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습도는 다행히도 높지 않아서 불쾌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피부가 살짝 따가웠다. 학교에 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를 갔다. 내리자마자 여자친구인 박채원에게 학교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했다. 그다음 흡연 구역으로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웠다. 담배 향이 몸에 뱄을 때쯤 그곳을 나와 강의실로 향했다. 열한 명밖에 듣지 않았고 그날은 유독 학생들이 잘 오지 않았다. 강의가 시작되고 학생들은 다섯 명뿐이었다. 교수는 전자출결이 아닌 종이 출석부로 일일이 확인했고 내 이름을 부르자 ‘네’하고 대답했다. 강의는 지루했고 빨리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더 태우고 싶었다.
강의가 끝나고 제일 먼저 일어나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그녀에게 연락했고 만나서 담배를 태웠다. 그녀의 향수와 섞인 담배 향이 오늘따라 묘하게 끌렸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강의 끝나고 뭐해?”
“저녁이라도 먹고 갈까?”
“그럼 좋지.”
그녀는 집이 학교와 거리가 멀기에 기숙사에 살았다. 나와 같이 늦게까지 있고 싶었으나, 언제나 집에 가야 한다는 것 때문에 주말에 다른 곳에서 만나지 않는 이상 평일에는 오래 있지 못했다.
점심을 먹으러 같이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학식은 맛은 그리 좋지 않았으나, 저렴했기에 반강제로 먹는 편이었다. 우리는 둘 다 고민 없이 나폴리탄을 선택했다. 줄을 서기 전에 자리를 잡았다. 줄은 점점 없어지고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음식을 받은 후에 자리로 돌아왔다. 나와 비교하면 그녀는 먹는 속도가 느리기에 언제나 맞춰주어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십 분 만에 끝날 식사를 최소 삼십 분까지 느리게 먹어야 했다. 불편했지만, 그녀가 좋았기에 그럴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뒤쪽 공터로 가서 담배를 더 피웠다.
평화로운 지루한 틈에 그녀가 온 것은 나에게 있어서 불행 속에 찾아오는 잠깐의 행복이었다. 그렇기에 질릴 수가 없었고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날만이 계속된다면, 세상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의가 다 끝나고 그녀를 학생회관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핸드폰을 하거나 지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잠깐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직 세시 삼십 분이었고 그녀는 다섯 시에 수업이 끝났다. 자보기도 했고 자극적인 영상을 보기도 했고 잠깐 산책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느리게 흘러 지루했다.
다섯 시가 되고 바로 핸드폰으로 수업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인문학관 앞에서 본 다음 바로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갔다. 생각해 보니 저녁 메뉴를 정하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 술 마시자!”
우리 둘은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만취가 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마시는 게 아닌, 적당히 합쳐서 두 병 정도 마셨다. 술기운에 빌려 깊은 얘기하는 것도 좋았다. 셔틀버스에서 내리고 근처 분위기가 괜찮은 술집에 들어섰다. 밀푀유나베와 소주 한 병 그리고 탄산음료 하나를 시켰다. 십오 분이 지나자 음식과 술이 나왔다. 밀푀유나베를 먹기 전 소주 한 잔을 서로 부딪치고 마셨다. 그리고 그녀의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고 내 것을 덜었다. 나는 예전부터 만약을 좋아했다. 그래서 질문도 많이 했다. 그녀에게 질문했다.
“만약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언제나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걸 조금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고 대답을 회피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지했다.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손을 턱으로 괸 채로 말했다.
“같이 있을 거야. 설령 네가 헤어지자고 말해도.”
그 말은 술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약간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대답했다.
“좋네. 그 말.”
좋은 말만 오가며 술자리는 끝이 났다. 오후 일곱 시가 되었고 버스 정류장까지 손을 잡고 걸어갔다. 더운 날씨였고 손에 땀이 났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내가 버스를 타는 모습을 그녀는 끝까지 남아 지켜봤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 아마도 그녀는 셔틀버스를 타러 갔을 것이다.
복학 후 대학교에 다니면서 살이 좀 빠졌다. 그리고 학업 스트레스 때문인지 설사나 복통도 자주 왔다. 그럴 때마다 위장약을 하나 꺼내 먹었다. 살이 빠지는 건 기분이 좋았다. 원래 조금 통통한 체형인 나는 다이어트를 결심했지만, 언제나 실패로 돌아갔다. 점점 정상 체중에 가까워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금요일 수업이 없기에 오전 열한 시까지 잠을 잤다. 일어나고 나니 해가 중천에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선풍기를 틀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날 때는 조금 추웠다. 선풍기를 끄고 아파트 일 층으로 내려가서 담배를 피웠다. 오늘따라 속이 좋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울까도 했지만, 샤워하기로 했다. 그래야 정신이 조금 맑아질 것 같았다. 샤워 후 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 말렸다. 다시 더워져 선풍기를 틀고 책상에 앉았다. 중간고사 기간이기에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야 했다. 두꺼운 전공 책을 꺼내 책상 위에 놓고 방 안의 불을 끄고 스탠드 하나만 킨 채로 읽기 시작했다. 역시 책은 지루했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군대에서 나오고 복학하면 뭐든지 잘 될 줄 알았던 마음 때문에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녀에게 일어났다고 연락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곧바로 일어났다고 연락했다. 공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싫었다.
그녀는 오후 한 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었고 다시 침대에 누워 편하게 핸드폰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모습이 한심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공부는 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원하는 그녀지 그녀의 모습은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갔다. 이번에도 역시 설사였다. 나오자마자 위장약을 하나 먹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또다시 배가 아팠다. 그래서 화장실을 갔고 그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했다. 자극적인 음식은 예민한 내 위장에 맞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자신이 보던 커플 영상에서 그들이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마침 공부도 하기 싫었고 할 것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보다 그것이 이롭다고 판단했고 알겠다고 했다. 대학교와 내가 거주하고 있는 거리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머리를 대충 말렸기에 가르마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다시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섬세하게 가르마를 나누며 말렸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입고 캔버스화를 신었다. 나가려는 순간 그녀에게 화장하느라 삼십 분 정도 늦을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다시 침대에 누워 클래식 음악을 핸드폰으로 틀었다. 졸음이 몰려오는 턱에 눈을 계속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이대로라면 잠들 것 같아 알람을 이십 분 후로 맞춰 놓고 음악을 즐겼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니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알람을 끄고 출발했다. 버스를 오 분 정도 기다리고 탔다. 시간대가 아직 출퇴근길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에어컨이 나오고 있어 시원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도착했다. 도착 장소에는 그녀가 보이지 않아 연락하자 곧 도착한다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서 기다리자 삼 분 정도 뒤에 한 버스가 멈춰 섰다. 내리는 사람을 보며 그녀일지 기대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내리는 사람은 그녀였다. 서로 보자마자 포옹하고 내가 말했다.
“예쁘네.”
“고마워. 밥은 먹었어?”
“난 먹었어. 너는?”
“나도 먹었어.”
“맞다. 얘기해줬지.”
간단한 안부 정도를 묻고 계획을 세우지 않은 우리는 일단 번화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보이는 오락실에 들어갔다. 우리는 다트의 점수 환산 방식을 몰랐으나, 카페에서 간식 내기로 다트를 하기 시작했다. 점수는 올라가긴 했지만, 몇 점이 왜 어떻게 올라가는지 몰랐다. 서로 앞다투며 다트를 했다. 점수 차이가 이십 점이 나며 내가 이겼다. 그녀는 아쉬워하며 조금 봐주지라며 약간의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지만, 장난인 것 같았다. 베이커리 카페를 갈까도 했지만, 그녀는 마카롱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다. 마카롱은 거의 열 종류에 육박했다. 가격은 하나당 이천오백 원이었다. 마카롱을 라즈베리와 크림치즈 그리고 녹차 맛까지 총 세 개와 커피는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두 잔을 시켰다. 영수증에는 만칠천오백 원이 찍혀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꽤 많았고 그렇기에 노랫소리를 조금 크게 틀어놔 어쩔 수 없이 크게 말해야 들리는 구조였다.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니 마카롱을 먹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고 대부분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케이크를 먹고 싶어 그녀에게 케이크는 내가 산다고 말했다. 케이크를 받아 자리로 돌아가자 그녀는 마카롱을 한입씩 반 정도를 먹고 다 남겨두었다. 내가 말했다.
“남긴 거야?”
“아니, 너도 먹어야 하니까 반씩만 먹었지!”
어떤 사람들은 누가 먹다 남긴 거여서 먹기 꺼려진다고 할 수도 있으나, 우리 사이에서 이런 행동은 흔했다. 그녀만 그러는 것이 아닌, 나도 저런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마카롱을 한 번에 다 먹을 수도 있지만, 조금씩 베어 먹었다. 그 사이 그녀는 케이크를 벌써 반을 먹었다. 그녀에 대해서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밥 같은 식사는 시간이 꽤 걸리지만, 디저트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먹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렇다고 디저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은 꺼려졌다.
카페에서 세 시간 정도를 얘기하고 나왔다. 얘기들은 대부분 일회성에 가까운 소모성 말들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건강한 대화와 미래 건설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밥을 먹은 지 거의 다섯 시간 정도가 흘렀다. 배가 고파져 그녀에게 물었다.
“배 안 고파?”
“조금? 뭐 좀 먹을까?”
우리는 예전에 일본 여행을 갔다 와서 우설 구이에 빠져 나중에 발견하면 꼭 먹자고 했다. 그런데 길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우설 구이집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내가 말했다.
“저기 우설 구이집 괜찮아?”
“당연하지. 가서 하이볼도 조금 마시자.”
“그래.”
망설이 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시간은 여섯 시를 가리켰다. 가게 안에는 열다섯 명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 테이블은 없었고 바만 있었다. 우리 외에도 세 명이 있었는데 다들 혼자 온 것 같았다. 바 바로 앞에 오픈 주방이기에 열기가 조금 느껴졌으나, 그만큼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우설 구이 두 개를 주문했고 동시에 하이볼은 무슨 종류가 있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일본풍이 강한 가게 분위기 만큼 하이볼은 일본의 위스키로 만든 것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일본주나 위스키만을 시키기에는 너무 무거운 느낌이 들었기에 하이볼 두 잔도 같이 주문했다. 곧이어 우설과 하이볼을 내어주셨고 바로 앞에 있는 화로에 내가 굽기 시작했다. 화로를 바로 앞에 내어주었더니 열기가 다시 강하게 느껴졌다. 땀이 조금 흐르려고 하자 머리밴드를 썼다. 우설은 일본에서 먹은 만큼은 아니었으나, 가격에 비해 좋았다. 한 시간 정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배가 불러 그녀는 거리를 조금 걷고 싶다고 했다. 더운 날씨에 걷기가 싫었지만, 맞춰주기로 하고 삼십 분 정도를 걸었다. 그리고 그녀가 타는 버스 정류장까지 가서 마지막을 보고 나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오후 여덟 시였다. 아까 흘린 땀 때문에 다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다. 조금 피곤해서 그녀에게 잔다고 먼저 연락 후 잠이 들었다.
잠이 편히 이루지 못했다. 잦은 복통으로 계속해서 화장실을 왔다 갔다 했고 계속해서 설사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갔을 때 변기를 내리며 일어선 순간 혈변이 보였다. 이때 장염이 아니라, 심각한 무언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아침 아홉 시가 되자마자 병원으로 갔다. 도착하자 증상을 얘기했고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증상을 얘기하자 복부 CT를 찍어보자고 말했다. CT를 찍고 기다렸다. 아직 별 것 아닐 거라는 생각이 뇌 대부분을 지배했다. 그러나, 진료실로 들어가자마자 이 생각은 깨져버렸다. 의사는 CT 결과 현재 폐와 위에 덩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의 증상을 보니 대장에서부터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큰 병원을 가라고 하며 소견서를 작성해 주었다. 진료비를 수납하기까지 나는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렸다. 엄마는 어쩔 줄을 몰랐고 아빠는 지금 당장이라도 큰 병원에 가자고 말했다. 결단력이 높았던 아빠는 엄마와 나를 데리고 차를 타고 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대학 병원이어서 그런지 어느 진료과든 줄이 길었다. 우리는 항문 외과에 접수했고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박채원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기에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소견서와 증상을 말하자 이른 시일 내에 대장 내시경을 하기로 했다. 예약은 삼 일 뒤 화요일로 잡았다. 공복 상태를 유지하라고 말하며 관장약을 주었다.
박채원은 잠이 많았기에 병원에 다 갔다 온 뒤인 오후 두 시에 잠에서 일어났다. 나는 전화가 하고 싶다고 얘기했고 그녀는 알았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일어났어?”
“응 잘 잤어.”
“사실 할 말이 있어. 지금 마음이 많이 복잡해.”
“무슨 일 있어?”
“오늘 새벽에 잠을 못 잤어. 계속된 복통으로 그러다가 혈변을 봐서 병원을 갔더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소견서 들고 바로 갔더니 대장 내시경 해봐야 할 것 같데.”
“암인 거 아니야?”
“아직은 정확하진 않아. 근데 그럴까 봐 나도 약간 머리가 아파.”
정적이 흘렀다. 아무래도 그녀는 지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정적을 깨기 위해 내가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마, 별거 아니겠지.”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전화기 너머로도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갑자기 네가 떠난다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워.”
위로는 내가 받아야 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아. 별거 아닐 거야. 그리고 월요일하고 화요일에 학교는 못 갈 것 같아. 어쩌면 그 이후로도 못 갈지도 몰라.”
“그래. 알았어. 그게 우선이지. 제발 별일 아니길 바랄게.”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 이후로 전화를 끊었다. 그녀에게 알리면 기분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았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더욱 심란해졌다.
화요일이 되고 병원으로 향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더욱 잘 느껴졌다. 긴장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최악의 결과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내시경은 수면으로 진행됐다.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바로 잠이 들었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았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많이 비몽사몽 한 상태로 일어났다. 무슨 말을 뱉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말이다. 삼십 분 정도가 지나자 말도 잘 나오고 정신도 또렷했다. 부모님은 계속 내 옆에서 손을 양쪽으로 잡고 있었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직감했다.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의사는 시작부터 너무 늦게 왔다고 말했다. 그것은 사실상 나에 대한 한정된 기간의 사형 선고였다. 대장암 말기며 암이 폐, 위, 복막에 전이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항암치료를 해도 육 개월이라고 생각을 많이 한 다음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엄마는 의사의 손을 잡으며 제발 나를 살려달라며 빌었다. 아빠는 큰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지 한숨만 계속 쉬었다. 나는 삽시간에 엄청난 우울감을 느꼈다. 스물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병에 걸릴 거라고는 예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빠는 엄마를 진정시키고 나와 번갈아 껴안아 주었다. 그대로 진료실을 나왔다. 주차장에 가서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 방 안으로 들어가며 내가 말했다.
“나 좀 쉬고 싶어.”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침대에 누웠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방문을 닫았지만, 우는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TV를 틀었지만, 그 오열은 묻히지 않았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그녀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전화로는 도저히 얘기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타자를 두드렸다. 주요 키워드는 대장암 말기, 암 전이, 시한부 선고였다. 연락을 보내고 일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전화가 걸려왔다. 벨 소리는 시끄럽게 울렸고 받을지 말지 고민했다. 전화를 받고 내가 말했다.
“여보세요?”
그녀도 울고 있었다. 제일 울고 싶은 것은 나인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어떡해…. 어떡해….”
“미안해.”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난 네가 죽는 게 상상이 안 가. 무서워.”
대답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태어나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데?”
“항암치료를 동반해도 육 개월이래.”
“하…. 지금 볼 수 있어?”
“이쪽으로 올래?”
“지금 갈게.”
전화를 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두통이 몰려왔다. 더욱 싫은 것은 복통도 몰려왔다. 더 아파지기 전에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아니 어떻게 죽어가야 하는지 지금 당장 미칠 것 같았다. 예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만약 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 어떻게 할 거야?’ 이제는 현실이었다.
그녀는 두 시간 뒤에 도착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여자친구를 보러 간다고 하고 나왔다. 그녀는 급하게 나온 것인지 화장도 하지 않고 옷도 편한 차림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껴안으며 울었다. 나는 그저 퀭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근처 정자에 앉았다. 날씨는 더웠지만, 그늘에서 있으면 버틸 만했다. 그녀는 조금 진정된 상태였다. 내가 말했다.
“고민이 있어.”
“응.”
“항암치료를 받으면 생명이 조금 더 연장되겠지만,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일찍 죽기는 싫어.”
“난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응원할게. 항암치료를 받으면 매일 병문안하러 갈 거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너와 더 많은 추억을 쌓을게.”
“좀 걸을까?”
“응.”
오후 다섯 시 배가 고팠다. 하지만, 의사는 나에게 죽을 먹는 것을 권유 정도가 아닌, 강제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죽이었다. 그렇기에 배가 고파도 참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배는 안 고파?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
“괜찮아. 어차피 죽밖에 못 먹어.”
“그거라도 먹자.”
“죽 못 먹잖아.”
“지금 못 먹는 게 어디 있어.”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우리는 죽집으로 향했다. 맛집으로 검색해도 죽을 파는 곳은 없었기에 프랜차이즈 죽집으로 갔다. 달콤한 게 먹고 싶었던 나는 호박죽을 그녀는 소고기 죽을 시켰다. 마음 같아서 같이 나온 장조림, 김치, 오징어 젓갈도 먹고 싶었으나, 그녀는 그런 나를 제지했다. 내가 말했다.
“죽은 입맛에 맞아?”
그녀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니, 사실 별로야. 근데 난 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우리는 음식을 다 먹고 거리를 다시 걸었다. 오후 아홉 시가 되고 서로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다. 내가 말했다.
“이만 들어가야지.”
“더 있고 싶어.”
그녀는 바로 핸드폰을 켜고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여기서 오늘 하루만 자고 가자.”
웃으며 내가 말했다.
“그래.”
부모님에게 여자친구와 하루를 보내고 간다고 말했다. 우리는 숙소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관계를 맺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되었고 격렬했다. 그런 탓에 땀을 서로 많이 흘렸다. 관계가 끝난 후에도 서로 키스를 한 번 나누고 사랑한다고 귀에 속삭였다. 다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내가 말했다.
“완결 나지 않은 건 보기 싫어.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녀는 자연스럽게 완결된 것들만 골라서 틀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하던 도중 기침이 올라왔다. 피가 섞여 있었다.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직감되었다. 그러니 다시 우울해졌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여러 감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전 열한 시가 퇴실이었기에 간단하게 밥을 먹고 헤어지고 싶었지만, 먹을 수 있는 게 죽밖에 없어서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피시방으로 가서 평소에 내가 하던 게임에 그녀를 입문시켰다. 그녀는 처음에 방황했지만, 그럴 때마다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게임에 재능이 있는 것인지, 금세 적응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있다가 오후 두 시에 우리는 헤어졌다.
집으로 들어갔다. 울던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안아주었고 그 뒤에는 방황했던 아버지가 서 있었다. 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미소가 진실하여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덥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에어컨을 바로 틀어주었다. 그리고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입맛이 없다고 대답했다. 다시 죽을 먹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거실 소파에 앉게 한 뒤 말했다.
“엄마랑 아빠 긴 휴가를 냈어. 이제 같이 다니자. 어디든.”
긴 휴가라고 했지만, 사표를 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에 어떤 것도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채원도 함께했다. 그녀는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였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평일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캠핑 하러 갔고 주말에는 완결된 영화, 드라마를 보았다. 가끔은 국내 여행을 다녔다. 해외여행도 가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상 그리 좋은 것은 아니기에 가지 못했다. 부모님에게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가 남기는 것이 죄책감이 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그렇게 삼 개월이 흘렀다. 나의 암은 더욱 심각해졌다. 엄청난 고통에 진통제를 먹어도 낫지 않아 기절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하지만, 숨겼다. 고통이 따를 때마다 혼자 방 안으로 들어가는 식으로 들키지 않게 했다. 그러나, 이는 곧 얼마 가지 않아서 박채원에게 들킨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던 도중 나는 엄청난 고통을 호소했고 식은땀과 함께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당연히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기절이었기에 안정을 취하고 고통이 사라지자 다시 일어났다. 나는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일이 벌어진 그 날 바로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결국, 나는 입원했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는 점점 빠졌다. 몸은 이미 야위었지만, 더욱 야위었다. 병원식은 당연히 맛이 없었고 밖에도 잘 나가지 못했다. 그동안은 몰래 담배를 피웠지만, 이제는 필 수가 없었다. 술은 예전부터 먹지 못한 상태였다. 근육이 빠지기 시작하자 정말 미라가 따로 없었다. 겉모습만 보존된 채로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내 곁을 지켜주었고 박채원도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은 내 곁에 머물렀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하루가 흐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사후세계에 대한 물음이 아닌, 내 주변에 남는 사람들에 관한 생각이었다.
밥도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는 나에게 코에 튜브를 연결해 식사할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링거만 맞겠다고 했다. 부모님도 설득하려 했지만, 완강히 나는 반대했다. 살고는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무의미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언제부터인가 미소를 잃었다. 박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나를 마지막으로 지켜보는 모습에서는 미소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했다.
“내 마지막은 미소를 띠면서 보내줘.”
그들은 그 말에 울음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노력하려고 입은 살짝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울면서 미소를 띠었다. 이제는 정말로 별로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의사는 말했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할 일이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그 말을 내 앞에서 하지 않았다. 내가 자는 사이에 잠깐 깸과 동시에 커튼이 쳐지고 그 밖에서 말한 것을 내가 들은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부모님과 박채원보다도 내가 더 해야 했다.
일주일이 흘렀다. 그 일주일 사이 박채원은 꽃을 매일 선물해줬다. 꽃은 생화도 조화도 아닌 드라이플라워였다.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꽃은 선물해주었다. 꽃의 종류는 단 하나였다. 바로 보라색 장미였다. 내가 왜 하필 보라색 장미냐고 묻자 그녀는 영원한 사랑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술도 마시고 싶었다. 부모님과 박채원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말했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 가능하면 술도.”
의사는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나를 일으켜 부축하며 밖으로 향했다. 박채원도 함께했다. 흡연 구역에 도착하자 박채원은 나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었다. 그것을 받아 피우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피워서 그런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고 속도 메스꺼웠다. 그렇지만, 피워야 했다. 어머니는 편의점으로 가더니 팩 소주 하나를 사 왔다. 나는 빨대를 뜯어 팩에 끼우고 조금씩 마셨다. 쓰디쓴 알코올 맛과 목 넘김에서 뜨거움이 느껴졌다. 다 마시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고마워. 정말로.”
그리고 병실로 들어가서 다시 누웠다. 술기운 덕분인지 편안했다. 지금 눈을 감으면 다시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내가 떠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야. 고마워.”
울음바다가 되었다. 부모님과 박채원은 양쪽의 내 손을 잡고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 손을 잡자 점점 힘이 풀렸다. 내 손은 얼마 가지 않아 침대에 툭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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