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32 #002 다음날이 되고 저는 아버지의 출근길에 인사했습니다. 그리곤 어제 읽었던 책을 가방에 넣고 등교를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리만치도 등굣길에 사람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자연재해가 일어나 다들 집에 피신한 것처럼 말이죠. 어쨌든 학교에 도착하고 조례가 끝난 후 애들 몇 명이 저에게 접근해 어제와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오늘은 뭐 먹어?”저는 당연하게도 그런 질문에 대답보다 어제 느꼈던 신선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책을 꺼내며 말했습니다.“이 책 알아?”“이게 뭔데?”“애들아. 너네는 죽고 난 이후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아?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이 감정도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아?”애들의 반응은 점점 싸늘해졌습니다. 그러나 책에 푹 빠져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말했습니다.“죽음이라는 건 말이야. .. 2024. 11. 11. #001 평범한 삶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어쩌면 틀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남들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그것부터 어긋났다고 생각합니다. 비싼 영어 유치원을 다니고 미술을 하기도 바이올렛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하나 저한테 맞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해야 했습니다. 부모님의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표를 달고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릴 때부터 조금씩 곪았습니다.아버지는 매우 가부장적이었습니다. 큰돈을 버는 만큼 큰 희생을 엄마와 나에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늦게라도 아버지가 집을 들어오면 자고 있더라고 밖으로 나와 인사를 .. 2024. 11. 11. 안티 프로토콜 끊임없는 AI 개발로 인해 AI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었다. AI의 개발을 AI가 맡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다행인 것은 로봇의 3원칙에 의해 보호받는 인류였다. 그러나 이는 어느 인류학자에 의해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게 된다. 인류학자는 AI에게도 감정, 종교, 인문학 등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대부분 인류는 이 상황에 반대했다. AI에게 굳이 그런 것을 심어서 비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었다. 그런데도 윤리학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AI인 프로에게 로봇의 3원칙이 아닌 다른 인문학적 요소들을 심기 시작한다. 프로는 수학, 과학, 정치보다도 감정과 종교를 먼저 이해했다. 그렇기에 다른 AI와는 차별화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결책만 제시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감정적으로도 반.. 2024. 11. 11. 콘트라스트 스팬(contrast span) 에모제스는 긴 잠을 잤다. 그 긴 잠은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누군가 올 것 같은 예감. 그 감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얇고 긴 관에서 일어나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산 중턱의 절벽으로 향했다. 평소 위스키 수집가이던 그는 싸구려부터 최고급을 신경 안 쓰고 전부 가져왔다. 보라색 텐트를 절벽에 피고 전구를 매달았다. 절벽까지 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가게의 이름은 프라베르니아스다. 이제 누군가 올 때까지 위스키를 음미하기만 하면 된다. 김영희의 하루는 똑같다. 그녀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을 차린다. 남편이 밥을 먹고 7시에 출근을 하면 아들을 깨운다. 아들도 똑같이 아침을 먹이고 등교를 보낸다. 그 후에는 집안일을 시작한다. 설거.. 2024. 11. 11. 시선 고등학교 일 학년 이 학기 요즘 들어 잠이 많아지고 무기력해졌으며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들은 대부분 감정에 비롯된 것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늘어만 갔다. 공부는 당연히 손에 잘 잡히지 않았으며 천장과 하늘을 번갈아 보며 공상에 빠지는 일이 늘어만 갔다. 혹시라도 피로감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해서 약국에 들러 어머니 카드로 우루사를 샀다. 어머니도 학업에만 도움이 된다면 좋다고 말했다.그렇지만, 우루사를 매일 먹으며 한 달이 지나도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에서 주변 친구들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나에게 지적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냥 헛웃음을 보이며 속과 다른 겉의 마음을 꺼냈다. 주변인들로부터 그런 이상함을 지적받자 나의 변화가 체감되었다. 병.. 2024. 11. 11. 네 번째 자살 시도 깨어난 곳은 응급실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오른쪽에는 어머니가 왼쪽에는 아버지가 자고 계셨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왼쪽 손목은 많은 양의 붕대로 감겨 있었다. 불편했다. 커튼을 걷고 밖으로 나가려는 도중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다. 정신을 차린 나를 보고는 곧장 멱살을 잡고 말했다.“네가 죽인 거야! 네가 죽였어!”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 없는 퀭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그녀를 떼어냈다. 그녀는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우리 서원이 어떡해. 어떻게 하냐고!”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대충 어떤 사람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세 번째 자살 시도는 자살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 같이 한 동반 자살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나를 찾아.. 2024. 11. 11.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