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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나는 죽기로 마음 먹었다

용기 없는 다짐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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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 증세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위로가 되었다. 취기에 빌려 잠이 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독이 든 잔이었다. 성배조차도 아니었다. 도움은커녕 점점 중독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이제는 한 병으로 잠들 수가 없었다. 어느새 주량은 두 병이 거의 넘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대한 다른 이들에게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혼자 마시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 비용과 용돈을 대부분 친구와 함께하는 술자리에 허비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친구들과 마실 때도 끝까지 마셔야 했다. , 만취할 때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몇몇 이들은 나와 어울리는 것을 피했다. 남아있는 애들이 있기에 그것을 위로 삼아 그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렇지만, 돈은 한계가 있었다. 가게에 가서 먹으면 안주까지 포함했을 때 세 배 이상이 들기에 술이라는 경로의 친구들과의 교류는 뒤로 갈수록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마시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슬슬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한 병 이상을 먹고 오기 때문이었다. 방에서 혼자 두 병 정도를 마시고 있었을 때였다. 방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했다. 어머니가 순간 들어오고 그녀의 시야는 오직 비어있는 소주 두 병만이 보였다.

 

너 알코올 중독 아니야? 심각해 지금. 며칠째야?”

 

그때 나는 어머니의 시선이 비어있는 소주 두 병이 아닌, 나에게로 향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나 좀 봐달라고. 아들이 지금 많이 아프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얘기할 수 없기에 알아차려 줬으면 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시선은 나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괜찮아. 나가.”

 

적당히 마셔. 젊은 애가 그게 뭐야.”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방 밖으로 나갔다. 불을 껐다. 어두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불을 켰다. 거울에 비친 내가 처참해 보였다. 여기서 더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먹었다. 밖으로 나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물론 그 해결책이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용기 없는 자살시도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먼저 든 생각은 상쾌함도 해방감도 아니었다. 그저 죽고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서 먼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로 아래를 바라봤다. 까마득히 높았고 지레 겁을 먹어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죽을 용기. 그것이 필요해서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서 근처 의자에 앉아 한 번에 다 비웠다. 그리고 새벽 한 시가 되었을 때 이번에는 4차선 도로 한가운데서 걷기 시작했다.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어 남에게 기대는 모습조차 보기 싫었지만, 누군가가 와서 나를 받아 죽여준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무심하게도 새벽 한 시라고 쳐도 무려 삼십 분 동안 단 한 번도 차가 지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자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갑자기 밀려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그곳에서 소리 질렀다.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왜 나를 힘들게 하냐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음은 강 위의 다리로 갔다. 그날따라 물살이 세게 휘몰아쳤다. 물이 부풀어 오른 강은 한 사람을 조용하게 휩쓸 만큼 강했다. 아까보다 더 술에 취해서 그런지 난간에 올라갔다. 심호흡하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용기가 없었다.

 

자살할 용기도 없는 인간이 나였다. 죽고 싶지만, 죽지 못하는 사람도 나였다. 그런 나를 예쁘게 봐줄 수 없었다. 한심하고, 처참하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치부했다.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게 슬펐다. 이렇게까지 규정함에도 불구하고 왜 죽을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살고 싶어서 이렇게 죽음을 확인시켜줘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점점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 언제 물이 채워질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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