을 해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꼬아 듣기만 했다. 열심히 살려는 원동력도 의지도 없었다. 자신 스스로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학교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옥상에 도착했다. 난간 바로 뒤에서 아래를 내려도 보았다. 약 7층 정도의 높이였다. 머리로 떨어지면 죽을 수 있겠냐는 생각에 잠겼다. 난간에 올라섰다. 아래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너무 무서워 다시 내려왔다.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이 한심해져서 옥상에서 울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옥상에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권선용이었다. 선용은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온 것이었는데 우연히 마주쳤다. 병훈은 급하게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선용은 이때 친구들과 말하는 것이 가관이었다.
“지가 자살하면 뭐 어쩔 건데.”
인정하기 싫었다. 그것마저 인정하면 진짜 죽어버릴까 봐 그래서 부정했다. 내가 자살하면 무언가 바뀔 거라고 말이다. 내일은 죽어야지 내일은 죽어야지 하며 날마다 그렇게 보냈다. 병훈은 무기력하게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선용이 출연한 영화가 천만 관객을 향해 달렸다. 할머니는 그 영화를 모임에서 보고 왔다며 자랑했다. 병훈은 결심했다. 되든 되지 않든 부딪혀 보자고. 병훈은 학교 게시판에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에서 빠르게 퍼졌다.
부정할 거로 생각한 권선용 측에서는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저질렀다는 것과 용서받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전에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그 영상도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지며 대중들의 반응은 둘로 갈리기 시작했다. 하나는 누가 봐도 강제로 찍은 것 같다는 것과 용서를 받았으면 된 거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그러던 중 쐐기가 하나 박힌다. 누군가 선용이 병훈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올린 것이다. 선용도 병훈도 알 수 없는 익명의 활동자라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 일은 크게 퍼지고 경찰에게까지 넘겨지며 선용과 병훈은 조사를 받는다. 비록 불구속 조사였지만, 선용에게는 큰 압박이었다. 자신이 이룬 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고작 장난감이라 생각했던 애 하나 때문에 말이다.
그 이후로 선용은 엄청난 악플과 사생팬들의 배신에 대한 행동 그러니까, 집에 돌을 던지거나 살인 협박을 받았다. 선용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았다.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어 선용은 형사 처분을 받고 소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선용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당했던 그대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에 면역력이 없던 그는 결국, 소년 교도소에 들어간 지 100일도 되지 않아 자살한다.
그 후 장례식이 치러지고 한 봉안당에 그의 골분이 유치된다. 병훈은 이 소식을 모두 듣고도 가만히 있다가 그의 봉안당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때쯤 백합 한 송이를 들고 선용의 봉안당을 찾아간다. 병훈은 눈물에는 울음을 그리고 입에는 미소를 띠며 백합을 한 송이 놔두며 말한다.
“결국은 이렇게 되네. 절벽으로 날 밀었던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