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뚝자해
첫 자해는 친구 앞에서였다. 그는 내가 팔뚝을 긋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기보다는 왜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묻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무관심인 듯한 관심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왜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야 내가 사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누군가의 이목을 끌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받아야 내가 사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해는 점점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팔뚝을 그었을 때의 흘러나오는 새빨간 피는 정신적으로는 죽었음에도 물리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받쳐주었다.
그렇게 팔뚝에는 상처가 점점 늘어갔다. 자해해본 적이 없기에 그저 상처가 아물면 흉터도 점점 아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흉터는 그대로 남았고 집 안에서 여름이 되어도 긴소매를 입어야 했다. 그것이 매우 불편했지만, 부모님에게 들킨다는 점이 더 무섭게 다가왔다.
팔뚝은 흉터의 선들로 점점 채워졌다. 그리고 그것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과 다르게 한 번 그은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티가 잘 나지 않고 피도 더 많이 나는 어깨를 긋기 시작했다. 반소매를 입어도 괜찮으며 실제적 만족감도 더 나은 그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미 나의 팔뚝은 물들어 있었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는 없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을 알릴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방으로 어머니를 불렀다. 팔뚝을 걷는 순간 어머니는 놀라며 말했다.
“이게 뭐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어머니는 머리를 부여잡고 잠시 휘청였다. 그리고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다음부터는 제발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만을 유지하고 고개를 아래를 떨궜다.
어머니는 입이 가벼웠다. 가족만 말이다. 내 행동은 곧 아버지의 귀에도 흘러 들어갔다. 아버지는 왜 하냐고 물었지만, 그 말에 살고 싶어서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침묵만을 유지했다. 한숨을 쉬며 나갔다. 그 한숨이 무슨 의미인지는 제대로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손목자해
사실상 말이 손목자해지 자살 시도였다. 술을 가득 마시고 집으로 온 날이었다. 술에 취했고 취할 때마다 돌아오는 스스로 물음은 언제나 자살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용기가 없어 시도하지 못했다.
그날은 달랐다. 커터칼을 들고 이제 죽자고 결심했다. 술에 만취한 상태로 있는 힘껏 손목을 그었다. 여태까지 했던 수준과는 달랐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고 고통도 몇 배였다. 그때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내 손목을 심장 위로 올리고 수건을 가져와 감쌌다. 그리고 구급차를 불렀다.
십 분도 되지 않아 구급차는 도착했고 내 손목을 붕대로 몇십 번을 감고 병원으로 향했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만취했을 상태라 그때의 생각을 전부 옮겨 적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적어도, 안타까웠다. 나의 현실이 말이다.
그 이후로 부모님은 두 분 다 출근하기 전에 내 방을 들러 나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사실상 의무화 되었다. 아침마다 문이 열리면 인기척에 정신이 조금 깼다. 왜 매일 확인하는 지 퇴근하신 아버지에게 아침마다 확인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눈물을 쏟으시며 말했다.
“네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빠는 무서워. 정말이고 진심이고 진짜야. 제발 살아만 있어줘 아들.”
그 말에 감동이나 그런 것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울리는 찡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야 내 입에서 대답이 나올 시기 되었다.
“알았어. 아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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