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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나는 죽기로 마음 먹었다

첫번째 외톨이

by 에세이와 소설 2024.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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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란 나에게 거의 지옥 같은 시절이었다. 따돌림받는 이유는 단 하나, 뚱뚱해서였다. 그 시절 나는 다른 학생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갔다. 하지만, 이것이 놀림감이 될 정도인가 싶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돼지라고 불리며 나에게 선을 그으며 다가오지 않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나의 상실감은 커져만 갔다.

 

학교를 자주 빼먹었다. 아침만 되면 학교가는 등굣길이 그렇게 치욕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아침을 차려준 어머니의 밥상에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강한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녹즙과 밥과 국을 섞은 채로 그대로 싱크대에 가져다가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화풀이 대상은 부모님이 되었으면 안 됐는데 그때는 철없는 시절이라 그랬다. 방문을 세게 닫으며 들어가자 어머니는 걱정을 하지 않고 화를 냈다. 방 키로 문을 열고서는 학교에 가라고 했고 결국,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날짜까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벌써 13년 전이다. 나를 괴롭히는 애들은 세 명이었다. 그중 여자애가 한 명 껴 있었다. 놀리는 것은 기본이고 주도해서 쪽팔림을 주는 것도 그 여자애였다. 나머지 남자 둘은 의도했지만, 그렇지 않은 듯한 폭력을 행사했다. 예시를 들자면, 축구를 할 때 같이하자 해놓고서는 못한다는 엄청난 막말과 머리를 박거나 다리를 발로 차거나 했다. 울기라도 하면 뭐 이런 거로 우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구분하자면, 정신적 스트레스는 여자애가 담담했고 육체적 스트레스는 남자 둘이 준 것이다.

 

그날은 여자애가 폭력을 행사한 날이었다. 등굣길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건강 증진이라는 핑계로 사용하지 못했다. 5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여자애 한 명이 헉헉거리는 날 보며 말했다.

 

돼지새끼.”

 

그 말을 나는 애써 못 들은 척 안 들리는 척 무시했다. 나는 곧 계단 막바지에 도착했다. 세 칸만 더 올라가면 다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거기서 나를 밀췄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엎어졌고 정강이가 까졌다. 까진 정강이가 쓰렸다. 곧바로 다시 눈물이 흘러 나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 광경을 동생이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같이 하교하고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놀기도 하는 24시간 중 절반 정도를 붙어있는 동생한테 말이다. 동생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너무 쪽팔려서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화가 났지만, 그 상황에서 할 있는 것은 그저 그 여자애를 원망하는 것 밖에 없었다.

 

동생과의 거리감

원래라면 동생의 하교 시간이 더 빨랐기에 반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도 반 앞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동생의 반에 찾아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핸드폰도 없었기에 그저 집으로 혼자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동생 방문을 열어보니 동생이 있었다. 이상하게 화가 나고 배신감이 들었다. 그것은 동생을 향하면 안 되었는데도 말이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내가 약간의 화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왜 혼자 갔어? 말도 없이.”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의 갈라짐을 의미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에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불씨는 작았지만, 매우 강렬하게 타오르기 직전이었다. 동생이 말했다.

 

쪽팔려서.”

 

내가 대답하려는 순간 어머니가 장을 보고 집에 도착했다. 웃으며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알았을 때의 무너지는 어머니의 마음보다 내가 쪽팔린다는 것을 알리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리적 자살 시도

학교에 갔다. 동생과 처음으로 따로 등교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괴롭힘 시간이 다가왔다. ‘축구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일부로 나에게 공을 주고 잘못하면 미친 듯이 따지며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 때문에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나에게 공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공을 차지도 못한 채로 고꾸라졌다. 괴롭히던 남자애 한명이 내게 와서 말했다.

 

병신새끼. 그것도 못 차? 시발 너는 할 줄 아는게 뭐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어야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 그래서 그 애를 쳐다보지도 않고 철근 기둥으로 향했다. 애들이 관심을 끄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곳에 머리를 세차게 박기 시작했다. 곧이어 우르르 애들이 몰려와서 나를 제지했다. 소리는 크게 울렸지만,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었다. (보건실에 가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잘한 선택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 여자애도 남자애 둘도 동생도 말이다. 가족에게까지 배반당해서야 정신을 차려버린 것인지, 진작에 이렇게 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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