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32 #014 3월이 찾아오고 우리는 거리상 매우 멀리 떨어졌습니다. 연락도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해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 줄 알고 믿었으니까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메시지 하나만 남기는 것도 남자가 있는 술자리에 가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아마도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2주 간격으로 만났습니다. 누나는 학교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격렬하게 포옹하고 손을 잡고 산책했습니다. 사진도 찍고 영화도 보고 남부러울 것 없는 그런 연인 사이였습니다.하지만,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은 서로의 입에서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권태기가 온 것인지 아니면, 진짜 서로의 사랑이 .. 2024. 11. 12. #013 학원의 수업은 고등학교 때처럼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5번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수업했습니다. 학원이 끝나면 언제나 신한강 집 앞으로 가서 담배를 태우고 얘기를 조금 나누다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도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의 원장님이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수업을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을 안 낸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원장님이 말했습니다.“이재하 맞지?”“네.”“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수능 반을 열려고 하는데 들어올 생각 있니?”사실 지금 수능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를 봐도 괜찮았습니다. 검정고시는 수능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에 수능 공부만 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저의 뜻대로 이것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말.. 2024. 11. 12. #012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이번에도 이사했습니다. 그것도 또 꽤 먼 곳으로 말이죠. 하지만, 학교도 바로 앞에 있었고 즐길 거리도 주변에 즐비해서 불만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저와 등을 지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이사하고 난 후 술도 잘 마시지 않고 여자를 집 안에 들여보내지도 않았습니다.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그냥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누워있었습니다. 저에게 딱히 간섭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를 의식하는 그런 것 말이죠. 약간의 잔심부름을 시키면 저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저에게 “고맙다”라고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습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집.. 2024. 11. 12. #011 저의 그 말 때문인 걸까요. 김한운은 그 뒤로 아침에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제가 그를 찾는 것 같은 오묘한 느낌 말이죠. 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일상의 하나 중을 깨뜨리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달랐습니다. 저번에 피웠던 담배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를 찾아야 했습니다. 적어도, 몸이 원하는 진정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그 선배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요새 한운이가 안 보여서요.”“아 한운이? 오늘 수업 끝나고 학교 앞으로 온다는데. 근데 왜?”그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다니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기분을 감정하는 게 더 우선이었기에 제가 말했습니다.“저도 같이 있어도 돼요?”“네 맘이.. 2024. 11. 12. #010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옥상에서 선배들과 담배를 피웠고 저는 계단을 내려가 반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죄의 무게를 계량기에 측정이라도 하는 듯이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누가 진정한 죄인이고 누가 진정한 선량한 사람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김한운은 매일 아침 저의 집 앞에서 대기하며 제가 나오면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갔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왜 매일 그러는 거냐.”“그냥 산책하는 길에 나온 거야 담배도 필 겸.”그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또래 친구 중에 누군가 저에게 관심을 보인 다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괜히 이상한 상상들이 떠올랐습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하지 않는 그런 것들 .. 2024. 11. 12. #009 아버지가 들어온 시간은 저녁 8시였습니다. 이번에 크게 다른 점은 한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여자의 나이는 아버지와 비교하면 많이 젊어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나이도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훨씬 젊어 보였습니다. 저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갑자기 데려온 여자 때문에 말이죠. 그 여자는 저에게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넌 누구니?”오히려 제가 물어야 할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이재하에요.”여자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짧은 빨간색 치마에 속옷이 비치는 하얀 와이셔츠가 딱 봐도 화류계에서 일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여자는 아버지를 보면서 말했습니다.“오빠! 왜 아들 있는 거 얘기 안 했어?”아버지는 저를 바라보지도 .. 2024. 11. 12.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